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의 붉은 실내 사계절 1318 문고 75
조정현 지음 / 사계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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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학상 수상작품을 몇 권 읽어보았는데,, <로빈의 붉은 실내>는 그보다 훨씬 수준 높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인물 묘사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수리, 우인, 홍교, 태희 같은 아이들을 근처 고등학교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주요 서사는 아주 단순하다.. 교문 위에 나부끼던 경시대회 수상 축하 플래카드가 훼손된 사건을 두고 교장이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이 이 소설의 주요 줄거리다.. 그런데도 작품은 끝까지 높은 밀도를 유지한다.. 그 이유가 생생한 인물들의 성격묘사에 있는 것 같다..

 

이 인물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이익을 쫓아 세상을 사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가 그것이다..  아진이 부모 태도와 홍교 엄마의 태도를 놓고 보면 극명히 대비가 된다.. 교장과 아진과 방송반 반장과 담임과 우인 같은 인물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전자의 부류에 해당된다.. 반면에 태희와 수리와 홍교 같은 인물들은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후자에 해당된다..     

 

나는 수리와 태희의 성격을 비교하는 맛에 이 책을 읽었다..

 

주인공 수리는 얼핏 보기에 좀 답답한 스타일이다.. 학교에서는 '은따'를 당하고,, 집에서도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치이는 존재다.. 한마디로 '주체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다..

 

플래카드가 훼손될 때 현장에 있었고 그 때문에 교장에게 자신이 범인임을 자백하게 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수리는 단 한번도 '주체적'이지 못하다..

 

우인 때문에 얼떨결에 범인이 되고,, 방송반 때문에 얼떨결에 자백을 하고,, 태희의 일갈에 얼떨결에 1인 시위를 하고....... 

 

수리는 원우인을 대신해 죄를 자백하고 교장실에서 고문과도 같은 시간을 보낸다. 우인은 기획사 오디션에 합격해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뒤늦게 그 소문을 듣고 교장실로 달려가 진실을 밝힌다.. 이때 수리가 보이는 태도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수리는 교실을 박차고 나가며 '교장실에 가서 원우인이 헛소리한 것이라고 말할 생각'이다.. 우인이 명예심 때문에 사건을 벌렸다고 한다면 방송반에도 그닥 해가 가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애는 왜 죽어라 모든 죄를 짊어지려는 걸까.. 단순히 심성이 착해서 그런 걸까?

 

1인 시위를 할 때도 학교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흘깃거리며 지나치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면서 습관적으로 태희에게 문자를 보낸다. '이제 어떻게 하지?'

태희는 수리더러 "일 저지른 것도 네가 한 게 아니고, 해결할 능력도 없"는 아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옳다. 

 

플래카드 사건의 배경에는 인터넷 블로그 '로빈의 붉은 실내'가 있다.. 로빈은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글로만 '포스'를 내뿜는다.. 냉소적으로 세상을 향해 쏘아붙이는 '로빈포스'에 아이들은 열광한다..

 

얼핏 보기엔 수리는 멍청하고 로빈은 똑똑한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로빈은 '글'로써만 세상을 살뿐 행동할 줄 모른다. 반면 수리는 대책도 없이 행동부터 하고 본다. 그럼에도 이 아이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그 행동의 근본에 '측은지심'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제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수리다.. 태희가 자신의 글을 두고 쓰레기라고 표현한 건 옳은 말이다. 쓰레기 매립지 위에 건설된 하늘공원 사진을 블로그에 올린 건 태희의 변화의지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 아이가 과연 세상밖으로 나와 사람들 속에서 '행동'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편의점에 물건 하나 사는 것도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변화가 찾아올까?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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