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그 영화를 다시 볼 수밖에 없다
주성철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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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내가 책만큼이나, 아니 책보다 더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본다는 사실이다. 비디오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어릴 적부터 남달랐던 외모는 고등학생 때부터 '청소년 관람불가' 비디오 프리 패스가 가능하게 했다. 고딩 때부터 빨간딱지 비디오를 볼 수 있다는 건 여러 의미에서 썩 나쁘지 않았는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파이트 클럽>같이 '이건 봐야 하는 영화'들을 때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고 일단 영화 선택의 폭이 거의 무제한이었다. 고3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주 3-4편의 영화를 봤다. 비디오 가게에 있는 영화 중 에로와 호러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영화를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학 진학 이후, 2000년대 초반은 통신사 할인으로 거의 모든 영화를 1-2천 원 사이에 볼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에는 개봉한 거의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것 같다.  금요일 밤에 극장에 들어가 토요일 첫 차로 귀가했고 오전에 한잠 자고 일어나서는 연간 회원권을 끊어둔 동성아트홀에서 이름도 잘 모르는 감독들의 독립영화들을 봤다. 연애보다 영화가 좋았던 시절. 그래 그때부터 싸이에다 이러쿵저러쿵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씨네 21>, <필름 2.0>, <키노>등의 잡지도 종종 사서 읽었다. 내 대학 초년 시절 차마 이해조차 되지 않았던 정성일의 글은 당시 내게 바이블과 같은 존재였다.


그렇지만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내게 영화는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취업에 먹고사니즘이 덮치기 시작하며 영화에 대한 내 애정도 조금씩 그렇게 사그러 들었다. 언제나 VIP였던 극장 멤버십은 어느새 일반으로 내려왔고 그나마 일 년에 몇 번 극장을 찾지도 않는다. OTT의 시대가 도래하고 나선 더 그런 것 같다. 그러다 아이러니하게도 OTT에서 <방구석 1열>을 발견했고, 1회부터 정주행을 시작했다. 주성철 기자를 나는 그곳에서 만났다. 그는 영화와 영화인들에 대해 해박했다. 소개되는 영화와 그 영화에 관한 썰을 꽤 즐겁게 풀었다. 그 이야기가 좋았는데 세상에 그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난 이 책을 안 읽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은 박찬욱, 봉준호 등 내로라하는 10인의 감독에 관한 이야기, 윤여정, 설경구 등 이제는 영화의 아이콘이 된 9명의 배우에 관한 이야기, 홍콩 누아르, 흑인 인권 영화 등 장르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대학시절 내 가슴을 뛰게 했던 박찬욱과 봉준호의 단편들에 관한 이야기 등 4개의 챕터로 이루어 진다(봉준호의 지리멸렬은 지금도 내 인생 영화 중의 하나다). <방구석 1열>에서 보여준 대로 그는 영화에 대한 썰쟁이다. 그가 영화인에 대해, 영화에 대해 풀어내는 썰은 그가 왜  20년째 영화인이라고 불리는지 알게 해줄 정도로 깊고 해박한데,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지난주에 내가 본 영화에 대해 쓰려 아이패드를 열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쓰는 게 쉽진 않지만 그 작업이 꽤 즐거웠다. 영화가 읽어주는 세상, 단순히 오락에 그치지 않고 이 사회를 거울삼아 거장들이 우리게 주는 메시지를 읽어내는 일. 그러고 보니 나 그 일을 하고 싶어 했었다. <영화로 세상 읽기> 오래된 내 싸이월드 게시판의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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