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아르떼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100배 즐기기 - 한·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 기념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한경arte 특별취재팀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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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여행 했다면 지나칠 수 없는 가문의 이름이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 길게는 신성로마제국 시대부터 1차 대전에 이르기까지, 연도로 1200년부터 1900년에 이르기까지 전 유럽의 국왕으로, 황제로, 총독으로 존재한 가문. 마리 앙투아네트, 프란츠, 페르티난트, 요제프, 까를 등 내로라하는 이름들의 집합소. 지금도 오스트리아, 헝가리 뿐 아니라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까지 전 유럽에서 그 이름을 빼고는 역사 뿐 아니라 미술, 건축 등 거의 유럽의 모든 문화를 설명하기 어려운 가문. 


이 대단하다 못해 어마어마한 가문의 컬렉션이 서울 국립박물관에서 열린다. 전 유럽의 유력가들이었던 만큼 이들은  대단한 수집광이기도 했는데 이번에 열리는 전시회에서 오스트리아의 황제들의 취향을 살펴볼 수 있고, 스페인과 네덜란드에서 수집된 명화들 그래서 빈미술사박물관의 다양한 컬렉션들이 국내에 소개된다.


전시 외에 가보기 전 책으로 전시에 대한 정보와 합스부르크에 대한 이야기들을 먼저 접할 수 있었다. 아니 전시 팜플렛이 무슨 1만 3천원이나 해? 라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지만 책은 전시물의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와 배경, 가문을 이끌어왔던 주요인물들과 그들이 다스렸던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방문하게 되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쇤부른 궁전, 호프부르크 왕공, 미라벨 정원, 빈 오페라극장의 이야기들도 같이 전해주는데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던 그 때 이 이야기를 안고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그득 남았다. 그저 전시회 팜플렛 같아 보이지만 이 책이 1만3천원이나 하는 이유다.


역사를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에는 글쎄요라고 대답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또 좋아하는 편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우리보다 먼저 이 땅에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 그들의 성공 혹은 실수담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겨 한다. 게 중 이 합스부르크 같은 글로벌 로열패밀리의 이야기라면 놓칠 순 없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다. 다음주 쯤 그들을 만나러 국립 박물관에 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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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그러진 만화 1 - 망그러진 곰과 햄터의 귀염뽀짝 일상다반사! 망그러진 만화 1
유랑 지음 / 좋은생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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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책을 리뷰하지만 제일 어려운 리뷰가 웹툰이다. 정말 시간 가지는지 모르고 즐겁게 읽지만 읽고 나면 뿌듯함 이외에 쓸 말이 별로 없다. 'ㅋㅋㅋㅋㅋ 아 이거 너무 재밌어' 말고는 딱히 할 말도 없다. 사실 이 책도 그랬다. 그래도 뭐라고 써야 할 텐데 심란한 마음으로 밑줄 그은(정확히는 접어놓은) 페이지들을 들췄는데 이런 장면이 나왔다.


1.

약속에 늦었는데 친구가 자꾸 재촉한다. 버스를 타고 곰은 괜히 다리에 힘을 준다.

'달리는 건 버스지만 의미 없이 힘줘보기'


2.

사람들이 자꾸 박스 안에 들어있는 고양이를 보며 웃는다. 재밌는 녀석이야 하하하. 고양이는 생각한다.

'너네도 커다란 박스 좋아하면서'

시선은 하늘로 솟으며 사람들이 아파트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위로다. 작가도 이야기한다. '삐뚤빼뚤 망그러졌지만, 이대로도 좋아!'

일을 하다 보면.. 아니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다. 모든 과목에 만점을 받아야 하고, 모든 이들과 어울려야 한다고 우리는 배웠다. 나는 영어는 못했지만 수학을 잘했고, 체육을 못했지만 국어는 또 잘했는데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잘 해야만 '잘하는' 사람으로 칭찬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까짓 칭찬이 뭐 대수냐 하지만 그땐(사실 지금도) 난 칭찬 받고 싶다.

그래서 난 가능하면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곧잘 지쳤다. 하루를 빡세게 살고 늘 녹초가 되서 집에 왔고 그렇게 퍼져버린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MBTI 검사를 하면 늘 E였던 것 같은데 요즘은 종종 I가 나오기도 한다. 정말 편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를 만나 무얼하는게 싫고 부담스러워 졌다. 이 책은 그렇게 '아니 난 그냥 집에 갈게(어색한 웃음 하하하)'하고 집에 와 퍼져있는 내게 위로가 되었다.


