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팔리는 카피 단어장 - 바로 써먹는 단어 800+예문 2400, 개정증보판
간다 마사노리.기누타 쥰이치 지음, 김윤경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나는 살짝 당황했다. 프리미엄, 하이퀄리티, 극대화... 이게 뭐지? 낯익은 마케팅 단어들이 어지럽게 늘어서 있었다. 각 단어마다 설명과 예시가 붙어 있었고, 유사어와 반의어까지 조목조목 정리돼 있었다. 마치 어린 시절 국어사전을 다시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 진짜 지금 필요한 책일까?


AI가 글을 써주는 시대다. 몇 줄의 설명만 입력하면 꽤 그럴듯한 광고 문장이 뚝딱 나온다. 브랜드 슬로건도, 제품 소개도, 캠페인 카피도 이제 AI가 대충 다 해주는 듯 보인다. 이런 흐름 앞에서 단어장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몇 번의 개정증보를 거친 책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답한다. <무조건 팔리는 카피 단어장>은 0에서 1을 만들어내는 단어 아이디어 북이라 스스로를 정의한다. AI가 해주는 일의 대부분은 기존 자료에서 베끼고, 조합하고, 변형하는 것이다. 즉, 1에서 1.2를 만드는 일은 강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0에서 1을 처음 만들어내는 사람의 사고다. 이 책은 그 사고의 밑바닥 바로 단어와 구성에 집중한다.


광고 문장을 써본 사람이라면 안다. 멋진 문장은 결국 단어 하나에서 시작된다. 표현 하나를 바꾸면 느낌이 확 달라지고 단어를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도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프리미엄'이라는 단어 하나에 담긴 감정의 농도, '한정'이라는 말이 주는 심리적 압박. 말의 순서를 바꾸고 강조점을 이동시키는 것만으로도 메시지의 무게가 바뀐다.


이 책은 단어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시켜준다. 단어별로 사용 맥락, 활용 예시, 반대 의미, 유사 표현 등을 묶어 보여주기 때문에 단순한 단어 수집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특히 마케터, 기획자, 작가, 콘텐츠 제작자처럼 표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일종의 작업용 도구함처럼 쓰일 수 있다.


책은 카피 라이팅의 핵심 구조를 소개하며 출발한다. 고객의 고통을 짚고, 공감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행동을 유도하는 여섯 단계. 문제 → 공감 → 해결 → 제안 → 범위 좁히기 → 행동(책에는 PERSONA로 소개된다)이라는 이 구조는 어느 분야의 글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프레임이다. 이를 단어 선택과 연결해 본다면 한 줄의 문장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결국 책은 글을 잘 쓰는 법을 가르치기 보다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단어를 도구로 삼을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책이 단순한 단어장이라고 생각했는데, 표현을 세련되게 만들기 위한 디자인 도구라기보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전략 도구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AI와 사람의 경계가 사라져 가는 시대지만, 결국 AI보다 맥락과 감정을 읽어내는 건 사람이다. 책은 감정의 결을 건드릴 수 있는 언어를 탐색하는 방식으로 사람의 사고를 돕는다. 아직도 가장 아날로그적이면서도 전략적인 단어장은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