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수잰 오설리번 지음, 서진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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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내게는 진입장벽이 높은 책이었다. 스웨덴의 한 소녀가 겪은 체념증후군이라는 우리가 처음 만나는 병을 필두로 저자는 아직 현대의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소위 불가사의한 질병들을 소개하는데 나와 같이 이러한 것들에 큰 관심이 없었다면 따라가기 조금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유튜브를 통해 ‘이거 진짜야??’라는 생각이 드는 영상들을 글로 만난 느낌이었는데, 차이점이라면 유튜브는 ‘이거 백퍼 조작일 거야’라고 결론 내리고 중간에 끊을 수 있다면 이 책에 소개된 내용들은 그렇게 끊을 수 없는, 진짜로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점이다.

책에도 잠깐 소개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도 쉬 진단 되지 않은 질병이 있다. ‘화병’. 오랫동안 받아온 스트레스가 쌓여 가슴 한쪽을 깊숙이 짓누르다 사람에 따라 어느 시기 혹은 어떤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터져버리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는 병.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많지만 아무리 MRI나 X-레이를 찍어도 이 병은 진단 되지 않는다. 의학계에서 ‘화병’이라는 공식 병명을 얻어낸 것도 신기할 정도다. 사실 화병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느 정도의 ‘아픔’을 늘 달고 살아간다. 그것은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혹은 둘 다에서도 나타나는데 병원을 방문하면 운 좋게 '이것은 어떤 어떤 병이다'라고 진단해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스트레스에 의한 증상이라고 진단 받는다. 그럼 이 병의 치료법은?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잘 쉬고, 잘 자고, 마음 편히 두면 낫는다고..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게 가능하면 아플 일도 없었을거다.

저자는 이렇듯 의학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병들을 소개하며 이 병을 가지고 왔을지도 모를 사회적 요인, 환경적 요인을 함께 설명한다. 어떤 질병은 사회적 약자들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방식일 수도 있다고 하고, 또 어떤 질병은 사회구성원들의 서사가 집단적 질병으로 발병할 수도 있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질병들은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또 사라지고 있다고. 이러한 서사를 알고 접근하면 꽤 끔찍하게 느껴졌던 질병들이 조금은 달라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질병들의 정의가 과연 얼마나 정확할까에 대한 의구심도 함께 가지게 된다.

병의 유무는 많은 이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변의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확실히 병인지 아닌지 구별하기가 쉬운 병들도 종종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렇게 정확히 나뉘지 않는다. (중략) 전체적으로 맞거나 틀린 답이 없으므로 과학자들은 그들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여 그런 한계를 설정하지만, 그 요소는 불가피하게 임의적일 수 밖에 없다.(p.349)

옳다. 우리가 질병을 정의할 때, 아니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할 때 기준으로 잡는 호르몬 수치, 해리 현상, 혈당, 심장박동 수 등 모든 수치는 최대한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의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병들이 세분화 되고 확장될 수록 아이러니하게 환자들은 늘어만 갔다. 어제까지 정상이었던 사람이 오늘 전문위원회에서 질병에 대한 기준을 만들자마자 환자가 되어 요 관리 대상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 기준은 보수적이어야 하고 이 관리로 인해 소수의 환자들이 생명을 구할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이들이 불필요한 치료와 관리를 받아야 했다는 점을 저자는 역설한다. 이러한 과잉진료에 대해서는 사실 논쟁의 여지가 많기는 하다.

그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이 글을 시작하게 된 의도를 알린다. 왜 책 제목이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우리가 함부로 자폐, ADHD, 우울증, PoTS로 아이들을 진단하고 낙인 찍는 것을 경계한다. 계속해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진단명을 붙이는 순간 이 병명이 아이들의 약점을 설명하기 시작하고 이는 아이들에게 회복하지 못한 낙인이 될지도 모른다.

악마는 왔다 가면 그만이지만, 진단은 영원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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