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2 - 호랑이덫 부크크오리지널 5
무경 지음 / 부크크오리지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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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에 뒤팽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없으니 내가 뒤팽이 되겠다는 모던보이. 꽤 재미난 한국소설이 나왔다. 소설인데 영화 시나리오를 노리고 만들었다 싶을 정도로 정교하고 책 속의 이미지가 눈앞에 그려진다. 즐거운 책이다.


어릴 적 추리소설에 한창 빠져있을 때가 있었다. 셜록 홈즈, 괴도 루팡, 소년탐정 김전일에 명탐정 코난까지. 루팡을 홈즈가 잡을 수 있을까 상상에 빠져보기도 했고 김전일과 코난 중 누구의 머리가 더 좋은지에 대해 친구들과 답 없는 토론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추리소설이 시들해지기 시작했고, 먼 나라 이야기보다는 조금 더 내 옆에 내려앉은 이야기들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추리소설은 영화에서나 간간이 비칠 뿐 내 삶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그러다 더위에 지친 어느 여름밤, 마침 제목도 흥미로운 책을 접했다. 400여 페이지, 쉽게 읽히는 두께의 책은 아닌데 읽는데 책을 읽는데 한나절이 안 걸린 것 같다. 그만큼 몰입감 있고 재밌다.

1929년 여름 경성,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를 잡이 위해 순사들과 포수들이 엉켜있다는 풍문이 어지럽게 돈다. 이 궁금함을 해소해야 하는 덕문 씨는 선화가 그렇게 말리는데도 결국 담을 넘어 경성 거리로 나서고 우연찮게 살인사건의 최초 목격자로 휘말리게 된다. 시종일관 수상쩍은 이토 순사와 자칭 탐정이 된 오덕문 씨의 두뇌 혹은 눈치 싸움으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여러 사건과 인물들이 얽히며 덕문 씨는 사건을 풀어나간다. 만약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이 장면은 이런 영상이 그려지겠다 싶을 정도로 꽤 장면은 디테일하고, 스토리는 몰입감 있게 흐른다. 그리고 시종일관 나를 '오덕문'이 아니라 '에드가 오'로 부르라는 주인공의 넉살 등 웃음 포인트도 제법 많다. 이 책은 2편이고 이미 1편은 시중에 나왔으며, 향후 2편이 추가로 더 나올 예정이라는데 우리나라에도 추천할 법한 꽤 기대되는 추리소설 시리즈가 등장한 것 같아 내심 기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당시 경성의 모던보이 문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었는데, 사진이나 옛날 영상으로만 보던 1920년대 경성, 인사동, 광화문이 그려져 꽤 즐겁기도 했다. 전등이 밤거리를 비추고, 전철이 다니고, 머리를 포마드로 떡칠한 양복쟁이들과 풍각을 통해 밤거리에 울려 퍼지는 음악들.

책의 가장 멋진 기능은 나를 그 시대로 데려가 준다는 것인데, 오래간만에 1929년의 경성 거리를 한껏 헤매고 온 기분이다. 휴가철 읽을 책이 필요하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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