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ellow Cat Volume 3 (멜로우매거진) ㅣ Mellow Volume 3
펫앤스토리 편집부 지음 / 펫앤스토리 / 2022년 5월
평점 :
품절
고양이들은 제 삶의 속도와 균형을 맞춰주는 존재예요. (중략) 언젠가 고양이들이 우다다를 하고 사냥놀이를 하는 걸 유심히 보게 됐어요. 귀를 쫑긋 세우고, 온 신경을 집중하더라고요. 그렇게 에너지 넘치게 뛰어다니더니 곧 배불리 밥을 먹고 쿨쿨 잠을 자는 거예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고양이와 마찬가지도 사람도 자신만의 속도, 자신만의 과정이 있다고요.(p.12)
몇 주전 회사 앞 간이 경비실과 바닥 사이 그 좁은 공간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등장했다. 몇 년을 여의도를 다녔지만 그 흔한 길냥이 한 마리 본적도 없었는데 저 아이는 대체 어디서 왔을까. 그 좁은 공간에 처음엔 눈만 껌뻑이며 숨어있더니 언제부턴가 곧잘 바깥 산책을 나온다. 낮에는 워낙 사람이 많은 곳이라 괜찮을까 걱정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물그릇, 밥그릇이 생기더니 이젠 대낮에도 그 앞에 나와 볕을 쬐고 하품을 한다.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이 좋았던 걸까, 가끔 배도 보여주고 옆에 앉은 이에게 톡톡 장난도 걸어준다. 나 같은 집사 꼰대들만 괜히 걱정이다. '야 쟤 사람 손탔는데 어쩌냐...' 이런 우려와 관계없이 녀석은 출근할 때도, 점심 때도, 퇴근할 때도 그 자리를 지키며(가끔 추르도 얻어 먹으며) 나름 동네 명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미 몇 명에게 '야 그 고양이 봤냐며' 연락을 받았다.
여의도, 대한민국 경제금융의 중심지.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오피서들의 공간에 고양이가 등장했고, 아이러니하게 몸만 덜렁 등장한 그 녀석만이 여의도의 모든 것을 누리는 것 같아 보인다. 여의도의 햇빛과 바람,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과 정적 그리고 매일 그 앞을 지나다니는 수백, 수천 명의 얼굴 하나하나까지.
퇴근길에 잠깐 녀석과 마주해 녀석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는데 귀엽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그 녀석은 되려 내게 위로를 건넨다.
-나는 정신없이 바빴는데, 너는 오늘 행복했니?
-미야옹
마치 내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녀석은 기지개를 쭉 펴고 나를 쓱 훑어보더니 제 공간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마치 '야 그냥 살아 뭐가 그렇게 복잡해'라고 하듯 툭 무심하게 말이다. 어우 시키 진짜.
<Mellow cat 3>은 섬의 고양이들의 이야기다. 제주도, 울릉도, 일본의 가고시마 등. 사람을 따라 혹은 사람을 피해, 쥐를 잡아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섬에 가게 된 경로도 다양하지만, 뭐가 됐던 고양이는 그곳에서도 고양이의 일을 한다. 기지개를 켜고, 그루밍을 하고, 볕이 좋은 곳에서는 가장 편한 자세로 잠을 잔다. 세상 어느 곳에 던져져 있어도 고양이는 고양이다. 제주를 좋아해서 종종 오가는 편인데 인터뷰에 나온 몇몇 책방은 가본 기억이 있는 곳이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곳에서 내가 만난 고양이도 이 책 어딘가에 들어있겠지. 괜히 반가워졌다.
도시의 고양이들과 달리 생존을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고양이, 놀이터와 같은 곳에서 평생 평화롭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이 부러워 항공사 앱을 켜고 '나도 제주'하는 순간 여의도의 이 고양이가 떠올랐다. 그래 여유는 섬이나 여행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내게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여행에서 생기기도 하지만, 결국 내가 서 있는 이곳. 고양이는 제주든, 울릉이든, 여의도든. 어디서든 우리는 단지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고양이는 여행자에게 '게으를 수 있는 핑계'가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일상을 열심히 살다가 쉬려고 여행을 오지만, 막상 아무것도 안 하면 왠지 모를 죄책감 같은 게 또 올라오잖아요. 그럴 때 고양이를 보면 '아, 저런 생명체도 있구나' 깨닫게 되는거죠.(p.44)
누가 그러지 않았나. 삶은 여행이라고. 스마트폰을 덮고 기지개를 길게 켰다. 오늘은 금요일, 내일은 또 주말이다. 어디 떠나진 못해도 이번 주말, 한껏 게을러져야겠다. 나도 여의도의 볕과 바람을 느끼며 늘어지게 좀 쉬어야겠다. 고양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