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맨 만큼 내 땅이다
김상현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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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필름 출판사의 책을 자주 받아 읽는다. 저자인 대표님도 책에서 슬쩍 자랑하지만 필름의 책은 언제부턴가 믿고 보는 책이 되어버렸다. 스타트업 같던 출판사가 매년 베스트를 뽑아내는 출판사가 되었다니 처음부터 지켜본 독자 입장에서는 뭔가 뿌듯하기도 하다. 그만큼 다들 마음으로 책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일게다.(필름의 베스트셀러인 <일류의 조건> 띠지에 내 서평이 실린 좋은 경험도 있다.v)

그래서 언젠가 내 책을 낸다면 필름에서 내고 싶다 생각했고 투고했고 한 번 까였다. 이후 서평 의뢰가 없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럼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평을 의뢰받고 책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이니 뭐 나쁘진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으로 아무것도 없는 이들을 위로하던 그가 이제는 무언가를 이룬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잘난체할 법도 한데 그는 다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나도 일이라는 걸 시작한 지 어연 16년이 되었다.

그리고 시니어로 향하는 길 어딘가에서 나 역시 해온 일과 가야 할 방향을 동시에 붙잡고 여기가 어딘지 모를 계절을 지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 고민이 더 반가웠고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갔다.


에세이집이고 그가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좋았다. 그런데 특별히 일을 하는 사람으로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사람으로 그의 일에 대한 생각이 좋았다.

초석, 성장, 지속 가능한 삶의 원칙. 밑줄을 그으며 읽다 보니 이 세 단어가 결국 하나의 문장을 향해 수렴하는 걸 알게 되었다.

흔들리더라도 자신이 누군지 잃지 말자.



초석. 모든 것은 마음가짐과 직업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살다 보면 성취보다 태도가 먼저 와닿는 순간들이 있다. 아무리 능력 있어도 태도가 어긋나면 관계가 무너지고 일이 무너진다.

반대로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도 기본을 지키는 사람은 어느 순간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

요행으로 단단해지는 사람은 없다. 삶은 결국 기본기의 층위를 따라 쌓여가고 어떤 일을 대하는 다정함이 그의 평판을 결정한다.

요즘의 나는 어떤 조급함 속에서 자꾸 길을 잃는 것 같다.

멈춘 것 같고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길을 잃었다고 느꼈을 때 가장 빨리 내 자리를 찾는 방법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다.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시기야말로 어쩌면 방향을 다시 찾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성장. 냉철한 자기 객관화.


메타인지라고도 부르는 자기 객관화는 사실 쉬운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환상에 덧씌워져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다.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될 수 있는 사람. 이걸 최대로 부풀리고 부추기는 게 SNS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개개인은 특별한 사람인 건 맞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몇 가지 조건을 더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생각의 주파수를 집중하고,

잘하는 걸 더 잘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며,

이렇게 얻은 성취는 최고의 동기를 가져야 한다고.


현재의 자기의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내며 그에 따른 성취를 이루어라.

요행은 없다. 사실 이건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삶의 원칙. 본질, 균형, 그리고 자기 신뢰.


책은 말한다. 나의 가치를 계속해서 올려야 한다고.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라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트렌드가 아닌 본질을 아는 사람.


즉 일의 원리를 알고,

흔들리지 않는 원칙 속에 타인의 의견을 받아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스스로를 믿고 견뎌낼 수 있는 사람.


이것이 명확하다면 사실 조금 헤매도 괜찮다.

저자도 그랬다. 그렇게 저렇게 그가 헤맸던 시간을 읽으며 나의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마치 그냥 흘러가 사라진 것 같은 그 시간들은 그 시간을 반추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다시 돌아와 단단한 땅을 만든다.

제목에 쓰인 땅의 의미는 아마 성취의 면적이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서 있을 수 있는 기반일 것이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조금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주니어들보다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사람들.

그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리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지금 우리의 헤맴도 결국 우리의 땅이 될 거예요.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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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젓한 사람들 - 다정함을 넘어 책임지는 존재로
김지수 지음 / 양양하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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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젓하다. 사실 최근에 의젓하다는 말을 들은 건 아들을 가리키면서다. 은우가 어린이집 가더니 의젓해졌어요. 사방팔방 천지 모르고 뛰어다니다 이젠 좀 앉아있기라는 걸 하네요의 다른 뜻이다. <의젓한 사람들> 그래서 책 제목이 조금 재밌기도 했다. 점잖은 사람들? 그런데 책에서 말하는 의젓함은 흔들리는 순간에도 나를 잃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지나치지 않는 태도, 그 조용한 책임감을 말한다.

