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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죄송합니다 - 왜 태어났는지 죽을 만큼 알고 싶었다
전안나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평점 :
절판
전안나 선배는 몇 년 전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에서 처음 만났다.(같은 사회복지사라고 나 혼자 그냥 선배로 퉁치기로 결정.) '1천 권 독서법'이라는 책이 유명했던 모양이고, 그래서 그걸 바탕으로 독서와 관한 사회복지사의 리브랜딩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사회복지사들은 보통 1년에 한 번인 보수교육에 시큰둥하다. 그런데 이날은 웬일로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13년째 듣는 보수교육 중 몇 안 되는 기억에 남는 강의가 되었다. 이때가 하필 사회복지사 리브랜딩, 글쓰기 뭐 이런 거에 다들 관심이 쏠리던 시절이어서 평소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내게 이런저런 질문이 쏟아지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 책은 선배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책을 통해 책의 요약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개인적으로 가장 쓰고 싶은 류의 글쓰기이기도 하고 지금 내가 이 공간에서 하고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만 같은 선배의 삶이 이런 상처로 얼룩졌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생각보다 센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했다. 책이나 다른 루트로 들어온 선배의 삶을 알기에 제목처럼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이제 그만 넣어두셨으면 좋겠다. 선배 참 열심히 사셨노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선배는 행복은 사랑받는다는 느낌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몇 번을 곱씹어 생각해 보아도 이 말은 옳다. 많은 이들이 행복을 좇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지만 기본적으로 행복하다는 감정은 행위가 아닌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누군가로부터 벅차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믿음, 감정. 그래서 나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의지. 이것은 누군가가 물리적으로 곁에 없어도 내가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자존감의 기틀이 된다. 물론 어릴 적 부모의 사랑으로 이것이 만들어진다면 가장 좋겠지만, 조기교육을 주창하는 어느 전문가들의 이야기처럼 난 자존감이 어릴 때만 형성된다고 믿지는 않는다. 우리는 나이가 적던 많던, 성별이 어떻건, 장애를 가졌건, 모든 순간 모든 공간에서 사랑받을 수 있으며 그렇게 나를 세워갈 수 있다. 사람은 본연의 의지에 의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꺼내기 힘든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 선배는 우리 모두에게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선배를 선배답게 하는데 책이 큰 역할을 했겠지만 이 도구는 굳이 책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음악일 수도, 영화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다시 세상과 관계 맺는 접점이고 그 가운데 주고받는 사랑과 존중의 감정일 테니. 이는 사회복지의 기본 정신이도 하며, 선배가 좋은 사회복지사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 또한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사실 책을 좋아했다기보다는 이야기를 좋아했고, 어릴 적 내가 볼 수 있는 영상물은 한정되었으니 어쩌면 책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책에는 TV 보는 것처럼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내가 꼭 그랬다. TV를 모든 문맥, 모든 대사를 놓치지 않으려 귀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보는 이는 없는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다. 혼자만의 고요한 공간에서 경건하게 책을 읽기보다, TV를 켜놓은 거실에서 읽기도 하고, 침대에 누워 읽다 잠들기도 한다. 나는 사람들이 책을 자기계발의 도구로, 공부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튜브 보듯, TV 보듯, 친구 만나듯 그냥 편하게 대했으면 좋겠다.
쉽게 읽히는 에세이는 삶에 대해서, 사랑받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책에 대해서 고민할 거리를 던져준다. 나는 사랑받고 살고 있는가? 대답해 볼 만한 고민거리다.
* 한 가지 '사회복지'는 이제 고유명사로 사용되는데 띄어쓰기가 '사회 복지', '사회 복지사'로 되어있는 점이 사회복지사의 한 사람으로 좀 마뜩잖았다. 2쇄가 나온다면 이 부분은 수정되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