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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 - 가난은 일상이지만 인생은 로큰롤 하게!
강이랑 지음 / 좋은생각 / 2022년 5월
평점 :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라니. 난해한 제목을 이해하는 데는 채 몇 장이 지나지 않았다. 죠리퐁은 누군가에서 한 박스 받아서 집에 쌓였는데(그나마도 나눠주고), 우유를 살 돈이 없다. 어째어째 우유를 살 돈이 생겼을 때는 죠리퐁이 없다. 그리고 이제는 죠리퐁도 우유도 없다.
가난에 대해서는 나도 제법 할 이야기가 많다. 풍족하게 않았지만 그래도 부족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우리 집이 망했다. '보증 함부로 서지 마라'라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나는 몸으로 배웠다. 집안 이곳저곳에 TV에서나 보던 빨간 딱지가 붙기 시작했고, 그래도 32평 아파트에서 꼬맹이 시절에나 살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주택 한편의 단칸방에 가서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휴대폰도 갖고 싶었고, 다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것들이 갖고 싶었다. 급식비 대신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보충수업 문제집은 친구에게 빌려 보았다. 가끔 주말에는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지났다.
대학에 와서도 아르바이트는 늘 따라다니는 숙제 같은 거였다. 친구들과 비슷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난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 안 해본 아르바이트는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일을 했다. 그때 지금의 택배 상하차나 배달 일 같은 게 있었으면 아마 그것도 신나서 했을 것 같다.(당시는 신문배달이나 전단지 붙이기가 고작)
2000년 초반, 그러니까 나의 대학시절, 한창 '가슴 뛰는 일을 하라' 따위의 긍정 담론이 주를 이루었다. 노홍철이니 한비야니 김미경 같은 사람들은 자꾸 환상을 이야기했다. 잘 될 거라고 했다. 가슴이 시키는 그 길을 따라가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난 건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갈 수 없는 그들의 배경이었고, 나와 같이 좀비떼마냥 신기루를 쫓아 헉헉거리는 친구들이었다.(물론 그들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삶도 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신기루를 좇는 삶을 포기했다.
사회복지와 철학을 공부하며 나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살고 싶었다. 꿈도 없고 돈도 없고, 그냥 아무것도 없었던 나와 같은 청소년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싶기도 했다. 세상의 억울하고 억눌린 자들의 편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되고 싶었다. 그게 내가 배운 대로 사는 삶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막상 직업을 선택하려 하니 넉넉하지는 못해도 부족할 자신은 없었다. 나 평생 그렇게 가난하고 싶지 않았다. 매일 내일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직장이 아마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카테고리의 마지노선이었다.
한때는 환상 같은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그 환상은 나를 고무시키고 움직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는 내가 직면한 현실이 담겨 있다. 가난한 지금을 오롯이 살아내며 고개를 돌리지 않았더니 이 책에 실을 글들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의 내가 기다리는 미래는 더 이상 환상처럼 대단하지 않다. '내일은 어떻게 살 것인가'란 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고민이 나를 변하게 하고, 나아가게 만든다.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채우도록 돕는다.(p.173)
이제 와 나의 20년을 돌이켜 보건대 나 또한 그랬다. 언젠가부터 내 삶은 '오늘 하루'에 맞추어져 있었다. 나는 내일 내가 부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아니 안 올지도 모를 미래를 위해 오늘의 나를 포기하거나 억지로 견디지 않는다. 가능하면 오늘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누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려 한다. 그리고 매일 작은 성공에 도전하며 살아간다.
비슷한 마음으로 함께 서울 하늘 아래 서 있을 저자에게 새삼 고마워졌다. 모두가 한방을 쫓으며 오늘의 행복을 주식과 코인에 올인하는 지금, 우리 같은 사람도 이 땅에 발붙이고 살고 있음을 알려줘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