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온한 밤을 빈다
시로 지음 / 안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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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로 님을 알지는 못하지만 겉장 날개에 적힌 이 문장을 보고 바로 알았다. 이 사람, 나와 같은 결을 가진 사람이구나. 사랑과 이별, 가족, 친구, 믿음이나 마음 같은 단어에 취약한 이들이 있다. 단어 하나에 떠오르는 기억들이 벅차 잠을 못 이루고 눈물로 베개를 적시 고야 마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이들은 주로 글을 쓴다. 그리고 그 글이 마음 너머의 누군가에게 닿길 바란다. 만나야 할 사람들은 결국 만난다는 주문과 같은 말을 믿으며.


떠나는 순간 사랑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만남이 끝날 뿐, 마음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사랑이라는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그 색이 변할 뿐이다.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거짓말한다. 나조차 속았으면 좋겠다.(p.253)


마지막 챕터의 제목은 '거짓말처럼 편안해진 밤'이다. 추측건대 그는 쉬 편안하기 어려운 여러 밤을 보낼 것이다.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그가 얼마나 스스로를 속일지는 모르겠으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결기에, 그의 다짐에 괜히 마음이 울컥거리는 밤이다. 

오늘 그의 이 밤이 안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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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 시대의 강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고민들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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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지우 작가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왈칵 눈물이 난다. 그의 전작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도 그랬고, 이 책은 근간이 되었을 작가님의 페이스북의 글도 그렇다. 지하철에서 사무실에서 생각 없이 스크롤을 굴리며 그의 이야기를 읽다 갑자기 터지는 울음을 삼킨 적이 몇 번이었는지. 


그의 글은 언제나 주변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는 신문 사설의 지적 날카로움과는 다르다. (좋든 아니든) 그는 나와 내 친구의 이야기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한 후 그는 잘잘못을 이야기하기 보다 그럼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이 작업이 참 좋았다. 물론 우리에게는 사건이 일어난 이유를 분석하는 해설가와 그를 발판으로 성장을 도모하는 코치의 글도 필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겐 그런 류보다는 나와 같은 눈높이에서 그럼 우리는 이렇게 한번 해보자는 이의 글이 더 필요하고 소중하다. 


작가님을 직접 뵌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분명히 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의 글은 언제나 온화하다. 사람에 대한 배려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사람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그랬구나' '미안해' '내가 오해했어'라고 그는 일면식도 없는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그런데 너 잘못 하고 있지 않아', '네 기준은 누가 정해주는 게 아니라 네가 스스로가 되는 거야'라며 나의 삶을 격려한다.


<관계>, <지도 없는 시대>, <돌파와 회복>이라는 세 개의 카테고리에 알맞게 담긴 글은 그렇게 꼭 맞게 내게 왔다. 이 글을 쓰면서도 몇 번이고 밑줄 친 그의 문장을 되돌아보고 또 삼킨다 옳다. 우리 모두는 n개의, 자기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나도,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경주를 여행할 때 였다. 오늘의 운세 같은 것을 뽑는 자판기가 있었다. 천 원을 내고 맨 위에 놓인 운세를 가져가는 식이었다. 함께 여행하던 누나가 천 원을 냈고 맨 위의 종이를 선택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나는 다음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음 종이 또 다음 종이를 집어 올렸다. 결국 마음에 드는 운세를 집어 들고서야 '이거 오늘 내 운세래'하며 씩 웃었다. 누나가 옳았다. 누나는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 교묘하게 나의 선택으로 포장된 누군가가 써준 종잇조각이 아니었다. 나도 내 운세를 덮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내가 원하는 내 삶을 들어 올렸다.


누구는 작년에 운 좋게 이사를 해서 1년 만에 몇억을 벌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운 좋게 주식 투자에 성공해 몇 천을 벌었다고 한다. 그런 말들 속에서, 삶을 다른 측면으로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드는 것만 같다. 가끔은 누구를 만나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문학 이야기, 좋은 풍경이 있던 여행 이야기, 사랑이 있던 옛 추억을 말하기도 어딘지 민망하기만 하다. 혼자 뜬구름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서다(p.171)


그 뜬구름 속에 저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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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2 - 호랑이덫 부크크오리지널 5
무경 지음 / 부크크오리지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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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에 뒤팽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없으니 내가 뒤팽이 되겠다는 모던보이. 꽤 재미난 한국소설이 나왔다. 소설인데 영화 시나리오를 노리고 만들었다 싶을 정도로 정교하고 책 속의 이미지가 눈앞에 그려진다. 즐거운 책이다.