살다 보면 이유 없이 버겁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생채기가 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 의젓함은 번쩍이는 덕목이 아니라 그냥 오늘을 버티게 하는 작고 단단한 돌멩이 같은 마음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그 단어를 되뇌었다. 의젓하다. 나도 의젓하고 싶다.



의젓함은 비교를 멈추고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너무 잘하는 거 잘 되는 거 찾아 헤매지 마세요. 좋아하는 거 있으면 그거 하세요.

보여주려는 마음이 앞서면 자존심 상하고 상처만 입어요.

좋아하는 거 하면 하다가 그만둬도 상처받지 않아요. 자존감이 남으니까요.


나태주 시인의 이야기다. 달라이라마는 무욕이 아니라 탐욕만 안 부려도 좋다고 말했단다.

비교하고 뒤처질까 두려워하는 마음. 난 참 안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신 놓고 살다 보면 나도 그렇게 되어있다.

가끔 언제나 내 옆을 지켰던 짱고를 떠올린다. 고양이는 언제나 제 속도로 산다. 뛰기 싫을 때 뛰지 않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창가에 앉아 햇살을 받고 잠을 자고, 집사의 품에서 그루밍을 한다. 그게 전부다.

어쩌면 의젓함도 그런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정한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로 살아내는 것.


부고 전문기자 제임스 R.해거티는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낙관적이었다고 한다.

그 말은 현실을 장밋빛으로 본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세상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자신을 훈련하는 사람들,

문제보다 가능성의 입구를 먼저 보며 흔들리지 않는 게 의젓함이라고 말한다.



의젓함은 관계 속에서 자리를 지키는 연습이다


조직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숨은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피드백이 아니라 조언을 구하라고 말한다.

피드백은 평가로 끝나지만 조언은 함께로 시작한다. 우리는 칭찬과 비판 사이를 오가며 타인의 평가에 쉽게 흔들린다.

하지만 조언을 구하는 순간 그 사람은 나를 돕는 지도자가 된다.

관계를 평가의 장에서 성장의 장으로 옮기는 일, 그 작은 전환이 의젓함이다.


당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남에게 가르쳐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르쳐본 사람은 안다.

내가 이해한 만큼만 말할 수 있고 내가 기억한 만큼만 설명할 수 있다.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다.


그는 일상의 단조로움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라고도 충고한다.

타악기 전공자 에블린 글레니가 작은북으로 바흐를 연주하듯 그는 여러 작가의 문체를 따라 문장을 다듬으며 지루한 원고 작업을 버텼다고 말한다.

의젓함이란 결국 이런 모습이다. 똑같은 하루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버틸 이유를 찾는 일.



나는 누구에게 의젓한 사람이었는가


책은 묻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의젓한 사람이었는가. 원하는 인생을 위해 어떤 고통을 선택할 것인가.

의젓함은 삶의 체력이자 윤리다. 타인의 무게를 떠안으며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힘, 불안을 견디되 냉소에 빠지지 않는 태도.

그리고 책임지는 마음으로 관계와 공동체 안에 머무르는 결심.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오랜 다짐이 있다.

누군가의 곁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 정확하게 가이드 하지만 때로는 함께 비를 맞아줄 수 있는 사람.

김지수는 14명의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의젓함에 대해 묻고 듣는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영웅담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흔들리면서도 묵묵히 살아낸 사람들의 초상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 시대가 잃어버린 덕목이라 생각했던 의젓함이 사실은 우리 안에 아직도 여러 모양으로 남아있음을 알려준다.


꽤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는 누구에게 의젓한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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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뎀 이론 - 인생이 ‘나’로 충만해지는 내버려두기의 기술
멜 로빈스 지음, 윤효원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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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게시물에서 이 책을 본 적이 있다. "내버려 둬라"

내가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해서 꽤 반가웠다. "냅둬 알아서 하겠지"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누군가의 작은 말 한마디에도 오래 흔들리고 누군가의 표정에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냅둬"하고 내뱉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곤 했는데 그 이유를 여기서 알아버렸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힘이 생긴다.