피식.


그랬다. 완벽하지 않아도 귀여우면 된다. 잘하지 못해도 따뜻하면 괜찮다. 우리는 모두 다 그렇게 산다. 물론 잘난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나와 당신, 우리 대다수는 그냥저냥 산다. 굉장히 많은 순간 우리는 그렇게 견디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괜찮다. 당신이 어떤 하루를 보냈든 우리에겐 떡볶이와 맥주, 그리고 고양이가 있다. 가진거라곤 귀여움 뿐인 당당한 고양이는 지금 내 무릎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세상 행복한 고양이처럼 골골송을 부르며.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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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BOX
조유영 지음 / 문학나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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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소설? 제목의 글귀를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이건 뭐냐.. 책의 부제는 이렇다. '언제든지 꺼내 먹지 좋은 박스 안 달콤쌉쌀 스마트 이야기'


책은 5-10페이지 사이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철 혹은 버스 출퇴근길에 잠깐 스크롤을 올리며 읽을 수 있는 정도? 이 짧지만 간결하고, 뭉툭하지만 예리한 소설을 어떻게 표현할까 싶었는데 추천사에서는 이 소설들을 '수상함'이라고 선언한다. 꽤 적확하다. 어떤 단편은 가볍고 즐거우며 또 어떤 단편은 책을 덮은지 하루가 지나도 계속 곱씹고 있으며 어떤 단편은 두려울 정도로 기괴했다. 수상함? 옳다. 어떻게 정의하기 힘든 이 기분을 수상함 말고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저 박스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내겐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것은 오늘 여러 모양으로 변했다. 그냥 박스였는데. 그것에 사랑이 담겼다고 민서는 써놓았다. 내가 버린 사랑은 어떤 모양으로 그 안에 담겨 있을까? 이제 나는 박스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p.61)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단편 <박스>의 한 대목이다. 새로 만난 그녀가 씻으러 들어가고 집을 정리하던 찰나 쌓여있던 박스에는 전 여친이 사랑을 담아 보냈다고 적혀있다. 언제부터 있었지? 생각하던 찰나 박스의 한 부분이 빨갛게 물들었고, 그렇게 짓이겨진 박스 안으로 반짝하는 불빛이 비췬다. 그런데 그 박스가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아니 이 박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다. 어지러운 순간 그녀가 나를 부른다.


그랬다. 언제나 내 삶 귀퉁이에 있었지만 미처 발견되지 못했고, 매일 발에 치이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어떤 것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그것에 의미를 부여했고, 그전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것은 매 순간 다른 모양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즐겁게 하기도 또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과거에 빠져 유영하던 나를 언제나 지금의 누군가가 불러냈다. 아니 깨워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일까? 


조유영의 소설을 읽으며 꽤 여러 번 나는 어느 세계로 빠져들었다. 꽤 많은 단편이 있었는데 거의 모든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 사실 잊어버리고 사는 게 나을 것 같았던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과거의 내가 꽤 많이 되살아났고 그 모든 일들을 곱씹으며 나는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요즘은 모두가 MBTI로 얘기한다는데 NF 계열의 사람들이 읽으면 꽤 좋아할 만한 책이다.(NF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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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모락 - 우리들은 자라서
차홍 지음, 키미앤일이 그림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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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99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한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숨을 거두기까지의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인간의 일생에 대해 많이 고민해 보지 않았다. 당장 매일 바뀌는 눈앞의 문제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

마흔. 딱 인생의 반환점을 돈 듯한 시점에서 지난 삶을 돌아보자면 꽤 많은 기억들이 피어오른다. 


1. 사실 기억이 나지도 않는 시절의 이야기지만 난 4살 때부터 거리의 간판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천재라고, 온 집이 떠들썩 걸렸다고 한다.

2. 국민학교 1학년, 엄마는 학교에 가는 길을 등교 날 나와 함께 걸으며 알려주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혼자 이 길을 걸어야 한다며. 하필이면  다음날 비가 왔고 난 내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쓰인 노란 우산을 들고 장화를 신고 길을 나섰다. 그날 혼자 나선 길에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다. 어떻게 알지? 그리고 난 노란 우산 밖으로 써진 내 이름을 확인하고 너무 부끄러워 집으로 달려오다 넘어졌다.