어릴 적 추리소설에 한창 빠져있을 때가 있었다. 셜록 홈즈, 괴도 루팡, 소년탐정 김전일에 명탐정 코난까지. 루팡을 홈즈가 잡을 수 있을까 상상에 빠져보기도 했고 김전일과 코난 중 누구의 머리가 더 좋은지에 대해 친구들과 답 없는 토론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추리소설이 시들해지기 시작했고, 먼 나라 이야기보다는 조금 더 내 옆에 내려앉은 이야기들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추리소설은 영화에서나 간간이 비칠 뿐 내 삶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그러다 더위에 지친 어느 여름밤, 마침 제목도 흥미로운 책을 접했다. 400여 페이지, 쉽게 읽히는 두께의 책은 아닌데 읽는데 책을 읽는데 한나절이 안 걸린 것 같다. 그만큼 몰입감 있고 재밌다.

1929년 여름 경성,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를 잡이 위해 순사들과 포수들이 엉켜있다는 풍문이 어지럽게 돈다. 이 궁금함을 해소해야 하는 덕문 씨는 선화가 그렇게 말리는데도 결국 담을 넘어 경성 거리로 나서고 우연찮게 살인사건의 최초 목격자로 휘말리게 된다. 시종일관 수상쩍은 이토 순사와 자칭 탐정이 된 오덕문 씨의 두뇌 혹은 눈치 싸움으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여러 사건과 인물들이 얽히며 덕문 씨는 사건을 풀어나간다. 만약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이 장면은 이런 영상이 그려지겠다 싶을 정도로 꽤 장면은 디테일하고, 스토리는 몰입감 있게 흐른다. 그리고 시종일관 나를 '오덕문'이 아니라 '에드가 오'로 부르라는 주인공의 넉살 등 웃음 포인트도 제법 많다. 이 책은 2편이고 이미 1편은 시중에 나왔으며, 향후 2편이 추가로 더 나올 예정이라는데 우리나라에도 추천할 법한 꽤 기대되는 추리소설 시리즈가 등장한 것 같아 내심 기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당시 경성의 모던보이 문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었는데, 사진이나 옛날 영상으로만 보던 1920년대 경성, 인사동, 광화문이 그려져 꽤 즐겁기도 했다. 전등이 밤거리를 비추고, 전철이 다니고, 머리를 포마드로 떡칠한 양복쟁이들과 풍각을 통해 밤거리에 울려 퍼지는 음악들.

책의 가장 멋진 기능은 나를 그 시대로 데려가 준다는 것인데, 오래간만에 1929년의 경성 거리를 한껏 헤매고 온 기분이다. 휴가철 읽을 책이 필요하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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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탐구 생활 - ‘진짜 취향’으로 가득한 나의 우주 만들기 프로젝트
에린남 지음 / 좋은생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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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읽어본 글인데? 란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의 그 작가님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회사 발령으로 강제로 타향살이를 시작하며 미니멀리스트로의 삶을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그의 책을 읽고 잠시나마 미니멀리스트로 살았던 그때가 생각났다.(물론 과거형이다) 당시에 그는 비움과 채움에 관해 이야기했었는데, 이번에 나온 그의 신간에서는 그렇게 비워지고 남은 것들, 즉 내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엇을 비워내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누구는 그것을 필요라고도 부르겠지만, 작가님은 그것을 ‘취향’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책은 취향에 관한 책이다. 당장 내 책상만 하더라도 각종 피규어들이 넘쳐나고, 차마 쓰지도 못할 스티커들이 서랍에 가득 차 있다. 책은 또 얼마나 늘어나는지, 가끔 알라딘을 통해 보내고 또 보내도, 사라진 만큼 또 채워진다. 반면에 아이패드로 주로 필기와 노트를 대신하는 내 책상 위에는 그 흔한 볼펜도 한 자루도 찾아볼 수 없다. 누군가에겐 의미 없는 아이들 장난감이 가득한 공간 같아도 내겐 나름 정리된, 나만의 책상이라는 얘기다.


좁디 좁은 서울의 반지하 단칸방에서 생활하며 정리의 미덕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내 방은 물리적으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무언가는 버려져야 하고, 이 안에 존재하려면 반드시 필요를 지녀야 한다. 그런데 이 '필요'라는 것은 누가 대신 정해 주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내가 정해야 할 기준이며, 이 기준이 결국 나를 행복하게 나아가 내가 나되게 만드는 무언가가 되어준다. 어떤 녀석은 기분전환용, 어떤 녀석은 반드시 필요형. 매일 사용하는 것도 있고, 매일 보기만 하는 것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은 내게 필요한 것들이다. 나의 취향, 나를 나타내주는, 나의 것.


