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쏘다, 활 - 일상을 넘어 비범함에 이르는 길
오이겐 헤리겔 지음, 정창호 옮김 / 걷는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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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겐 헤리겔은 독일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일본에서 제안이 날아든다. 도호쿠제국대학에서 철학사를 강의하겠느냐는 제안이 그것이었다.

 

이 유럽인은 깨달음, 도, 선과 같은 동양철학에 매료되어 있었기에 그 제안을 당장 받아들였다.

 

막상 일본에 왔지만 선에 입문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지하게 선을 배우고자 했던 유럽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로선 자신이 '왜 철학적 사변과 무관한 선에 관심을 기울이는지를 이해시키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는 '선과 관계가 있는 일본의 기예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선을 간접적으로 배우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하여 궁도의 명인 아와 겐조를 스승으로 삼아 활쏘기에 입문한다.

 

유럽인에게는 '기술'로 비춰질 이 활쏘기가 동양에서는 '기예'로 받들여진다. 궁사가 쏘는 것은 단순한 화살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궁사는 자기 자신을 겨냥하며, 또 자기 자신을 명중시켜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기예 아닌 기예'이다.

 

이 책이 시공을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기서 말한 이와 같은 과정이란 이 책의 저자인 오이겐 헤리겔이 겪었던 바로 그 과정이다.

 

이런 과정 끝에 저자가 활쏘기에서 깨달음을 얻고 명인의 경지에 올랐듯,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가진 사람 또한 반드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만 그 뜻을 이룰 수 있다. 사람들은 그때문에 오래도록 이 책을 읽어왔다.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깨달음의 과정'을 거쳐야 그는 명인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넘을 수없는 벽 앞에서 오랫동안 좌절했다.

 

그때 스승이 들려준 조언은 이러했다.

  

"발사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당기고 있을 수가 없어요."

그가 이렇게 말하자 스승이 덧붙였다.

 

"당신이 진정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통의 대나무 잎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눈이 쌓이면 대나무 잎은 점점 더 고개를 숙이게 되지요. 그러다가 일순간 대나무 잎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데도 눈이 미끄러져 떨어집니다. 이와 같이 발사가 저절로 이루어질 때까지 최대로 활을 당긴 상태에 머물러 있으세요.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최대로 활이 당겨지면, 발사가 저절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발사는 사수가 의도하기도 전에, 마치 대나무 잎에 쌓인 눈처럼 사수를 떠나가야 합니다."

 

'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지 마'라. '어떻게 하면 될 지를 궁리하지 마'라. '쏠 때는 쏘는 사람 자신도 모르게 쏘아야만 흔들림이 없'다. 모두 같은 맥락에서 스승이 한 충고이다.

 

선은 '피곤하면 잠자고, 배고프면 먹는 것'이다. 그런데 '반성하고 숙고하고 개념을 만들어내'다보니 '먹으면서도 먹는 것이 아니고, 잠자면서도 잠자는 것이 아니게 된다.'

 

오랜 딜레마에 빠졌던 저자는 어느날 부터인가 스승에게 묻기를 멈추었다.

 

그는 '하루하루를 그저 그렇게 보냈고, 그럭저럭 교수직을 수행했으며, 수 년 동안 집요하게 노력해 온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마침내 개의치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활을 쏘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승이 그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무아의 상태에서 발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다음 단계로 나아간 그는 이번엔 '물아합일'이라는 경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룬다. 스승과 제자의 대화를 새겨 듣다보면 누구라도 자신의 문제점을 알게 되며 자신이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알게 된다. 그것이 이 책을 읽고 얻는 값진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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