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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는 다정하게 씁니다 - 나의 안녕에 무심했던 날들에 보내는 첫 다정
김영숙 지음 / 브로북스 / 2025년 5월
평점 :
내가 뭐라고.
그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누가 칭찬해도, 괜찮다고 해도, 어김없이 튀어나오던 그 말.
처음엔 겸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말이 나를 줄이는 말이 되었다. 나조차도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말.
그나마 내가 괜찮을 때는 몰라도 한없이 바닥에 있을 때는 정말 내가 뭐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정말 그런 아무것도 아닌 존재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살았다. 열심히 일했지만 손에 남는 건 늘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인정받고 또 누군가는 당당히 자리를 차지할 때 나는 늘 뒤에서 애쓴 자국만 남긴 채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억울하기도 했다. 마음은 점점 마르고 거울 속의 텅 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초라했다.
책을 읽으며 아주 조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이렇게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은 비단 나뿐은 아니라는 거였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작가, 며느리이자 여전히 자신을 건사해야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내뱉는 작가의 한숨은 내가 걸어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필요는 늘 뒷전으로 미뤄두며 그렇게 하루를 견뎌내는 사람.
책은 그런 우리의 이야기이다. 에피소드는 <나는 자연인이다> 작가로 활동하며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과 저자 자신의 고백이 교차된다.
그 이야기들이 어제와 오늘을 살아낸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묘한 위로가 되었다.
누구도 크게 가르치지 않고 아무도 다독이지 않는데도 툭 꺼낸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잔잔하게 스민다.
다정했다.
저자는 언젠가부터 '매달 10만 원 정도, 처음부터 없었던 돈이라 생각하고 진심을 써보기로 한 것'이라며 돈을 쓴단다.
누군가에게 커피 쿠폰을 보내고 비타민을 선물하고 조금은 엉뚱한 다정함을 베푸는 일.
받았기에 주고, 줬기에 받아야 하는 피곤한 선물하기에서
고마운 줄 모르고 놓쳐버린 인연들에게 혹은 그냥 누군가에게 '당신을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방법.
맞다. 이런 다정함이 우리를 살게 한다.
나는 줄곧 내 감정의 주인으로 살고 싶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누군가의 필요나 선택에 의해 나를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제멋대로라고 혼나기도 했고, 이상한 사람 취급도 받았지만 한 번도 그런 내가 싫었던 적은 없었는데
책을 읽으며 그런 돌+아이 이야기를 들은 지가 언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뭐라고 하며 함부로 나에 대해 이야기하며 언젠가부터 맞춰가는 대로 살고 있더라고. 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꽤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그러면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할게 조금 많아졌지만 어떻게든 해보려 한다.
이런 나에게 다정한 것부터가 아마도 변화의 시작일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