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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해부학 - 뇌를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다
커트 톰슨 지음, 김소영 옮김 / IVP / 2022년 5월
평점 :
책은 뇌과학은 영혼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가?
책을 집어 들면서 가장 처음 들었던 질문이다. 21세기 뇌과학이 발달하며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영역은 누가 뭐래도 종교일 것이다. 특히 신경과학의 발달로 인해 과학은 뇌의 어떤 부분을 자극할 때 인간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반응하는지 설명해 냄으로 이원론에 의한 인간의 마음을 무력화 시켰다. 이를테면 뇌의 어떤 신호를 조작함으로 인간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물론 사랑에 빠지게 한다거나 소위 은혜받았다고 하는 종교적 체험도 가능하다는 것을 뇌과학은 증명했다. 이러한 과학의 진보에 사람들은 마음, 영혼이라는 개념에 의심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 모든 것은 물질이라는 유물론은 종교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주류가 되었다. 사람들은 종교를 진리의 영역이 아닌 윤리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 이러한 세상에서 나는 이 책을 통해 뇌과학과 신학의 접점을 찾고 싶었다.
뇌와 마음은 하나다?
우리의 마음만 변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뇌가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과학자들의 이해도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뇌가 이렇게 한다"나 "마음이 저렇게 한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 사실 그 의미는 "이것은 우리가 현재 믿고 있는, 뇌의 행동 방식이다"에 더 가깝다.(p.37)
사실 좀 당혹스러웠다. 처음부터 저자는 마치 창과 방패 같은 뇌과학과 마음의 문제를 뇌와 마음은 같다고 정의해 버린다. 저자는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의 목적은 뇌와 마음의 관계에 대해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당지 당신의 영혼이 굶주리고 메말랐다면, 이 책에서 당신이 발견하는 것을 향유하라고. 도발이었다. 그래 어디까지 가나 한번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고쳐잡았다.
옳음이 아닌 선함으로
이후의 긴 이야기는 저자가 정신과 의사로서 상담하고 치유해 온 사례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기억과 망각, 정서적 단절의 문제, 애착, 죄 나아가 자비와 정의에 이르기까지 그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절의 모습들을 열거하여 이들이 어떻게 회복되었는지를 설명한다. 퉁명스레 이 과정을 같이 읽어나가는 중 머리를 쿵 치는 지점이 있었다.
좋은 신학은 본래 옮음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함에 관한 것이다. 기억, 정서, 애착, 서사를 염두에 두면 둘수록, 신학은 더욱더 그리스도의 마음의 나타남과 그분의 몸의 강화로 이어진다(p.474)
그랬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옳은 이야기에 반응한다. 이치에 맞는 것만 들으려 한다. 그런데 예수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죄인과 과부와 어린아이들의 친구였다.
그의 선함이 과학의 옳음으로 대치될 때 우리는 창조의 모습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미워하고, 질투했고, 서로에게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미움들이 쌓인 그는 수백, 수천의 환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마음의 배선을 새롭게 하는 일을 도왔다. 그리고 이 작업에 활용된 뇌과학에 대한 것들이 이 책 빼곡히 적혀있다.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쉬운 책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옳음과 선함 사이, 나처럼 길을 잃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