조용함 사이로 아주 작은 울림이 스며들었다.



내버려 두기 : 포기도 무관심도 아닌 나를 되찾는 행동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너무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우리는 늘 신경 쓰며 산다. 관계의 온도, 말의 결, 상대의 기분,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지까지.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누구인지 보다 ‘상대가 원하는 나’를 유지하느라 더 지쳐 있었다.


저자는 이런 마음을 단번에 뒤집는다.


"내 건강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기침을 멈추게 할 책임은 상대에게 있는 게 아니다."


맞다. 돌이켜보면 관계에서 결국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상대가 틀렸다 혹은 바뀌어야 한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사실 나를 지치게 한 건 상대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바꾸려는 나의 집착이다.


렛뎀이론이 말하는 내버려 두기는 무책임도 체념도 아니다. 이 말은 사실 상대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분리하는 작업이다.

그가 화를 내든, 뒷담화를하든, 나를 향해 무성의하게 대하든 그것은 결국 그 사람의 선택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에서 나를 떼어낼 자유가 있다.


사실을 인정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한 번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놀라울 만큼 차분해진다.

그냥 내버려 두자.



내가 하자 : 내 삶을 나의 힘으로 움직이기


렛뎀의 두 번째 단계, Let Me. 내가 하기.

저자는 말한다.


"그들의 생각을 내버려두고,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자."


살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순간을 누군가의 반응을 기준으로 선택한다.

회사에서 승진을 놓쳤을 때, 누가 나를 험담했을 때,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았을 때 나는 그 상황에만 매달렸고 자꾸만 나를 깎아내렸다.


하지만 렛뎀의 방향은 다르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두고, 나는 더 좋은 곳으로 움직이자.

그들이 욕하게 내버려두고, 나는 나에게 맞는 사람을 찾아가자.

그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내버려두고, 나는 나의 경계를 단단히 세우자.


상대가 바뀌지 않아도 나는 변화할 수 있다는 것. 그 말이 묵직했다.

누구의 눈치에도 기대지 않고 나의 마음을 먼저 챙기는 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는 일.

그건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일이고 결국은 사적인독서를 하듯 나를 마주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사랑이든 관계든 고치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진짜 가까워진다


밑줄 그은 문장 중 가장 오래 남았던 문장.


"때로는 상대를 고치려는 시도를 멈추고, 그냥 받아들이고, 사랑을 더 베푸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싶어 한다.

조언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애원까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다.


'모든 사람이 변화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렛뎀은 관계의 포기가 아니라 관계의 성숙이다.

바꿀 수 없는 상대를 기어이 바꾸려 하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일,

그리고 그 괴로움을 내가 책임지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일.


그 이후 비로소 우리는 정말로 사랑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고, 억지로 변화시키지도 않고.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오래전 나를 괴롭혔던 관계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하려 했던 건 어쩌면 사랑이 아니라 통제였다는 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고

나 역시 나로 살아도 괜찮다고 인정하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기억을 읽는 기분이었다.

내가 어떤 관계를 지나왔는지, 어떤 마음을 잃어버렸는지,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지.

그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보는 시간이었다.



내버려 두자. 그리고 내가 하자. 그 두 문장이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내 삶은 내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자."


렛뎀은 밀어내는 기술이 아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벽을 세우는 기술도 아니다.


그건 내 삶의 중심을 되찾는 기술,

그러니까 나의 존엄과 나의 에너지와 나의 시간을

내가 원하는 곳에 쓰기 위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단단한 원칙이다.


누구의 기대에도 휘둘리지 않고

누구의 기분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움직일 자유.


그 자유를 되찾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한 문장으로 이렇게 말한다.


내버려두자. 그리고 내가 하자.

그 두 문장이 당신의 삶을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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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비 생활
가제노타미 지음, 정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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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덜 쓰는 일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환경을 고르는 일


요즘은 소비가 취향의 다른 이름처럼 여겨진다. 어디서 커피를 마시느냐, 어떤 장비를 쓰느냐, 어떤 제품을 선택하느냐가 곧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돈에 그렇게 구애받는 삶은 아니었지만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시대라 아무래도 지출이 조금만 늘어나도 마음이 어렵다. 그 와중에 나의 스타일도 지켜야 한다. 이 책을 펼친 것도 이 고민이었고 저소비 생활이라는 단어가 나를 붙잡은 이유도 비슷했다.


