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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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여유가 생기니 소설도 끝까지 읽게 되었다. 이 책도 몇 번을 손에 들었다 끝을 맺지 못한 책이다. 재미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땐 다른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잠시 읽다가 손에 놓기 일쑤였다. 

아침 한 나절 잠시만 집중하면 읽어내릴 책인데 그간 왜 그리 번잡했을까 싶다. 

이젠 가망이 없다고 단정지은 삶.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그렇게 살았다. 엄마도 아빠도 없는 경우가 일반이었고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이 하루 식사의 전부였다.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아질까 싶어 미친 듯이 일탈을 해보아도 정신을 차려보면 비참한 현실에 절망감밖에 건질 것이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관심을 가져주었다. 자신이 가졌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궁핍한데 나누었다. 그렇게 서로를 품어 안았다. 그런데 그 안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희망이 있는 삶을 향해 나가기 시작했다. 

비록 그럴싸한 직업에 거창한 꿈은 아니지만 가족을 돌보고 좋은 가족이 되겠다는 꿈. 그 꿈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바로 잡았다. 지금 웃고 있는 현실을 지키고 앞으로도 계속 웃기 위해. 그건 같이 저녁 먹고 웃는 함께하는 삶의 행복이었다.

가진 것이 없고, 처한 현실이 너무 초라하기에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함께하는 행복은 몹시 찬란하고 눈부시다. 가슴저리게 아름답다. 내가 일상처럼 누리지만 감사할 줄 몰랐던 빛바랜 행복이 그곳에서 찬란하게 빛이 났다. 

명희 선생님이 마지막에 이야기한 '소중한 것'이라는 단순한 말이 너무도 실감나게 가슴에 와 박혔다. 거창하지 않지만 결코 시시하지 않은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웃는 삶. 마음을 채워주는 따뜻함은 바로 그 소중함을 간직하는 삶에 있었다. 

선생님이 무슨 말씀하시는지 알아요. 선생님은 좀 그럴듯한 직업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런데 전 그냥 기술자가 되고 싶어요. 한 가지 기술로 오랫동안 직장을 다닐 수 있는 그런 기술자, 그게 제 꿈이에요. 배우는 데 좀 힘들어도 오래 할 수 있는 일 말이에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근데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꼭 그런 기술자가 되어서 우리 동준이 대학도 보내 주고, 착한 여자 만나서 잘살고 싶어요.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되는 거, 그게 제 소원이에요. 선생님은 제 소원이 시시하다고 생각하시죠?
......
명희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자신에게 물었다. 아직도 좋은 아버지가 되고, 듬직한 형이 되는 것이 작고 보잘것없는 꿈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직도 착한 사람으로 사는 건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명희는 또 숙제가 밀린 아이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p.228)

명희는 이제서야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명희는 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 아기를 업은 채 환하게 웃고 있을 숙자가 보고 싶었다. 공장에서 시커먼 기름때를 묻히고 돌아와 허겁지겁 밥상으로 덤벼들 동수도 빨리 보고 싶었다. 삼겹살과 김치 부침개와 김칫국으로 차린 저녁 밥상에 둘러앉을 식구들을 생각하니 명희는 벌써부터 배가 불러 오는 것 같았다.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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