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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맨 만큼 내 땅이다
김상현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11월
평점 :
감사하게도 필름 출판사의 책을 자주 받아 읽는다. 저자인 대표님도 책에서 슬쩍 자랑하지만 필름의 책은 언제부턴가 믿고 보는 책이 되어버렸다. 스타트업 같던 출판사가 매년 베스트를 뽑아내는 출판사가 되었다니 처음부터 지켜본 독자 입장에서는 뭔가 뿌듯하기도 하다. 그만큼 다들 마음으로 책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일게다.(필름의 베스트셀러인 <일류의 조건> 띠지에 내 서평이 실린 좋은 경험도 있다.v)
그래서 언젠가 내 책을 낸다면 필름에서 내고 싶다 생각했고 투고했고 한 번 까였다. 이후 서평 의뢰가 없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럼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평을 의뢰받고 책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이니 뭐 나쁘진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으로 아무것도 없는 이들을 위로하던 그가 이제는 무언가를 이룬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잘난체할 법도 한데 그는 다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나도 일이라는 걸 시작한 지 어연 16년이 되었다.
그리고 시니어로 향하는 길 어딘가에서 나 역시 해온 일과 가야 할 방향을 동시에 붙잡고 여기가 어딘지 모를 계절을 지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 고민이 더 반가웠고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갔다.
에세이집이고 그가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좋았다. 그런데 특별히 일을 하는 사람으로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사람으로 그의 일에 대한 생각이 좋았다.
초석, 성장, 지속 가능한 삶의 원칙. 밑줄을 그으며 읽다 보니 이 세 단어가 결국 하나의 문장을 향해 수렴하는 걸 알게 되었다.
흔들리더라도 자신이 누군지 잃지 말자.
초석. 모든 것은 마음가짐과 직업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살다 보면 성취보다 태도가 먼저 와닿는 순간들이 있다. 아무리 능력 있어도 태도가 어긋나면 관계가 무너지고 일이 무너진다.
반대로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도 기본을 지키는 사람은 어느 순간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
요행으로 단단해지는 사람은 없다. 삶은 결국 기본기의 층위를 따라 쌓여가고 어떤 일을 대하는 다정함이 그의 평판을 결정한다.
요즘의 나는 어떤 조급함 속에서 자꾸 길을 잃는 것 같다.
멈춘 것 같고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길을 잃었다고 느꼈을 때 가장 빨리 내 자리를 찾는 방법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다.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시기야말로 어쩌면 방향을 다시 찾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성장. 냉철한 자기 객관화.
메타인지라고도 부르는 자기 객관화는 사실 쉬운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환상에 덧씌워져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다.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될 수 있는 사람. 이걸 최대로 부풀리고 부추기는 게 SNS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개개인은 특별한 사람인 건 맞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몇 가지 조건을 더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생각의 주파수를 집중하고,
잘하는 걸 더 잘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며,
이렇게 얻은 성취는 최고의 동기를 가져야 한다고.
현재의 자기의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내며 그에 따른 성취를 이루어라.
요행은 없다. 사실 이건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삶의 원칙. 본질, 균형, 그리고 자기 신뢰.
책은 말한다. 나의 가치를 계속해서 올려야 한다고.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라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트렌드가 아닌 본질을 아는 사람.
즉 일의 원리를 알고,
흔들리지 않는 원칙 속에 타인의 의견을 받아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스스로를 믿고 견뎌낼 수 있는 사람.
이것이 명확하다면 사실 조금 헤매도 괜찮다.
저자도 그랬다. 그렇게 저렇게 그가 헤맸던 시간을 읽으며 나의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마치 그냥 흘러가 사라진 것 같은 그 시간들은 그 시간을 반추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다시 돌아와 단단한 땅을 만든다.
제목에 쓰인 땅의 의미는 아마 성취의 면적이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서 있을 수 있는 기반일 것이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조금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주니어들보다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사람들.
그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리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지금 우리의 헤맴도 결국 우리의 땅이 될 거예요.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