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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담론 - 프랑스 혁명에서 냉전 종식까지
브랑코 밀라노비치 지음, 이혜진 옮김, 이태환 감수 / 세종연구원 / 2025년 8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성장이냐 분배냐. 발전이냐 평등이냐. 이는 경제학에서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와 같은 문제다. 일단 주류 경제학자들은 '성장'과 '발전'에 방점을 찍는다. 이들은 경제발전과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결국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 낙관한다. 최초로 전 세계 불평등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대표적이다. 근대화와 소득 불평등에 관한 '쿠즈네츠 가설'이 유명한데, 경제발전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낙관적인 해석이 특색이다.
쿠즈네츠에 따르면, 경제적 불평등은 산업화 및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벨커브 형태를 보이게 된다. 즉 산업화 초기에는 경제적 불평등이 상승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 불평등이 빠르게 감소한다는 것이다. 새마을운동(근대화 정책)과 '흥부와 놀부'로 예를 들면, 새마을운동 초기에 놀부네가 빠르게 부자가 되었지만, 운동이 본격화되면 흥부네도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어 불평등이 감소된다는 논리다. 오늘날 시장 질서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도 분배나 평등보다 성장과 발전에다 방점을 찍는다.
1963년에 쿠즈네츠는 높은 불평등의 도구적 정당화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불평등은 항상 성장에 유리한가, 아니면 고소득 집단으로부터 최하위층으로의 재분배가 경제 성장을 가속할 수 있는 조건이 존재하는가?" 쿠즈네츠는 최대 이득을 달성하려면 이런 소득 증가 유인을 부유층에 제공해야 하는지, 아니면 빈곤층에게 제공해야 하는지 묻는다.
"쿠즈네츠는 모든 소득 분배는 충분성, 형평성, 효율성이라는 세 기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충분성'은 극빈층까지도 지역의 관습과 사회의 경제 발전 수준에 맞는 소득을 얻도록 보장한다. '형평성'은 (예컨대 인종별 또는 성별 임금 격차에서처럼) 현재 소득에서 차별이든 아니면 (지금 우리가 말하는 기회의 평등을 제한하는) 미래 가능성에 대한 차별이든, 차별의 부재를 의미한다. '효율성'은 높은 성장률의 달성이다."(262쪽)
평등과 성장의 시소게임은 미묘하다. 만약 형평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성장률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충분성도 감소시킨다. 즉, 평등주의가 빈곤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높은 성장률 달성 자체가 더 높은 수준의 형평성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구의 상당수가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전반적인 향상에 기여할 수 없거나 높은 성장률이 사회 분열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한편, 빈곤 감소를 목적으로 충분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유인이 감소하고, 성장률이 하락하고, 어쩌면 그저 빈곤을 줄이기 위한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보상이 주어질 것이므로 형평성의 가치마저 낮아질 수 있다.
세르비아계 미국인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불평등의 담론》(세종연구원, 2025)에서 앞서 언급한 사이먼 쿠즈네츠를 비롯해 프랑수아 케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카를 마르크스, 빌프레도 파레토 등과 같은 경제학자들이 소득 분배 및 불평등을 어찌 보았는지 고찰하고 있다. 시기별로 본다면, 18세기 후반 프랑스 대혁명 전후의 시기부터 20세기 후반 냉전이 종식될 때까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담론이 어떻게 진화하고 변화해왔는지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