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죽음에 관한 철학
나이토 리에코 지음, 오정화 옮김 / 이사빛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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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초고령사회의 짙은 그림자가 한국에도 드리웠다. 다름아닌 '다사사회'다. 다사사회란 "노인의 증가로 사망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 인구가 점차 감소하는 사회 형태"를 말한다. 인구 급감과 더불어 청년 자살, 중장년 고독사, 실버세대 안락사 등의 이슈도 전보다 더 뜨거워졌다. 이럴수록 필요한 것이 죽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일본의 종교학자 나이토 리에코는 동서양 철학자들의 사생관을 소개한다. '죽음에 대한 백과사전'을 목표로 했다는 저자는, 키르케고르, 니체, 헤겔, 하이데거 같은 철인들의 주저와 사생관을 소개하고, 성경(예수)이나 경전들(석가모니)은 물론, 일부 과학자의 견해까지 전하고 있다. 또한 독자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자아내기 위해 저자가 직접 그린 곳곳의 일러스트가 어두운 주제가 주는 정신적 부담감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실존주의의 시조' 키르케고르에게서 시작한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사생관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자는 항상 신과 속세의 차원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고 있으며, 그 질적 변증법의 결과로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키르케고르의 실존철학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기초한다. 키르케고르의 실존은 '관계'에 전념하는 존재이며, 그 관계란 신의 차원인 무한성(영원한 것)과 속세의 차원인 유한성(시간적인 것)의 관계다. 다시 말해서, 키르케고르의 눈에 비친 인간은 무한성과 유한성, 우연성과 필연성, 육체와 정신이라는 모순되고 상반된 조건에 놓인 존재다.

대표작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말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절망'이고, 절망이란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배반과 냉담, 이른바 '믿음의 결여'를 뜻한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크게 '절망이라고 의식하지 않는 패턴'과 '의식하면서도 절망에 빠지는 패턴'으로 나누었다. 저자는 이런 키르케고르의 사생관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신약성서의 〈나사로의 부활〉〈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요한계시록〉은 물론, 헤겔의 변증법과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언급하고, 심지어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일부 에피소드까지 참조하고 있다.

한편, 키르케고르의 사생관 정반대편에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가 위치한다. "그리스도교의 사생관은 신자의 부활과 천년왕국 이후 인류가 다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이런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적 가치관과 사생관을 과감히 전복시켰다. 니체는 그리스도교의 직선적인 시계열에 맞서 원환(둥근 고리) 모델의 사생관인 '영원 회귀'를 강조한다. 영원 회귀는 마치 무간지옥의 세계처럼 완전히 똑같은 인생의 무한반복을 전제로 한다. 니체는 또한 '신은 죽었다'는 선언을 통해 일신교의 종말과 다신교적 가치관의 부활을 꾀하면서, 신이 아닌 자신의 행동규범과 윤리를 바탕으로 한 강인하고 주체적인 인생관을 내세운다. 영원 회귀와 초인을 강조한 니체의 허무주의를 삶에 비관적인 쇼펜하우어의 것과는 달리 '능동적인 허무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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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이렇게 읽어라 - 무기력하고 괴로운 현실에 상상력과 자유를
니헤이 지카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알파미디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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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선언을 하겠다. 하루키 팬이지만 소설보다 에세이가 훨씬 좋다. 하루키 소설은 카프카적인 분위기나 묵시록적 세계관 때문인지 거듭해서 읽기가 어렵다. 왠지 모르게 하루키 소설은 나를 진지하게 만든다. 텍스트를 연구 분석하듯이 읽게 만든다. 가령 소설에 드러난 하루키 코드들을 연신 체크하게 된다. 작가 장석주에 따르면, "현실과 비현실의 혼재, 관계의 파탄, 작중 인물들의 혼란과 긴여행, 성애, 고급스런 기호와 취향의 편린들, 갑자기 나타난 조력자에게 도움받기" 등이 바로 그런 하루키 코드들이다.

다시 말해서, 복수로 존재하는 세계인 패러렐 월드, 가족 해체와 중산층의 와해, 투명한 슬픔과 허무주의, 히키코모리 현상, 개인 자아의 문제 등이 '하루키 월드'의 이런저런 특색이다. 덕분에 귤을 까먹거나 침대에 뒹굴면서 하루키 소설을 읽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하루키 에세이는 얼마든지 그런 일이 가능하다. 솔직하고 담박한 고백체, 취미나 취향을 말하는 잔잔한 목소리 덕분에 자주 손이 가게 된다. 하루키의 산문과 잡문은 거듭해서 읽게 만드는 묘한 편안함이 있다.

