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에로티즘을...

지금 내 몸은 에로티즘 공부를 원하고 있다.
먼저, 과거에 거칠게 읽었던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이해되는 대로 정리를 해 보려 한다.
에로티즘 공부도 종국에는 내가 좀 더 자유로워지고 더 나아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포용을 목적으로 한다. 내 자신에게 너그러울 때 타인에 대한 공감도가 커질 수 있으리란 믿음 때문이다.
참 이상하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에로티즘 공부만큼은 간절하다. 그러니 만사 제쳐두고 이 책을 읽어나갈 수밖에..
<<에로티즘은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이다>>첫 페이지 서문의 제목이다. 과거엔 이 말이 관념적인 문구로 읽혔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잦은 짝사랑(?) 을 경험하다 보면 이보다 현실적이고 현재적인 말이 또 없다. 에로티즘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공포로 여겨지는 죽음을 실제로 경험토록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에로티즘을 통해 잠시나마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결국 공포로 느껴지는 죽음을 체험한다는 의미중복적인 일깨움이다.
ㆍ <<어떤 한 존재와 다른 존재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으며, 거기에는 단절이 있다. 그 심연은 다른 말로 죽음이라고 할 수도 있다.>>존재를 사람으로 치환해 보자. ..어떤 한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으며, 거기에는 단절이 있다..두 사람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 즉 죽음에 뛰어들지 않고서 그 심연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그 죽음으로 파고(뛰어) 들게 하는 에너지는 무엇일까? 바로 사랑의 정열이다. 사랑의 정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에로티즘을 야기한다. 그 에로티즘으로 인해 심연은 걷어내지고 두 사람은 비로소 불연속성의 복잡함에서 연속성의 단순함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얼마나 하고 사느냐 말이다. 이것이 사람과 삶과 죽음을 연속선상에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의미 있는 일을 저지러길 주저하게 됐을까? 에로티즘 공부가 끝날 때쯤이면 나는 이 해답을 가져 갈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ㅡㅡㅡ2007.12.11 독서노트에서
ㅡㅡㅡㅡ
밑줄긋기 ㅡㅡ
-우리는 가장 단순한 존재조차도 겪어야 하는 복제 또는 결합을 벗어나지 못함에 괴로워하며 수많은 파도 중의 하나처럼 개체이면서 동시에 전체일 수 있는 존재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음을 괴로워한다.
존재의 연속에 대한 이러한 향수는 모든 사람에게서 세 가지 형태의 에로티즘으로 나타난다.

즉 육체의 에로티즘,
심정의 에로티즘,
그리고 신성의 에로티즘에 대해 차례로 언급하겠다.
내가 그것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존재의 고립감에 존재의 연속감을 불러일으켜주는 것들은 바로 그것들이기 때문이다.--15쪽
-나의 의도는 방대한 에로티즘을 그것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어둠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한 것이었다.
과연 이 엄청난 일을 존재의 깊은 곳, 존재의 심연을 건드리지 않고 해낼 수 있을까?

에로티즘의 영역은 본질적으로 폭력의 영역이며 위반의 영역인데...
우리에게 가장 폭력적인 것은 죽음이다.
불연속적 존재인 우리는 불연속적 존재로 남기를 간절히 원하는데 반해, 죽음은 그것을 여지 없이 짓밟아 버린다.
불연속적 개체란 언젠가 갑자기 소멸하고 마는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일 용기가 우리에게는 없다. ...폭력이 없이 생식을 하는 존재는 상상할 수 없다.
불연속에서 연속으로의 추이는 존재의 전적인 참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폭력, 또는 폭력에 연결된 어떤 막연한 불안이 전 존재를 휘감는다.
불연속적 존재에 가해지지 않는다면 어떠한 상태로부터 다른 상태로의 추이도 상상하기 어렵다.- -육체의 에로티즘은 대상을 범하는(?) 죽음에 가까운(?) 살해에 가까운(?) 행위일 것이다. -16,17쪽

에로티즘은 존재의 가장 내밀한 곳, 기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건드린다. 정상(正常) 상태로부터 에로 상태로의 추이는 불연속적 질서, 또는 형태적 존재의 상당한 와해를 전제한다. 이 와해라는 말은 에로 행위와 관계 깊은 방탕이라는 친숙한 표현을 생각나게 한다.