작가님이 이 책을 통해 들려주는 소소한 물건 고르기 팁들은 나도 삶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어떤 걸 소비해야 미래의 내가 더 행복할까?'라는 질문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예전엔 일단 비싼 걸 질러놓고 비싼 게 돈값은 하네 하던 것들은 이 질문을 거쳐 가능하면 필요한 스펙으로, 더 가능하다면 중고물품을 이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새 옷은 아예 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세상 모두가 쓸데없다 하더라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에 대한 소비는 아끼지 않는 편이다. 이를테면 나는 내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어벤저스, 토이스토리 피규어들을 보면 행복해진다. 좁디 좁은 사무실 책상 한편에는 타노스 건틀렛(심지어 1:1 대칭, 실제 착용 가능)이 내 자리임을 증명하듯 오색찬란한 스톤을 빛내며 서 있다.

누군가의 기준으로 그것들은 당장 갖다 버리거나 천지 쓸모없는 물품들이겠지만 내게 있어 그것들은 나를 표현하는 나의 것들이다. 책은 말한다.


'내 우주가 '진짜 취향'으로 채워질수록 나에 대해 잘 알게 된다. 나는 더욱 선명해진다.(p.199)'


지금 주위를 둘러보자. 그것들은 당신을 설명하고 있는가?


* 좋은생각서평단 #포지2기 활동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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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해부학 - 뇌를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다
커트 톰슨 지음, 김소영 옮김 / IVP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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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뇌과학은 영혼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가?


책을 집어 들면서 가장 처음 들었던 질문이다. 21세기 뇌과학이 발달하며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영역은 누가 뭐래도 종교일 것이다. 특히 신경과학의 발달로 인해 과학은 뇌의 어떤 부분을 자극할 때 인간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반응하는지 설명해 냄으로 이원론에 의한 인간의 마음을 무력화 시켰다. 이를테면 뇌의 어떤 신호를 조작함으로 인간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물론 사랑에 빠지게 한다거나 소위 은혜받았다고 하는 종교적 체험도 가능하다는 것을 뇌과학은 증명했다. 이러한 과학의 진보에 사람들은 마음, 영혼이라는 개념에 의심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 모든 것은 물질이라는 유물론은 종교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주류가 되었다. 사람들은 종교를 진리의 영역이 아닌 윤리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 이러한 세상에서 나는 이 책을 통해 뇌과학과 신학의 접점을 찾고 싶었다.



뇌와 마음은 하나다?


우리의 마음만 변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뇌가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과학자들의 이해도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뇌가 이렇게 한다"나 "마음이 저렇게 한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 사실 그 의미는 "이것은 우리가 현재 믿고 있는, 뇌의 행동 방식이다"에 더 가깝다.(p.37)


사실 좀 당혹스러웠다. 처음부터 저자는 마치 창과 방패 같은 뇌과학과 마음의 문제를 뇌와 마음은 같다고 정의해 버린다. 저자는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의 목적은 뇌와 마음의 관계에 대해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당지 당신의 영혼이 굶주리고 메말랐다면, 이 책에서 당신이 발견하는 것을 향유하라고. 도발이었다. 그래 어디까지 가나 한번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고쳐잡았다.



옳음이 아닌 선함으로


이후의 긴 이야기는 저자가 정신과 의사로서 상담하고 치유해 온 사례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기억과 망각, 정서적 단절의 문제, 애착, 죄 나아가 자비와 정의에 이르기까지 그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절의 모습들을 열거하여 이들이 어떻게 회복되었는지를 설명한다. 퉁명스레 이 과정을 같이 읽어나가는 중 머리를 쿵 치는 지점이 있었다.


좋은 신학은 본래 옮음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함에 관한 것이다. 기억, 정서, 애착, 서사를 염두에 두면 둘수록, 신학은 더욱더 그리스도의 마음의 나타남과 그분의 몸의 강화로 이어진다(p.474)


그랬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옳은 이야기에 반응한다. 이치에 맞는 것만 들으려 한다. 그런데 예수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죄인과 과부와 어린아이들의 친구였다.

그의 선함이 과학의 옳음으로 대치될 때 우리는 창조의 모습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미워하고, 질투했고, 서로에게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미움들이 쌓인 그는 수백, 수천의 환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마음의 배선을 새롭게 하는 일을 도왔다. 그리고 이 작업에 활용된 뇌과학에 대한 것들이 이 책 빼곡히 적혀있다.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쉬운 책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옳음과 선함 사이, 나처럼 길을 잃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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