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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을 거니까
우치다테 마키코 지음, 이지수 옮김 / 가나출판사 / 202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유의 표지는 '오베라는 남자',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등 스웨덴 소설 시리즈에서 주로 봤다. 그래서 당연히 북유럽 소설이겠거니 했는데 일본 소설이다. 그렇다면 띠지에 적힌 것처럼 1분마다 웃음이 터질 리 없을 텐데 하는 마음으로 첫 장을 열었는데 역시나, 북유럽의 개그코드를 기대한다면 사실 좀 실망이 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일본 영화나 소설만이 가지는 소소한 웃음 코드가 있다. 그리고 사실 난 이걸 굉장히 좋아한다.
책은 일본의 여든을 2살 앞둔 하나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외모지상주의자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도 꾸미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노년에도 길거리 캐스팅되는 걸 자랑으로 여긴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유서를 통해 할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숨겼던 비밀이 밝혀지는데 꽤 쇼킹하다.
할아버지에게 40년을 숨겨온 내연녀와 아들이 있었다는 것. 하나 할머니는 떨리는 마음으로 내연녀를 찾아가는데 재미있는 건 그녀와 처음 마주한 순간 하나 할머니의 눈에 들어온 건 그녀를 찢어 죽이겠다는 분노가 아니라 그녀의 예쁜 외모였다는 점이다.
남편이 평생을 숨긴 내연녀와 그 가족이라니, 이 어려운 문제들을 하나씩 덮거나 풀어가려는 하나 할머니에게 어느 날 내연녀의 아들 이와타로가 찾아온다.
'상대의 인생에 대해 타인은 어떤 책임도 의무도 없죠. 기본적으로 무관심하다고요.'라는 하라 할머니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서 찾아왔단다. 한창 날이 서 있던 할머니는, 이와타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순간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게 된다. 사실 얼굴도 마주하고 싶지 않을 사이일 텐데 할머니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그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건넨다.
할머니와 이와타로를 보며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며 무언가를 용서하거나 결정하는 과정에 대해 복기했다. 무언가를 정할 때 우린 어떤 인과관계가 작용해야 시작하거나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작 무언가를 결정하는, 아니 이해하는 순간은 어쩌면 할머니가 이와타로를 마주하는 순간 같은, 정말 그냥 어쩌다 찾아온 순간이다. 그 찰나의 순간 할머니는 그 모자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어떻게든 된다'는 생각은 젊은이와 노인의 것이다. 젊은이는 '앞날을 개척해나갈 거니까 어떻게든 된다'라고 생각하고, 노인은 '곧 죽을 거니까 어떻게든 된다'라고 생각한다.(p.330)
'어떻게든 될 겁니다'라고 대답하는 이와타로를 보며 순간, 할머니는 이 젊은이의 희망의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바꾸었다. '곧 죽을 거니까 어떻게든 되겠지'에서 '앞날을 개척할 거니까 어떻게든 되겠지'로 삶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세상이 끝날 것 같던 배신이었지만 그까짓 거 나는 내 인생을 다시 살겠노라 꼿꼿이 다시 옷매무새를 고쳤다.
나는 남은 인생, 앞날이 없는 인생을 향해 '해주마'라고 중얼거렸다(p.378)
하나 할머니의 남은 인생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