어떤 에로 행위든 에로 행위는 정상적 상태의 상대방--폐쇄적 존재로서의 구조--을 파괴함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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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은 시민과 지식인의 비판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잡담 65~92쪽을 읽어보자

공희준이 유시민을 비판했다고 까이고,

진중권이 조국 사태에 대해 비판했다고 까이고,

김규항이 민중을 동원해 정치적 힘으로 활용하는 것은 다 도찐개찐이라는 글을 썼다고 까이고,

기본적으로 친노친문이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확실히 비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소수의 의견과 비판이 전무하게 한다면 그게 말이 되나.

문재인정부가 정치를 잘하면 박수치고 싶은 한 사람이지만, 내편 네편의 선악구도의 단조로운 세계관으로 비판에 부정적인 것은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티비시민토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어렵고 고통스러워하는 서민들의 청원을 들으면서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면을 엿볼 수 있었다.
친노친문 정치인들도 시민의 어려움과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우는데 안간힘을 써서라도 돌아서는 시민들의 맘을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조국도 결국 공감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라는 비판이 있듯, 지금 친노친문들이 현안 문제들의 핵심 원인을 파악하고 공부하지 않고, 시민과 지식인들이 힘들게 하는 비판을 내로남불식으로 비판이 아닌 비난으로 받아친다면 진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잡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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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이 말하는 김규항은
언행일치를 중심에 둔 지식인이다.
그렇기에 세상과 불화하는, 적어도 주류와 불화하는 지식인이다.
적지않은 지식인들은 현실에 추상적 도전은 할지언정 김규항이 말하는 구체적 도전을 하는
지식인은 그닥 많지 않다는 것이다.
프랑스 드골이 앙드레 말로를 오른편에 앉혀놓고
ㅡ나는 세속성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기분이다ㅡ 라고 했듯이,
지식인들이 장식적 기능을 한다고.

김규항은 교양이란 ㅡ그지없는 진보ㅡ 라며,
보수적인 교양이란 없다고 한다.
보수란 사상이 아니라 욕망이며
가진 것을 내놓지 않으려는 것은 사상이 아니라고.

지식인의 위선을 지적하는데
이 위선은 강준만의 강남좌파2에 나오는
캐비어좌파들의 위선과 맞닿아 있다.

김규항의 신간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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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김규항 - ‘글쓰기’와 ‘지식인’에 대하여 시사만인보 123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1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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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글은 느슨한 삶에 긴장감을 주는 사랑같은 소중함이 깃들어있어서 늘 갈증을 느끼며 읽는다. 오래된 글들인데 강준만의 강남좌파2를 읽고 김규항 신간은 왜 안 나오나 검색하다가 이북을 읽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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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고 마무리를 해보자

ㅡ대의론과 조직보위론은 아직도 건재하다ㅡ에서
조국을 향한 비판이나 수사를 ㅡ선택적 정의ㅡ라며 분노하는 것을 보면서 남의 ㅡ선택적 정의ㅡ를 지적하는 것처럼, 진보 자신의 ㅡ선택적 정의ㅡ에 대해선 그리도 무관심하냐고 말한다. 누군가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으면 ㅡ무지의 장막ㅡ원리에 따라 응당한 조치를 취하면 되지 그 사람의 이념적ㆍ정치적 성향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ㅡ우리 모두 위선을 좀 걷어내자ㅡ 에서
인사도 다를 게 없이 편을 가르지 않고 공직 후보자의 어떤 비리 의혹에 대해 반대편에 했던 것처럼 똑같이 대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멀리 내다보면 자기 진영의 대국민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며, 그래야 도덕적 우월감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대의론과 조직 보위론을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로선 진보의 그런 행태가 위선의 극치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대의론과 조직 보위론은 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은 소홀히 해도 괜찮다는 심리는 부도덕의 온상이며 위선의 덩어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욕망을 감추면서 욕망의 포로가 되지 말고 드러내서 진보를 죽이는 ㅡ도덕적 우월감ㅡ에서 벗어나자고 한다. 그래서 소통을 통해 진보의 지지 기반을 넓혀가자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로 끝을 맺는다.

ㅡ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예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ㆍㆍㆍ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ㆍㆍㆍ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ㆍㆍㆍ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ㆍㆍㆍ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습니다. ㆍㆍㆍ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제가 했던 약속들을 꼼꼼하게 챙기겠습니다. ㆍㆍㆍ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ㆍㆍㆍ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ㅡ


사회 현안에 있어서 이렇게 많은 통찰력을 주다니 나자신을 겸손하게 성찰함과 동시에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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