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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토너의 인생은 별 게 없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역시 곤궁하게 살았다. 첫 사랑과 결혼했으나 행복하진 않았다. 딸을 사랑했지만 행복하도록 지켜주진 못했다.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인정받진 못했다. 화려한 성공의 순간도, 평온한 환경도 없었다. 외롭고 고달팠다.
그 삶을 책으로 만났다. 특별한 게 없는데 가슴을 묵직하게 누른다. 그리고 부럽다. 그는 그의 삶을 지탱할 사랑을 만났다.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그를 그 자신으로 살게 해주는 사랑이 있었다. 인정해주는 이가 있든 말든, 화려한 성취가 있든 말든, 그는 그 사랑을 지켰다. 묵묵히 그만의 삶을 살아냈다. 부러웠다. 삶을 다할 때까지 사랑했다는 게. 다른 사람의 모략과 공격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자신을 지켜냈다는 게. 부족해 보이는 인생이 완벽한 삶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책을 다 읽었는데 마음에서 책장이 덮이질 않는다. 마지막 스토너의 질문이 계속 마음에 파고든다. 난 내 인생에 무엇을 기대했나?
이건 사랑일세...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 주기를 기다렸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우리 둘 다 지금과는 다른 사람, 우리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사람이 될 거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거야.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번 일에서, 적어도 우리 자신의 모습은 지킬 수 있었오. 지금의 모습이......우리 자신의 모습이니까.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열매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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