책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나와 안 맞는 장소에 있으면 맞지 않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돈을 들이게 된다. 저소비 생활은 맞지 않는 환경에 맞추지 않는 기술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점검해 보자. 나의 소비는 애초에 불필요한 환경 속에 있었던 건 아닐까. 장소가 맞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불안은 지출로 이어진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느라 필요 없는 것까지 업그레이드하고 나에게 맞지 않는 삶에 적응하려다 지쳐버린다.

그런 선택지를 스스로 고를 수 있다면 어떨까. 이 책은 절약의 기술보다 삶을 고르는 감각을 먼저 회복하라고 말한다.


어떤 소비는 나를 살리고 어떤 소비는 나를 무너뜨릴까. 결국 저소비는 돈을 줄이는 일이라기보다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 삶의 자리를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소비를 줄이는 힘은 근력처럼 매일 만들어진다


저자는 단순한 절약 루틴을 소개하면서도 그것을 습관의 문제로 연결한다.

"돈을 쓰지 않고 지내는 것은 근력 운동과 같다. 가끔 생각났을 때만 하면 충분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해야 좋은 습관이 생긴다."


'절약=인내'라는 옛 관념을 뒤집는다. 저자는 참거나 억지로 버티는 절약이 아니라 돈을 쓰지 않을 구조를 일상에 녹여두라고 말한다.

통장을 쪼개는 방식도, 월초에는 가능하면 아끼고 월말엔 조금 사치스럽게 보내는 것도 모두 지속 가능한 절약을 위한 생활 설계에 가깝다.

결국 절약이란 피곤한 삶을 견디기 위한 인내의 기술이 아니라 돈에 휘둘리지 않도록 스스로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태도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소비가 너무 쉬운 시대다. 앱을 켜면 원하는 물건이 내일 도착하고 피곤한 날엔 따로 의식을 하지 않아도 클릭 몇 번으로 기분전환이 가능하다.

그래서 저소비의 핵심은 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 쉽지 않은 길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일이다.

돈 대신 다른 기쁨을 만드는 습관, 나에게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구조, 스스로 정한 지출 리듬.

그 작은 반복들이 마음의 불안을 덜어주고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결국 저소비는 돈을 아끼는 삶이 아니라 돈에 기대지 않아도 괜찮은 나를 만드는 과정이다.



결핍이 아니라 만족으로부터 시작되는 삶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세상이나 누군가가 "넌 일을 삶의 90퍼센트만큼 해야 해"라고 말하는 느낌을 받는다면 쓸데없는 소비가 필요해진다."


옳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비율에 맞춰 살다 보면 나의 하루가 자꾸만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고 그 빈자리를 채우려 과소비가 시작된다.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비교와 억눌림이 결핍을 만든다. 저소비 생활의 본질은 그 결핍의 감정을 끊어내는 일이다.


저자는 절약을 결핍의 세계관이 아닌 만족의 세계관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저소비로도 만족스러운 생활을 위해 이쪽이 좋다고 느껴지는 감각을 소중히 여기자."

이 감각이 살아나면, 자연스럽게 지출은 줄어들고 돈에 휘둘리는 시간이 줄어든다.

결국 필요한 건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더 정확한 감각이다.


저자는 월세 포함 70만 원으로 사는 삶을 통해 자유를 얻었다.

돈을 쓰지 않아서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돈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시간을 얻게 된 것이다.

소비가 줄면 행복이 줄어들 것 같지만, 오히려 행복을 감지하는 감각이 살아난다.

작은 것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삶.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감각이다.



책을 읽으며 절약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삶의 자리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책이 말하는 저소비는 기술보다 태도에 가깝고 돈보다 마음의 구조에 가깝다.