3. 국민학교 2학년, 난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죽기보다 싫었다. 그 노란 피아노 가방은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를 정도로 힘겨웠던 기억이었는데 어렵게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태권도복을 입은 내 친구가 나를 보더니 '풋'하고 웃었다. 그리고 그날 울고불고 난 학원을 그만뒀다.

4. 중학교 1학년, 엄마가 교통사고 났다는 연락이 왔다. 꽤 오래 병원에 있었고, 집에 돌아갔을 때 집의 거의 모든 음식을 내다 버렸다. 음식 뿐 아니라 꽤 많은 것을 버렸다.

5. 중학교 2학년, 서울에서 전학 왔다는 아이는 내게 천사의 다른 이름 같았다. 사춘기 감정이 폭발하던 시절이어서인지 그 아이의 얼굴, 눈, 코, 입 모든 것이 꽤 오래 남아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말도 못 붙여 본 내 첫사랑의 이름으로 그 아이는 남아있다.

6.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내 성적이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만약 떨어지면 그땐 집에서 두어 시간 거리의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데 와 나 그때 처음으로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줄 알았다.

7. 고등학교 3학년, 중3 때의 경험은 조금도 내 인생의 교훈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고2 마지막 수능을 240점으로(당시 400점 만점) 마무리한 나는 고3 마지막 모의고사를 370점으로 끊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역대급 물수능이었단 2001학년도 수학 평가 시험, 우리 학교에서 나만 빼고 모두가 수능 점수가 2-30점씩은 올랐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8. 내 인생에 연애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다. 그렇게 열심히 대학교 1학년 과제에 찌들어있는데 이제 막 수능을 끝낸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보고 싶다고. 그 제안을 어렵사리 거절하며 내심 속으로 혼자 뿌듯해 했다.

9. 편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대학 1학년 때 죽도록 했고, 그렇게 난 생전 처음 장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이 결심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란 성경의 이야기에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걸 고민하는데 그거 돈이랑 자랑이더라. 좋은 학교 가서 돈 많이 벌고 싶은 거. 나는 부끄러웠고 이내 그저 그런 사람으로 돌아갔다. 

10. 군대 훈련소 시절, 4년제 대학 다니고 키 크다는 이유로 중대장 훈련병이 된 나는 무언가 증명하기 위해 몸이 달아있었다. 4주 뭐 짧은 시간이지만 내도록 최우수 병사가 되었고 한주에 한 번씩 10분간 전화할 기회를 얻었다. 물론 집에는 1번 친구들에게 2번 전화를 걸었다.

11. 취업을 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나는 마흔 몇군데 원서를 냈고 스물 몇군데 면접을 봤으며 모두 떨어졌다. 꽤 오랜 시간, 아침에 누워 천장을 봤다. '오늘 뭐 하지?'..

12. 일을 하며 처음으로 왕따라는 걸 당했다. 타의인지 자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늘 나를 빼고 모였고 문제가 생기면 나를 제일 먼저 타박했다. 꽤 오랫동안 출근하기 위해 시동 거는 게 무서웠다.

13.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언제나 혼자 들어가던 집에 나를 기다리는 쪼그만 녀석이 생겼고 녀석은 꼭 내 팔을 끌어안고 잠들었다. 지금도 등치는 산만해졌지만 여전히 짱고는 그 자리에서 나를 안고 잔다.

14. 정신과 상담이라는 걸 받았다. 의사는 내게 휴직을 권했는데 그럴 수는 없었고, 그냥 참고 다녔다. 입 닫고 귀 닫고. 꽤 오래 잠을 못 잤고, 사직서는 늘 임시저장 문서에 들어있었다.

15. 결혼을 했다. 결혼이 꽃길이라고 하는 사람들 말 다 뻥이다. 삶은 좋은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꽤 다이내믹하게 변했다. 난 이전에도 명절을 싫어했지만 이젠 명절 혐오론자가 되었다.

16. 직장 생활하며 처음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도 10여 년 직장 생활하며 꽤 집 평수를 넓혀왔는데 다시 반지하 자취방으로 돌아갔고, 여름엔 더위와 겨울엔 추위와 씨름했다. 처음으로 제습기라는 걸 사보기도 했다. 코로나가 터지며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재택근무가 내 삶에 들어오기도 했다.


아마도 앞으로 더 많은 번호의 이야기가 쓰일 것이다. 모락모락. 우리들은 그렇게 자랐다.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우리는 앞으로 나아왔다. 그 길이 우리가 선택했던 그렇지 않았던 아마도 시간은 우리를 계속 밀고 갈 것이다. 