하루키 연구자 니헤이 지카코는 하루키 작품들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를 '자유로운 삶에 대한 탐구'라고 주장한다. 하루키 소설의 테마가 '자유'라는 주장은 하루키 작품이 사소설과 1인칭 시점이 많고, 권위주의와 광신주의에 대한 개인의 저항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납득이 간다. 다만 자유라는 테마는 '순문학'이 갖는 너무나 당연한 사명이기에 특별히 인상적인 느낌이 오진 않는다. 넬슨 만델라는 "자유롭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사슬을 끊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고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문학의 소명과 소설가의 진정성이 바로 그러한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노르웨이의 숲』, 『1Q84』, 『해변의 카프카』 같은 하루키 소설의 대표작에는 늘 사회적 소수에 해당하는 인물이 등장하며 그들의 삶을 통해 자유로운 삶의 어려움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개구리 군, 도쿄를 구하다」, 「드라이브 마이 카」, 「코끼리의 소멸」, 「빵가게 재습격」 등과 같은 단편 소설들도 부자유를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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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츠 - 나치 포로수용소를 뒤흔든 집요한 탈출과 생존의 기록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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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트라즈 탈출〉 같은 탈옥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명 영국의 칼럼니스트 벤 매킨타이어의 나치 포로수용소 이야기 《콜디츠》(열린책들, 2025)에 반할 것이다. 콜디츠는 '나치에 맞선 저항'을 상징하는 전설적인 포로수용소다. 독일 라이프치히 인근 콜디츠 성에 자리했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부정적인 태도를 드러내거나 다른 수용소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고위급 장교급들을 가두는 포로수용소였다. 북쪽에는 예배당과 시계탑, 서쪽에는 극장, 소포실, 선임 장교 숙소, 남쪽에는 포로용 주방과 독일군 숙소, 동쪽에는 영국군 포로 숙소가 있었다.

콜디츠는 겉보기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였지만, 실은 너무나 복잡한 중세식 구조 때문에 숨을 곳이 아주 많았기에경비와 감시가 쉽지 않았다. 실제로 모든 포로수용소 가운데 콜디츠에서 가장 많은 탈출 시도가 이루어졌고 방식은 기발하고 정교했다. 가령 포로들은 수십 개의 굴을 파고, 위조 신분증과 변장을 준비하고, 탈출을 위한 도구를 직접 제작했고, 독창적인 기만술을 구사했다.

자유와 생존을 위한 탈출 시도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도 했다. 구금 생활의 불안과 긴장감 그리고 심심함을 풀어줄 오락거리가 절실했다. 포로들은 제네바 협정의 포로 규정에 따라 비교적 제대로 된 대우를 받았다. 덕분에 낮에는 콜디츠 성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고 각종 공연이나 스포츠 같은 오락 생활도 즐길 수 있었다.

"포로들의 생활은 정해진 패턴을 따랐다. 아침 점호, 숙소에서 아침 식사, 설거지와 정리, 일부 포로는 공부 조금(서로 언어를 가르쳐 주는 일이 계속 호황을 누렸다), 취사장 종이 점심 식사를 알리면 당번병들이 독일군 주방에서 배급 식량 수령, 그 다음에는 침대에 누워 오후 점호 때까지 책을 읽거나 카드놀이를 했다. 점호 뒤에는 스툴볼 같은 스포츠 경기, 또 카드놀이, 탈출계획짜기, 이런저런 도구 만들기, 4시의 티타임, 안마당에서 '영원히 원을 그리며' 터벅터벅 돌고 또 도는 시간, 식사와 점호 사이의 시간은 '담배 피우기, 수면, 자기 학대'의 사이클 속에서 닳아 갔다."(239쪽)

콜디츠는 영국, 프랑스, 폴란드,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적의 포로들이 등장하는 연극 무대와 같았다. "포로수용소의 괴상한 부산물 중 하나는 바로 연극 재능의 개화, 그리고 독특하게 어둡고 음탕한 유머 감각이었다."

또한 콜디츠는 유럽 계급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다양한 성향과 배경을 지닌 포로들이 사회적 계급에 따라 무리지었는데, "콜디츠의 계급 구조는 당시의 계급 구조와 같았다." 가령 노동 계급인 일반 병사는 당번병이었고, 중간 계층은 사립 학교 출신 장교들이었고, 그 위에 소위 '프로미넨테' 회원이나 '영주' 같은 상류층이 있었다. 장교들은 당번병을 무시했으며 유색인 포로였던 인도의 마줌다르는 인종차별을 받고 따돌림을 당했다. 포로들은 앞서 언급한 사회적 계급 외에도 소일거리에 따라 분류되기도 했다. 포로들은 크게 '탈주자, 창조자, 행정가, 학생, 잠꾸러기' 다섯 가지 범주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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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어른이 된다는 것 - 말보다 행동으로, 훈계보다 배려로 보여 주는 품위 있는 삶의 태도
김경집 지음 / 오아시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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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함의 반대말은 어른스러움일까. 나이를 먹고 나니 '걸작' 애니라고 소문난 작품도 막상 보면 꽤나 유치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원피스〉와 〈진격의 거인〉을 다 보지 못했다. 〈나루토〉나 〈시티헌터〉, 〈메종일각〉처럼 한때 좋아했던 애니도 지금 와서 다시 본다면 유치함과 지루함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다. 그런 느낌이 들까 봐, 한때의 명작들을 굳이 다시 들추진 않는다. 취향도 문턱이 있는 법이다. 나는 어른스러움이 '진정한 인간다움'의 또 다른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리에 '어르신'은 넘치지만 '진짜 어른'은 없다는 말을 가끔 한다. '진짜 어른'은 어른의 품격이나 성숙한 태도를 가리키지, 나잇살과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이다. 연세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태도다.

