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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이렇게 읽어라 - 무기력하고 괴로운 현실에 상상력과 자유를
니헤이 지카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알파미디어 / 2025년 10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양심선언을 하겠다. 하루키 팬이지만 소설보다 에세이가 훨씬 좋다. 하루키 소설은 카프카적인 분위기나 묵시록적 세계관 때문인지 거듭해서 읽기가 어렵다. 왠지 모르게 하루키 소설은 나를 진지하게 만든다. 텍스트를 연구 분석하듯이 읽게 만든다. 가령 소설에 드러난 하루키 코드들을 연신 체크하게 된다. 작가 장석주에 따르면, "현실과 비현실의 혼재, 관계의 파탄, 작중 인물들의 혼란과 긴여행, 성애, 고급스런 기호와 취향의 편린들, 갑자기 나타난 조력자에게 도움받기" 등이 바로 그런 하루키 코드들이다.
다시 말해서, 복수로 존재하는 세계인 패러렐 월드, 가족 해체와 중산층의 와해, 투명한 슬픔과 허무주의, 히키코모리 현상, 개인 자아의 문제 등이 '하루키 월드'의 이런저런 특색이다. 덕분에 귤을 까먹거나 침대에 뒹굴면서 하루키 소설을 읽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하루키 에세이는 얼마든지 그런 일이 가능하다. 솔직하고 담박한 고백체, 취미나 취향을 말하는 잔잔한 목소리 덕분에 자주 손이 가게 된다. 하루키의 산문과 잡문은 거듭해서 읽게 만드는 묘한 편안함이 있다.
하루키 연구자 니헤이 지카코는 하루키 작품들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를 '자유로운 삶에 대한 탐구'라고 주장한다. 하루키 소설의 테마가 '자유'라는 주장은 하루키 작품이 사소설과 1인칭 시점이 많고, 권위주의와 광신주의에 대한 개인의 저항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납득이 간다. 다만 자유라는 테마는 '순문학'이 갖는 너무나 당연한 사명이기에 특별히 인상적인 느낌이 오진 않는다. 넬슨 만델라는 "자유롭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사슬을 끊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고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문학의 소명과 소설가의 진정성이 바로 그러한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노르웨이의 숲』, 『1Q84』, 『해변의 카프카』 같은 하루키 소설의 대표작에는 늘 사회적 소수에 해당하는 인물이 등장하며 그들의 삶을 통해 자유로운 삶의 어려움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개구리 군, 도쿄를 구하다」, 「드라이브 마이 카」, 「코끼리의 소멸」, 「빵가게 재습격」 등과 같은 단편 소설들도 부자유를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