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 시속 370㎞ - 제9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72
이송현 지음 / 사계절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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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냥 시연회를 무사히 마치고, 그날 밤이었다. 

아버지와 동준이는 '처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이란 것'을 했다.

마루와 보로를 들판이 아닌 좀 더 높은 곳으로 날려보내기로 부자는 의견 일치를 보았다.

 

마루는 아버지와 7년을 응방에서 함께 한 참매다. 더 붙잡아 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응방의 새들은 보통 3-4년 이면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마루는 그렇다 치더라도 보로는 어린 보라매이다. 한참을 아버지와 응방에서 함께 지낼 수 있지만 동준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아버지 곁을 떠나버렸고, 그래서 봄이 오면 동준은 엄마에게 갈 예정이었다.

 

더 이상 보로를 보살펴 줄 수 없다. 중고 바이크를 장만하겠다는 욕심으로 아버지 밑에서 매잡이 노릇을 했지만 이제 보로는 처음의 그 '닭대가리'가 아니었다. 동준이에게 이제 그 새는 '나의 보로'였다. 그런 보로를 다른 사람 손에 넘겨준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마루와 함께 자연으로 돌려보내주기로 한 것이다.

 

이미 시연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을 정했다.

동준이는 보로에게 말했다.

"(오늘 시연회 때) 맘껏 날아 보니 짜릿하지? 날고 있다는 거. 네 곁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공기를 고스란히 느낀다는 거, 진짜 끝내주지?"

바이크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느끼는 자유를 동준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3월 어느 날 부자는 산길을 올랐다. 시야가 탁 트인 절벽 앞에서 아버지와 동준이는 새들에게서 눈가리개를 벗겨낸다. 새들 꽁지에 매달아 놓았던 시치미(방울)도 떼어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마루에게 말했다. 

"이번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고마웠다. 가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버지는 창공을 향해 팔을 뻗는다. 그러자 마루는 홀연히 하늘로 날아오른다.

멀어져 가는 마루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아버지가 소리쳤다.

"가자! 어서 가자!"

 

가라! 가 아니라 가자! 였다.

동준이는 그런 아버지를 보는 것이 슬펐다. 가정을 내팽개치고 매잡이 노릇에 삶을 고스란히 바친 아버지가 아닌가. 매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야 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쓸쓸함이 느껴져 동준이는 슬펐다.

 

그러나 그건 동준이의 짧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분명 아버지의 마음은 그와 같지 않았을 것이다. 서운함이야 왜 없었겠냐만은 아버지는 분명 가라! 가 아니라 가자! 고 했다. 그 말이 매잡이 문화에 녹아있는 전통적인 관용어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생 사랑한 매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그 순간에도 아버지는 가자! 고 말했다.

이별이 아닌 것이다. 새는 가버려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새와 함께였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의 동준이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전통문화에 평생을 매달린 아버지도 새를 날려보내며 인생의 한 과정을 통과했다. 동준이에게도 아버지에게도 그건 분명 성숙과 승화의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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