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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
마이크 니콜스 감독, 엠마 톰슨 외 출연 / 워너비엔터테인먼트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영화 ‘Wit’를 보고

말기 암환자에게 인간의 존엄성 유지가 가능한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든 감동영화

주인공 Vivian Bearing (Emma Thompson )은 시인 John Donne를 전공한 유명한 영문학 교수다.홀로 고지식하게 살아온 그녀에게 어느 순간 4기 난소암 진단이 내려진다. 치료를 맡은 Dr. Kelekian교수는 실험적이긴 하지만 최대 용량의 항암치료를 제시하고 그녀는 기꺼이 도전하겠다고 받아들인다. 자각 증상에 의한 고통도 없고 항암제의 부작용도 경험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는 치료를 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당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원 첫날 Dr. Kelekian 밑에서 그녀의 치료를 담당하게 된 전공의 Dr.Posner는 지극히 통상적인 골반 내진을 실시하고 사전 설명이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내진을 당한 그녀는 생애 처음으로 모멸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건 서막에 불과하다. 그녀의 검사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하나같이 사무적이다.

말기 암환자에게 치료의 성과가 검증되지 않는 연구목적의 과도한 치료가 받아들여 질 수 있는가

수술로 복강 내 암 덩어리는 완전히 제거되지 못하고 Dr. Kelekian은 최대 용량의 항암제를 투여한다. 한 사이클이 돌기도 전에 머리카락은 빠지고 Dr. Posner는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로 그녀의 고통보다는 연구목적의 데이터에만 관심을 쏟는다. 구토 중에 그녀는 뇌가 빠져나간다고 느낀다. 그녀가 겪고 있는 고통에 상관없이 Dr. Posner의 인사말은 한결같다.  ‘How are you feeling today?’ 항암제 때문에 의식이 오락가락하는데도 그것을 자기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도 심지어는 그녀가 죽어있는데도 쳐다보지도 않고 ‘How are you feeling today?’. 의과대학 입학 전 Bearing교수의 시문학강의를 들었다는 인간적인 관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Dr. Posner가 받은 시문학 A학점은 인간의 감성을 이해한 척도가 아니라 의과대학 입학을 위한 하나의 준비절차처럼 여겨진다. 일주일에 한번씩 Dr. Kelekian은 전공의와 학생들을 데리고 회진을 돈다. 고통스러운 그녀 앞에서 이들이 보이는 관심사항은 인간이 아닌 질병이다. 고장난 기계 앞에서 장인이 제자들을 모아놓고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묻는 방식과 전혀 다름없다. 그녀는 고장난 기계가 된다.

죽음을 향해 내몰리는 두려움을 어떻게 감당하나

기력이 떨어지기 전만 해도 그녀는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만큼 엄격했던 그녀의 지도교수였던 Ashford교수의 박사과정도 겪었으니까. 처음에는 John Donne의 소네트가 그녀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의사들은 너무나 사무적이었고 질병에만 관심을 보였다. 실험적으로 투여한 과도한 양의 항암제는 그녀를 죽음 직전으로 몰고 갔다. 그때마다 의사들은 항암제가 효과가 있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판에 박은 말만 되풀이 했다. 자기가 겪고 있는 고통과는 다른 이야기에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의사들의 말은 항상 똑같았다. 간호사 Susie Monahan은 의료진 가운데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상대다. 그녀로부터 자신의 항암치료가 전혀 효과가 없고 몸의 면역체계는 거의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망가진 몸을 의사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의식도 가물가물해서 John Donne의 소네트도 떠올릴 수 없다. Ashford교수가 그녀를 방문한다. 말 한마디 내뱉기 힘들다. Ashford교수가 소네트를 읽어줄까 제안하지만 그녀는 거부한다. 대신 어렸을 때 아버지와의 행복한 시간을 떠올리는 어린이 동화책 ‘Runaway Bunny’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녀는 잠에 빠진다. 그녀의 유일한 위안이다.