한국은 이제 엄연한 초고령사회다. 실용적인 노후 대책도 발에 불똥이 떨어진 시급한 과제지만, 내면적인 성숙함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정말 절실한 요즘이 아닐까 싶다. 과일이 맛있게 익어가듯, 사람의 내면도 세월이 흐를수록 성숙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반목과 갈등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런 세대 갈등엔 청년세대도 기성세대도 다 문제가 있다는 양비론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하지만 세대 간 갈등과 반목을 줄이기 위해선 그래도 인생 경험이나 자산이 좀 더 풍부한 기성세대들이 서너 걸음 앞서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문학자 김경집은 '괜찮은 어른이란 어떤 모습일까'를 화두로 꺼내어 우리 사회의 세대갈등 이슈는 물론, 어른스러움의 조건과 태도를 살피고 있다. 중장년을 대상으로 '괜찮은 어른',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현실적인 조언들을 들려준다. 일단 괜찮은 어른이란 "내면이 단단하되 그 인식과 판단의 뿌리에서 역동성을 발휘하는 어른"이다. 쉽게 말해서, '말보다 행동으로, 훈계보다 배려로 보여주는 품위 있는 삶의 태도'를 지닌 사람이 내면이 단단한 어른이다. 나는 그동안 저자를 진보 지식인이라고 쭉 여겨왔는데, 책에서 "나는 보수다"라고 고백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 물론 여기서 보수의 의미와 품격은 정당 노선이나 수구세력의 태도와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그럼, '좋은 어른'의 모델 같은 게 있을까? 저자는 그 예로 흥미롭게도 '퍼레니얼 세대'라는 신조어를 언급한다. 실리콘밸리의 사업가 지나 펠이 처음 제안한 말인데, 여기서 퍼레니얼은 해마다 꽃을 피우는 다년생 식물을 지칭한다. 즉, 퍼레니얼 세대는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피어나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퍼레니얼 세대를 특징짓는 마인드셋으로, 저자는 배우려는 마음(호기심), 개방성, 사고의 유연성, 그리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네 가지를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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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뇌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단 하나, 상상에 관한 안내서
애덤 지먼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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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재구성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하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또한 상상력 덕분에 인류는 과학과 예술이라는 창조적 행동을 이끌 수 있었다. 영국의 신경과학자 애덤 지먼은 이런 한계가 없는 인간 상상력의 지도를 넓게 펼쳐 보이고 있다. 저자는 의식, 기억, 심상의 신경과학 연구결과를 토대로, 상상력의 양 극단인 아판타시아(머릿속으로 전혀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상태)와 하이퍼판타시아(머릿속 이미지가 너무나 선명하고 생생한 상태)는 물론, 상상력으로 촉발되는 꿈, 의식과 심상의 관계, 창조의 과정부터 환각, 망상, 트라우마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의 마법과 같은 힘을 추적해나간다.

인간은 왜 상상하는가. 상상은 세상과 자아를 모델링한다. 저자는 뇌과학, 철학, 예술을 넘나드는 다양한 사례를 빌어 상상이 인간 사고와 지각을 어떻게 구성하고 왜곡하는지 탐구한다. 저자는 심상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지금 여기의 심상'(지각적 심상), '지금 여기에 없는 사물의 심상', '있을지도 모르는 사물을 재구성한 심상'이다. 이들 심상은 시각화, 시뮬레이션, 기억 복구 능력, 미래적 사고와 직결된다. 하지만 창의적 상상력에 반드시 심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상상은 복잡하고 다면적인 용어이자 개념이다. 고대 어원인 '에임'에서 유래하는 '짝짓기'나 '결합' 같은 개념은 상상의 다양한 용법을 아우른다. 과학적 상상력과 예술적 상상력의 바탕을 이루는 생산적 상상은 "호기심을 채우는 충족감, 발견할 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전율, 아름다움을 보면서 느끼는 경외감, 허구 세계로 마음이 확장되는 듯한 주의 전환, 몰입할 때 느끼는 자기초월" 등과 같은 역동적인 보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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