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주는 위안
피에르 슐츠 지음, 허봉금 옮김 / 초록나무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작가는 글머리에서 이 책을 쓴 의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개가 얼마나 좋은 동물인지 그저 칭송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연유에서 도시인들이 반려동물과 함게 살고 있는지 그 이유를 분석하자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개에게 돋보기를 갖다대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책의 제목이 <개가 주는 위안>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제 생각에 이 책의 목적은 개를 통해 인간을 이해해보자는 것인 것 같습니다.

 

개의 매력, 개의 정신세계, 개의 좋은 점, 개의 좋지 않은 점, 개는 어디에서 왔나, 개를 사람처럼 대하기, 개에 동화하기, 문학작품에 등장한 개들, 개가 우리에게 주는 위안.

 

매력적인 제목의 목차를 훑어보면 온통 개 이야기지만, 이 개 이야기 이면에 인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존재의 본질은 관계에 있습니다. 개를 통해 인간을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정확하고도 깊은 이해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저자는 인간과 개의 관계를 비물질적 공생관계라고 정의합니다. 비물질적 공생관계란 '숙주가 공생 동물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보호해 주는 대신 공생 동물로부터 비물질적인 서비스를 기대하는, 서로 다른 종 사이의 협력 형태를 의미'합니다. 동물계에서 공생관계란 물질 대 물질의 거래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인간과 개(물론 여기서 개는 고양이 등을 포함한 애완동물의 총칭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의 관계에서는 이 상식이 깨집니다. 우리는 개에게 먹이를 제공하지만 개는 우리에게 그 어떤 물질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개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형의 서비스입니다.

 

저자는  이 무형의 서비스를 에그조프시쉬슴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가 우리에게 주는 무형의 서비스는 무엇일까요. 

 

여러 각도에서 많은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내가 주목한 대목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개를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는 개의 열등함에 끌린다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상대방의 왜소함을 확인함으로써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마음이 끌리는 일 아닌가?' 라고 묻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짐승들에게 느끼는 사랑에 대하여>란 책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가 앵무새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것이다. 참으로 희한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개라는 거울을 통해 들여다본 인간의 얼굴에서 제가 제일 먼저 읽은 것은 '오만'입니다.

 

다음으로 주목한 부분은 개가 '부모 역할을 자극하는 자극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 역할이란 '음식을 공급받고 보호받지 못하면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될 나이 어린 존재를 돌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든 행동으로 정의'됩니다. 우리는 이런 존재들을 돌보며 우리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비로소 우리는 마음속에서 '자신은 쓸데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동물들은 순간을 산다는 내용도 신선합니다. 

 

우리가 개에게 끌리는 이유는 개는  '개화 함께 있으면, 과거와 미래는 사라지고, 현재만 남'기 때문입니다. 개는 자기 성찰을 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를 후회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개는 사람에게 웹빙은 한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한 방향으로만 행동하는 데서, 한 번에 한 가지만 원하고 한 가지 일만 하는 데서 온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이 이 책을 읽으며 크게 공감했던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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