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 붐이다. 일본 영화도 많다. 허나 난 일본적인 것에 감응을 보이지 않는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모두들 열광할 때에 단지 한번 집어 든 책 끝까지 본다는 오기로 그 지루함을 견뎌냈다. 그 이후로도 유명한 건 다 봤다. 결국 내리는 결론은 역시 나랑은 안 맞아였다. 왠 미련인지... 남들 다 보는 거 봐줘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나보다. [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에 대한 극찬이 솔솔찮게 들려온다. 그토록 감응한 적 없건만 이번에도 또 돈들여 책을 샀다. 웃긴다니까, 혹시 웃을지도 몰라서였다. 웃고 싶기도 했고. 안웃겼다. 젠장. 첫편읽고 덮었다. 그런데 누가 책을 빌려달랜다. 보고 안웃으면 밥산다고 할만큼 재밌다고. 안 읽은 책 빌려주기 아까와서 억지로 다시 읽었다. 근데 이외다. 볼수록 재미있다. 처음엔 어이없어 피식웃고, 다음엔 그냥 따라 웃고, 나중엔 동화되어 웃었다. 꼭 주인공 이라부 의사를 찾아간 환자들과 똑같은 반응이다. 처음엔 뭐 이런 의사가 다 있어 하며 황당해하지만, 그 의사의 거침없는 천진함과 그래도 의사다운 예리함에 어어 하다 끌려가버리는 거다. 그러다 어느새 꼭꼭 숨겨 놨던 응어리를 풀어놓게 되고, 황당무계한 치료법에 끌려다니다 보면 어느새 자유롭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주인공 이라부 의사의 매력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다. 결코 이성적으로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마음은 끌려간다. 말도 안되는 무모함 속에 퍼뜩퍼뜩 스스로를 일깨우는 자각이 있다. 어느새 난 한 걸음씩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다. 책은 그렇듯 이라부가 환자를 치료하듯 독자를 치료한다. 마치 정신없이 딴데 보라고 호들갑 떠는 사이, 아야 주사 한대 맞고, 뭐야 하고 병원은 나서 보면 앓던 병이 사그라들어 있는 것 같다. 마약 맞고 나온 것도 아니고...홀린 것 처럼. 이네들 감성이야 여전히 적응 안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책에 감사하고 싶다. 이 책의 환자들처럼 나도 어쩌면 다양한 신경증과 강박증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과 함께 웃으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난 그 환자들처럼 책이 이래야하고 저래야 하고 주절대지만 이라부는 뭐 그게 중요해. 자유로우면 되잖아. 나으면 되잖아. 한번 그냥 해봐 하며 날 새로움으로 불러내었다. 그래서 마치 내 강박증이 나은 것처럼 기분이 좋다. 앞으론 강박증으로 일본 소설을 사 읽진 않을 것 같다. 한발 한발 함께 느껴나갈 수 있는 열림으로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긴다. 이라부가 안겨 준 선물이다. 책값 그 치료비라 생각하니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