늘 바라는 건 언제고 우리가 우리 인생의 길에서 뒤를 돌아볼 때 그 시간이 후회와 한탄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내 인생을 돌아볼 때 그때는 꼭 세상이 없어질 일 같았지만 조금만 떨어져 바라볼 때 그것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 내 하루를 바라볼 때도 내 하루가 사랑스러웠으면 좋겠다.

꽤 마음이 따뜻해지고,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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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수잰 오설리번 지음, 서진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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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내게는 진입장벽이 높은 책이었다. 스웨덴의 한 소녀가 겪은 체념증후군이라는 우리가 처음 만나는 병을 필두로 저자는 아직 현대의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소위 불가사의한 질병들을 소개하는데 나와 같이 이러한 것들에 큰 관심이 없었다면 따라가기 조금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유튜브를 통해 ‘이거 진짜야??’라는 생각이 드는 영상들을 글로 만난 느낌이었는데, 차이점이라면 유튜브는 ‘이거 백퍼 조작일 거야’라고 결론 내리고 중간에 끊을 수 있다면 이 책에 소개된 내용들은 그렇게 끊을 수 없는, 진짜로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점이다.

책에도 잠깐 소개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도 쉬 진단 되지 않은 질병이 있다. ‘화병’. 오랫동안 받아온 스트레스가 쌓여 가슴 한쪽을 깊숙이 짓누르다 사람에 따라 어느 시기 혹은 어떤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터져버리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는 병.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많지만 아무리 MRI나 X-레이를 찍어도 이 병은 진단 되지 않는다. 의학계에서 ‘화병’이라는 공식 병명을 얻어낸 것도 신기할 정도다. 사실 화병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느 정도의 ‘아픔’을 늘 달고 살아간다. 그것은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혹은 둘 다에서도 나타나는데 병원을 방문하면 운 좋게 '이것은 어떤 어떤 병이다'라고 진단해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스트레스에 의한 증상이라고 진단 받는다. 그럼 이 병의 치료법은?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잘 쉬고, 잘 자고, 마음 편히 두면 낫는다고..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게 가능하면 아플 일도 없었을거다.

저자는 이렇듯 의학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병들을 소개하며 이 병을 가지고 왔을지도 모를 사회적 요인, 환경적 요인을 함께 설명한다. 어떤 질병은 사회적 약자들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방식일 수도 있다고 하고, 또 어떤 질병은 사회구성원들의 서사가 집단적 질병으로 발병할 수도 있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질병들은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또 사라지고 있다고. 이러한 서사를 알고 접근하면 꽤 끔찍하게 느껴졌던 질병들이 조금은 달라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질병들의 정의가 과연 얼마나 정확할까에 대한 의구심도 함께 가지게 된다.

병의 유무는 많은 이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변의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확실히 병인지 아닌지 구별하기가 쉬운 병들도 종종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렇게 정확히 나뉘지 않는다. (중략) 전체적으로 맞거나 틀린 답이 없으므로 과학자들은 그들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여 그런 한계를 설정하지만, 그 요소는 불가피하게 임의적일 수 밖에 없다.(p.349)

옳다. 우리가 질병을 정의할 때, 아니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할 때 기준으로 잡는 호르몬 수치, 해리 현상, 혈당, 심장박동 수 등 모든 수치는 최대한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의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병들이 세분화 되고 확장될 수록 아이러니하게 환자들은 늘어만 갔다. 어제까지 정상이었던 사람이 오늘 전문위원회에서 질병에 대한 기준을 만들자마자 환자가 되어 요 관리 대상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 기준은 보수적이어야 하고 이 관리로 인해 소수의 환자들이 생명을 구할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이들이 불필요한 치료와 관리를 받아야 했다는 점을 저자는 역설한다. 이러한 과잉진료에 대해서는 사실 논쟁의 여지가 많기는 하다.

그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이 글을 시작하게 된 의도를 알린다. 왜 책 제목이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우리가 함부로 자폐, ADHD, 우울증, PoTS로 아이들을 진단하고 낙인 찍는 것을 경계한다. 계속해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진단명을 붙이는 순간 이 병명이 아이들의 약점을 설명하기 시작하고 이는 아이들에게 회복하지 못한 낙인이 될지도 모른다.

악마는 왔다 가면 그만이지만, 진단은 영원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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