결국 덜 쓰고 사는 일은 덜 행복하게 사는 일이 아니라, 덜 흔들리고 사는 법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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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20 러닝 훈련법 - 더 천천히 달리면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
맷 피츠제럴드 지음, 최보배 옮김 / 빌리버튼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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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나도 러너다. 나이키 앱 기록을 보니 2018년부터 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꾸준히(라고 하긴 좀 부끄럽지만) 달리고 있다. 처음 10km 대회에서 받은 기록이 56분인가 그랬다. 워낙 운동에는 젬병인지라 그것만으로도 내겐 기적과 같은 일이었고 이렇게 열심히 하면 금방 50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가장 젊었을 때 받았던 그 기록이 내 인생 최고의 기록이고 지금은 한 시간을 훌쩍(까진 아니지만 암튼) 넘어 이제는 기록이 무의미한 지경에 이르렀다. 어떻게 하면 빠르게 달릴 수 있을까. 누구는 전력 스퍼트와 천천히 달리기를 번갈아가면서 하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전문 러닝코치에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빠르게 달리고 싶으면 더 천천히 달려라. 이상한 위로 같으면서도 어쩐지 설득력이 있었다. 요즘은 슬로우 러닝 같은 것들도 유행이지 않은가! 그리고 책장을 덮을 즈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천천히 달리는 일은 단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버티게 하는 리듬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느리게 달리는 사람이 오래 달린다


아 뭐 책이 삶이 어쩌고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책은 기본적으로 러닝에 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고 어떻게 하면 잘 뛸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저자가 강조하는 건 기초체력 그리고 저강도의 힘이다. 리디아드의 말처럼 빨리 달리는 건 한계가 있지만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천천히 달리기만 하면 다시 달릴 수 있다. 그는 고강도 훈련의 필요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 아래 쌓여야 하는 건 결국 느린 속도로 쌓은 긴 시간의 러닝이었다.

러닝도 러닝이지만 요즘 내가 좀 그렇다. 뭔가 잘해보려고 하다가도 번아웃이 오고 다시 시작해야 할 때는 시작이 더 두렵다. 그런데 책은 이렇게 말한다.


지구력이 열쇠다. 속도는 이미 갖추어져 있다고 봐야 한다.


사실 우리게 부족한 건 재능이나 스피드가 아니라 그걸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은 말한다. 더 많이 달리고 또 달리고 또 더 많이 달리라고.

우리가 지쳐 있는 건 못해서가 아니라 버티지 못해서이고, 버티지 못하는 건 자주 쉬지 않아서가 아니라 애초에 너무 빨리 달려서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80대20 파레토 법칙


고강도와 저강도 훈련을 하는 그룹을 AB테스트 한 잘츠부르크 연구의 결론은 명확하다. 고강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적을수록 좋다. 오히려 대부분의 시간을 저강도에 쓰는 그룹이 가장 큰 향상을 이룬다.

이 실험 결과는 이상하리만치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우리는 늘 고강도로 살아간다. 눈을 뜬 순간부터 닫는 순간까지 전력 질주. 거기다 동기부여는 또 얼마나 많은지. 그러니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완전히 반대되는 법칙을 보여준다.


고강도 20% + 저강도 80% = 장기적 성과


러닝 훈련의 법칙이지만 이 공식은 우리 삶에도 유효하다, 성장이라는 단어에 미쳐 일분일초를 매진해서 살아갈 때는 늘 나만 뒤처진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삶에서 의외의 성과를 낸 것들을 톺아보자면 대단한 준비가 아니라 긴 시간 꾸준히 해온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느리고 반복적이고 비슷한 일상. 그러나 이상하게 그렇게 저강도로 해왔던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러닝에서 80%의 천천히가 지구력을 키우듯 오늘 하루에서 쌓이는 느린 순간의 루틴들이 결국 마음의 근력을 기른다.

조금 느리고 조금 서툴고 조금 멈추는 그 시간들이야말로 오래가는 원동력이라는 걸 여전히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당신의 오늘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게 할 것인가


오늘날 마라톤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케냐 러너들이 성적을 내는 이유는 특별한 훈련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학교를 오갈 때 수십 킬로를 걷거나 뛰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발도상국의 슬픈 현실이겠지만 그 삶이 그들을 비범하게 만들었다.

러닝도, 일도, 관계도, 삶도 어쩌면 다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의 삶이 누군가보다 뒤처진 것 같아 보여도 그게 전부가 아니다. 지금의 그 일상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불평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주어진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천천히 달릴 수 없다면, 더 빠르게 달릴 수 없다.


조금 천천히 가고, 조금 더 오래 버티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몸과 마음의 호흡을 맞추는 것.

다시 러닝화를 고쳐신는다. 오늘은 조금 천천히 뛰어 볼 생각이다.

주변의 풍경도 둘러보고 매일 마주치는 러너가 있다면 가볍게 목례라도 건네야지.


이렇게 하루하루를 쌓아두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우리의 결승선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빨리 달리기보다 오래 달리는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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