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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조는 순수했다. 남을 해한 적이 없고, 행여 상처가 될까봐 거절을 못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호의에 같은 진심으로 대하질 않았다. 요조는 인간의 허위에 좌절하면서도 끝내 인간을 단념하지 못했다. 자기 파멸이 그저 세상에 순응하지 못한 순수가 걷는 나약함이었을까? 혹은 그가 선택한 자신다운 저항이었을까?
요조의 순수함은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스스로를 버리면서까지 순수를 지켰으므로, 모순적으로, 자신다움은 지켰는지도 모르겠다. ‘인간 실격’은 어쩌면 세상에 순응하지 못한 순수가 치르는 대가인지도. 어쩌면 요조는 인간다움을 지키지 못한 속죄를 자기 파멸로 치르고자 했던 걸까. 그렇다면, 순수도 ‘죄’일까. 고민이 많아졌다.
한 젊은이의 고뇌가 이상하게 중년을 넘어서는 내 마음에도 공명을 울렸다. 세상의 허위와 그 위선에 좌절하면서도, 세상에 편승하는 나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과 또다시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사람과 거리를 두려는 분투는, 온 인생을 걸쳐 치르는 싸움같다. 요조의 고뇌와 좌절은 지금도 세상에서 지속되는 개개인의 분투를 비추는 자화상 같아서 가슴이 먹먹하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 P17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길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P129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호리키의 그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미소에 저는 울었고, 판단도 저항도 잊어버렸고, 자동차를 탔고, 여기에 끌려와서 정신 이상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나가도 저의 이마에는 광인,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겠지요.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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