치료의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은 지켜질 수 있는가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두 가지를 대한다. 하나는 환자라는 인간이고 하나는 환자 몸에 있는 질병이다. 의사는 질병을 치료한다. 당연히 관심은 질병이다. 검사의 초점은 질병이고 치료의 초점은 질병이다. 검사과정 중에 치료과정 중에 환자가 어떤 육체적 고통을 겪는지 어떤 모멸감을 느끼는지 환자의 존엄성이 얼마나 상처입는지에 대한 생각은 아예 관심이 없다. 그것에 관심을 갖는 순간 환자치료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여기는지 의사의 머리 속에서 인간과 질병은 완전 분리된다. 환자는 내 몸 안의 질병치료를 의사에게 맡긴 이상 어떤 것이던지 의사의 지시에 따를 수 밖에 없고 의사에 판단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치료 중에 받는 어떠한 고통도 어떠한 존엄성에 대한 상처도 질병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기에 감내하는 수 밖에 없다. 환자에게는 어떤 선택권도 없다. 내 몸 안에 있는 질병의 치료를 의사에게 맡기면서 질병과 분리된 나의 인간됨은 그대로 포기한다.

Part,  Shostakovich, 그리고 Gorecki

영화 내내 Arvo Part거울 속의 거울음악이 흐른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은하수를 타고 서쪽 나라를 향해가는 쪽배처럼 무심하게 차갑게 때로는 단순하게 그러면서도 스멀스멀 영겁의 나라로 다가가는 모습으로 우리의 감성을 유도한다.  CD 내지 설명을 보니 이 곡은 죽음과 불멸에 대한 명상이며, 인간존재 의식에 대한 명상이며, 예술가의 운명과 영적가치의 불멸에 대한 명상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 영화의 스토리에 Arvo Part의 음악은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그것은 고스란히 내 눈에 눈물이 되었다. 영화는 Shostakovich 의 현악사중주 15번의 제 2악장 하이 톤의 바이올린으로 시작한다. Dr. Kelekian의 선고가 내려진다.  암입니다. 전이성 난소암입니다.’ 사무적으로 내뱉는 판결에 놀람과 당혹감으로 허물어져가는 환자의 비명이 들려온다. 면역체계가 망가져 고열이 동반되어 급히 응급실을 찾은 그녀의 두려움 속에서 현악사중주는 다시 들려온다. Gorecki교향곡 3번의 2악장 라르고는 인생을 담담한 시선으로 관조하면서 시작한다. 인간의 일생은 우주시간에서 찰나에 불과하며 인간의 한 몸은 우주에서 한 티끌도 못 되는 미물이다. 인생의 기복은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티도 나지 않는 존재없는 존재다. 그러면서도 낮고 굵은 현과 오르간의 소리덩어리는 무심하고 허무하다. 슬픔이 밀려온다. 그러다가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따뜻한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상처를 네 엄마와 나누거라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언제나 너를 내 마음에 담고 살아왔기 때문이란다

언제나 너를 믿음으로 보살펴왔기 때문이란다

네 엄마에게 말하거라 기쁨을 주거라

네가 이미 나로부터 떠나갔어도

나의 소중한 희망이여

 

아니어요 엄마 울지마세요

사랑스런 하늘나라 왕비가

나를 언제나 도와줘요

 

내 사랑하는 아들아

어디로 간거니

아마 하늘로 올라가는동안

잔인한 적들이 내 아들을 죽였어요

 

오 나쁜 인간들아

신의 이름으로 성스러운 신의 이름으로 묻노니

말해라 왜 내 아들을 죽였느냐

 

이젠 다시 그를 돌볼 수 없구나

울다 내 늙은 눈알이 빠져나가도

내 쓰디쓴 눈물이 또 다른 오데르강을 만들지라도

그들은 네 생명을 돌이킬 수 없구나

내 아들아

 

Gorecki가 그랬던 것처럼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슬프면서도 공허한 눈빛이 인간의 존엄성이 배제된 채 차디찬 치료를 받다가 죽어가는 그녀의 얼굴과 화면에 오버랩 되는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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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카랄도 (Fitzcarraldo)


배가 산을 넘는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하기야 우리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지만 사공은 한 명인데 배가 실제 산으로 올라간다. 영화 피츠카랄도(Klaus Kinski 주연, Herzog 감독)에서 욕망에 집착하는 한 사나이의 광기가 도무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일을 만들어 낸다.


