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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젓한 사람들 - 다정함을 넘어 책임지는 존재로
김지수 지음 / 양양하다 / 2025년 6월
평점 :
의젓하다. 사실 최근에 의젓하다는 말을 들은 건 아들을 가리키면서다. 은우가 어린이집 가더니 의젓해졌어요. 사방팔방 천지 모르고 뛰어다니다 이젠 좀 앉아있기라는 걸 하네요의 다른 뜻이다. <의젓한 사람들> 그래서 책 제목이 조금 재밌기도 했다. 점잖은 사람들? 그런데 책에서 말하는 의젓함은 흔들리는 순간에도 나를 잃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지나치지 않는 태도, 그 조용한 책임감을 말한다.
살다 보면 이유 없이 버겁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생채기가 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 의젓함은 번쩍이는 덕목이 아니라 그냥 오늘을 버티게 하는 작고 단단한 돌멩이 같은 마음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그 단어를 되뇌었다. 의젓하다. 나도 의젓하고 싶다.
의젓함은 비교를 멈추고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너무 잘하는 거 잘 되는 거 찾아 헤매지 마세요. 좋아하는 거 있으면 그거 하세요.
보여주려는 마음이 앞서면 자존심 상하고 상처만 입어요.
좋아하는 거 하면 하다가 그만둬도 상처받지 않아요. 자존감이 남으니까요.
나태주 시인의 이야기다. 달라이라마는 무욕이 아니라 탐욕만 안 부려도 좋다고 말했단다.
비교하고 뒤처질까 두려워하는 마음. 난 참 안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신 놓고 살다 보면 나도 그렇게 되어있다.
가끔 언제나 내 옆을 지켰던 짱고를 떠올린다. 고양이는 언제나 제 속도로 산다. 뛰기 싫을 때 뛰지 않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창가에 앉아 햇살을 받고 잠을 자고, 집사의 품에서 그루밍을 한다. 그게 전부다.
어쩌면 의젓함도 그런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정한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로 살아내는 것.
부고 전문기자 제임스 R.해거티는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낙관적이었다고 한다.
그 말은 현실을 장밋빛으로 본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세상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자신을 훈련하는 사람들,
문제보다 가능성의 입구를 먼저 보며 흔들리지 않는 게 의젓함이라고 말한다.
의젓함은 관계 속에서 자리를 지키는 연습이다
조직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숨은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피드백이 아니라 조언을 구하라고 말한다.
피드백은 평가로 끝나지만 조언은 함께로 시작한다. 우리는 칭찬과 비판 사이를 오가며 타인의 평가에 쉽게 흔들린다.
하지만 조언을 구하는 순간 그 사람은 나를 돕는 지도자가 된다.
관계를 평가의 장에서 성장의 장으로 옮기는 일, 그 작은 전환이 의젓함이다.
당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남에게 가르쳐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르쳐본 사람은 안다.
내가 이해한 만큼만 말할 수 있고 내가 기억한 만큼만 설명할 수 있다.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다.
그는 일상의 단조로움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라고도 충고한다.
타악기 전공자 에블린 글레니가 작은북으로 바흐를 연주하듯 그는 여러 작가의 문체를 따라 문장을 다듬으며 지루한 원고 작업을 버텼다고 말한다.
의젓함이란 결국 이런 모습이다. 똑같은 하루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버틸 이유를 찾는 일.
나는 누구에게 의젓한 사람이었는가
책은 묻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의젓한 사람이었는가. 원하는 인생을 위해 어떤 고통을 선택할 것인가.
의젓함은 삶의 체력이자 윤리다. 타인의 무게를 떠안으며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힘, 불안을 견디되 냉소에 빠지지 않는 태도.
그리고 책임지는 마음으로 관계와 공동체 안에 머무르는 결심.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오랜 다짐이 있다.
누군가의 곁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 정확하게 가이드 하지만 때로는 함께 비를 맞아줄 수 있는 사람.
김지수는 14명의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의젓함에 대해 묻고 듣는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영웅담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흔들리면서도 묵묵히 살아낸 사람들의 초상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 시대가 잃어버린 덕목이라 생각했던 의젓함이 사실은 우리 안에 아직도 여러 모양으로 남아있음을 알려준다.
꽤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는 누구에게 의젓한 사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