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4 - 교토의 명소, 그들에겐 내력이 있고 우리에겐 사연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편을 완결하는 4권 교토의 명소

이번편은 일본의 정원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나왔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정원은 큰차이를 보인다

일본의 정원은 정말 잘가꿔짐의 정점을 보여준달까

일본식정원을 보면 잘만들어진 작품같다는느낌이다

하나의 오점도 허용하지않겠다는 단정함과 정갈함이 엿보인다

단점이라면 부담스럽다일까나

그곳은 그안으로 들어가는것을 허락치않는다

그저 정원바깥에서 관조하는용일뿐

자연미보다는 인공미가 우세하다

반대로 한국의 정원은 인공적인 느낌보다는 자연친화적이다

창경원을 봐도 주변경관과 어우러진 느낌이 강하다

어느것이 더 낫고 못하고를 논할수는 없다고 본다

저자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다

단치 문화적차이일뿐

특별히 열등감을 가질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상대를 깎아내릴필요도 없는것이다

다기나 다원에 대해서도 설명되어있는데

확실히 다도문화는 일본의 고유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저 고려청자 조선백자 이런것만 보다가

투박한 다도그릇이 뭐가 대단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랜세월 그 그릇으로 차를 마셔온 문화가 면면히 새겨져있는 귀중한 그릇이 아닐까나

그리고 우리는 일본역사는 배우지않은탓에 배경지식이 부족한데

그에 대한 보충설명이 있어서 좀더 이해하기 쉬웠다

메이지유신전에 일본은 막부시대라는것만 알았지

천황과 막부라던가 뭐 이런건 잘몰랐지만

막부시대 천황이 실권은 거의 없고 이름뿐인 직함을 가지고 있고

천황과 실권을 가진 막부가 분리되면서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였다는것이다

물론 그것이 메이지유신이후 좀 달라지긴 하지만

조선시대 일본과 외교관계였을때의 주체는 그당시 막부실세가 되는것이다

일본이 식민지시절 조선은 봉건시대가 없었다는 정체성론을 주장할때 뭔 개소리야 했는데

일본은 지방영주의 힘이 강할때가 있어서 중앙집권이 아닌 봉건영주시대를 거쳤다는것이다

그래서 지방특색이 있는 문화가 발전할수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내내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은터라 우리나라는 그런건 좀 부족한듯했다

게다가 유교국가였던 조선은 기예를 가진사람을 천시했고 불교를 억압했던터라

그당시 아무생각없이 불경이나 불화를 일본에게 주었다고 한다

필요없다는 생각이었겠지만 지금에와서는 아쉬울따름이다

아니면 그렇게나마 일본에서라도 조금씩 남아있는게 다행인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씁쓸한건 사실이었다

일본역시 집권세력이 교체되면 전임자의 성을 모두 부숴버리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

그래서 오다 노부나가의 성역시 모두 부서졌다고 하는데

그의 성에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있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타까울따름이고

천황이 실권이없던터에 천황들은 그당시 학문과 문화에 힘썼다고 하는데

그래서 정원은 많이 지었다고 한다

천황의 이궁이었던곳은 일본궁내부의 관리하에 철처하게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공개를 하지않고 보존을 위해 조심하는경우가 많은듯하다

아쉽긴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예약을 해서라도 꼭 실제로 보고싶은곳의 리스트로 올려야할듯

가깝고도 먼나라라고하지만

중국에 비해 일본은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그동안 너무 멀리했던게 아닌가싶다

극히 일부분의 한조각일지 모르지만

몰랐던것을 조금이라도 알게된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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