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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리기가 싫어 - 달리고 싶지만 달리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애증의 러닝 가이드
브렌던 레너드 지음, 김효정 옮김 / 좋은생각 / 2022년 3월
평점 :
절판
달리기는 한계를 부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런 한계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과정이다. 이 교훈을 이해했다면 어디에든 적용할 수 있다. _알렉산드라 헤민슬리(p.131)
달리기를 시작하는 것은 사랑에 푹 빠진다기 보다 사랑으로 슬금슬금 다가가는 쪽에 가깝다. 시작할 때는 괴롭지만 끝내고 나면 상쾌하다. 그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썩 나쁘지 않은 상태가 계속되면 조금 좋아지기 시작한다. 어느 날 문득 달리기 없이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고, 참 묘하게도 '내가... 달리기를 사랑하는 건가?' 싶어진다(p.15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을 읽으며 한참을 낄낄거렸다. 외국 저자가 쓴 책은 어지간히 잘 쓰지 않고선 웃길 수 없다. 심지어 이 책의 장르가 코미디도 아닌데 그랬다. 츤데레라고 하나? 책 제목처럼 시니컬하게 '나 달리기가 싫어'라고 할 말 다 하면서 툭툭 달리기를 영업하는 저자의 태도라니. 아 나 이런 거 너무 사랑한다.
나도 달리기가 싫다. 저자는 잘 달리면서 싫다고 하는 거지만 나는 정말이지 어릴 때부터 달리기가 싫었다. 운동회 때 달리기 꼴등은 늘 나였고, 달리기가 모든 운동의 근본인지라 나는 모든 운동을 못했다. 운동회나 체육대회가 있는 날은 '엄마나 학교 안 가'를 외치다 등짝 스매싱을 불렀고, 내 친구들이 축구다 계주다 한 명씩 출전하는데 가만히 앉아 응원만 해야 하는 신세는 늘 고역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체육시간이 따로 없는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문득 달리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루즈한 생활 속에 나의 한계 뭐 이런 걸 깨고 싶었던 것인지 무슨 마음이었는지 혹은 다들 달리는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느 날 백화점에서 러닝화 한 켤레와 체육복 몇 벌을 샀다. 그리고 무작정 동네 호숫가를 뛰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호수는 한 바퀴가 정확히 2km이다. 다섯 바퀴를 무리 없이 뛰면 사람들이 한다는 10km 마라톤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고 내 목표는 10km 완주가 되었다. 그렇게 일 년을 거의 매일 공원을 두 바퀴 혹은 세 바퀴씩 달렸다. 처음에는 500m만 달려도 죽을 것 같던 숨이 점차 반바퀴, 한 바퀴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람이 어떻게 5km를 쉬지 않고 물도 안 먹고 뛸 수 있냐고 했지만 그 어려운 걸 어느 순간 나는 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으로 10km 단축마라톤에 도전했다.
대회가 열리는 주에 처음으로 10km를 미리 뛰어보기로 했다.(이전에 난 한 번도 10km를 뛰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웬걸. 8km를 넘어가지는 지점에서 다리가 풀리고 온몸이 죽을 것 같이 아팠다. 그리고 달리기를 멈춰야 했다.
할 수 있을까. 대회장으로 가는 내도록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날 처음으로 10km를 뛰고 또 걸었다. 누가 달리기를 가르쳐 준 적이 없으니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을 쫓아 무작정 뛰었다. 페이스메이커가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를 느끼며 3km를 넘어서는 순간 몸이 아파졌다. 그랬다. 내가 같이 뛰던 사람들은 킬로당 4분대의 기록을 보유한 선수들이었다. 오버 페이스에 큰일 났다 싶어 일단 물주는 부스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그때 꽤 처음 보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간혹 나처럼 죽기 살기의 각오로 뛰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을 지나자 그저 즐거운 표정으로 대회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이 더 많이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코스튬을 하고, 큰 깃발을 높이 휘저으며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 나는 그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최대한 숨을 크게 들이쉬고 그리고 웃었다. 하늘이 보였고, 바람이 느껴졌고, 귀에 꽂은 음악이 즐거웠다. 그렇게 뛰고 걷고 먹고를 반복하며 결국은 골인 지점에 다다랐다. 봉사자님이 메달을 건네주었고 속으로 '와 이게 되네'를 외쳤다. 나의 첫 번째 마라톤이다. 그리고 난 그 해에 다섯 번의 마라톤에 나갔다. 가장 멋졌던 건 광안대교를 달리던 부산마라톤이었다.
처음 참여한 마라톤에서 나는 실로 달리기는 이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4년 동안 나름의 페이스로 꾸준히 달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도 달리는 게 싫다. 오늘의 달리기는 내가 나에게 낸 숙제의 다른 이름이고 해치워야 할 목록의 최상단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러닝화 끈을 고쳐 묶는다.
속도를 내는 것보다 멈추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에(p.40)
나도 달리기가 싫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나도 러너다. 다시 운동화 끈을 메게 해 준 저자에게 감사를.
* 이 서평은 좋은생각서평단 포지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