피츠카랄도는 오페라를 광적으로 좋아하며 특히 엔리코 카루소에 열광한다. 그의 꿈은 아마존 열대밀림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고 카루소를 초청하여 개막공연을 갖는 것이다. 남들은 비웃고 비생산적인 계획을 무시한다. 그럴수록 그의 꿈은 더욱 확신을 갖게 되고 부인은 유일한 협력자가 된다. 아직 문명화가 되지 않은 열대 밀림에 오페라나 카루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며 오로지 피츠카랄도 자신만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두 다 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욕망이 되고 열광은 광기로 변한다. 오페라 하우스를 짓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밀림의 고무를 채취해 돈을 벌기로 하고 고무나무가 있는 폰고지방까지 배를 몰고 가려 한다. 그러나 지름길은 급류가 흘러 배를 타고 가지 어렵고 우회 물줄기를 타고 올라가 배를 끌고 산을 넘어 가기로 한다. 흰 배를 신성히 여긴 원주민 인디언 수 백명은 기꺼이 배를 옮기는데 모든 힘을 다 바친다. 천신만고 끝에 배는 산을 넘어 건너편 강가에 띄어지고 모두들 축제를 벌인다. 이 축제는 문명화된 피츠카랄도에게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자연을 정복한 승리의 제의(祭儀)이지만 원주민들에게는 신성한 물체를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옮겨놓은 경건한 의식 밖에 되지 않는다. 급류를 만든 악마를 달래기 위해 배를 그대로 폰고지방에 묶어 둘 수는 없다. 모두들 잠든 사이 추장은 배를 묶은 밧줄을 끊어버리고 배는 하류로 흘러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간다. 떠내려가는 배 위에서 피츠카랄도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카루소의 노래를 트는 것 뿐 이다. 아니 피츠카랄도도 카루소의 노래는 이제 일종의 제의행위이다. 인디언의 영혼과 피츠카랄도의 영혼이 서로 소통을 한 모양이다. 문명화된 인간의 욕망이 원주민의 원초적 신앙과 갈등을 겪었으나 그 지방에 뿌리를 둔 원주민의 신앙으로 결론이 난다.


이제 모든 것이 거덜난 피츠카랄도는 전 재산에 해당하는 그 배를 헐값에 넘기고 그 돈으로 오페라단을 초청하여 선상(船上)에서 자신만을 위한 오페라를 공연한다. 비록 카루소를 초청하여 개관행사를 갖지 못했지만 카루소를 좋아하는 돼지를 위한 벨벳의자 옆에 서서 긴 시가를 물고 흐뭇한 표정으로 오페라 공연을 관람한다. 드디어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오페라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엘비라를 사랑하는 아르투로의 마음이 되어 사랑의 세레나데가 배 위를 울려 퍼진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에게 사랑을’


실제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아마존강을 오가는 큰 배를 산으로 끌어 올렸으며 이 장면만을 위해 무려 7개월을 고생했다고 한다. 피츠카랄도의 광기는 그대로 감독 헤르초그의 광기를 보여준 것이다. 피츠카랄도역의 킨스키는 그의 독특한 외모와 광기어린 표정으로 헤르초그 감독과 계속 작업을 같이 해 오다 이 영화를 끝으로 둘은 결별한다. 4년에 걸친 이 영화의 제작과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광기어린 작업이었던 것이다.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I Puritani)는 청교도 정치가 아버지를 둔 엘비라와 청교도와 대립관계인 귀족출신의 아르투르간의 사랑의 이야기다. 크롬웰이 정권을 잡은 후 쫓겨 다니는 헨리 8세의 왕비를 구출하기 위해 결혼식 날 신부 엘비라를 버린 아르투르, 크롬웰에 의해 사형이 선고되고 엘비라를 미쳐버리게 만든 그는 청교도측이 승리한 뒤 사면되어 엘비라와 다시 결합하는 것으로 끝난다. 아르투르가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인 ‘사랑하는 이여 그대에게 사랑을’은 벨칸토 테너에게 지극히 어려운 곡이지만 사랑의 곡으로는 지극히 아름다운 곡이다. 엘비라가 화답하여 부르는 이 곡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사랑은 나를 당신에게로 처음 인도했소.

비밀과 슬픔 속에서

사랑은 이제 당신을 내 곁에 부르오

기쁨과 환희 속에서

나의 사랑

<나는 이제 당신 거에요> 그렇소 당신은 내 것이오

하늘이여 우리의 맹세에 미소지어 주세요

이 위대한 사랑을 축복하여 주세요

이 사랑스럽고 빛나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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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과 지록위마


최근 5만원권 지폐에 들어간 신사임당 초상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화가는 스승이 그렸던 공인영정의 모습을 기초로 신세대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했다고 하는데 문중에서는 공인영정과는 다르고 평범한 여인네 얼굴이라고 불끈하고 어떤 이는 현모양처이면서 예술가인 여인의 향기가 전혀 나지 않는 그저 그런 여인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림에 전문성이 없는 내가 보더라도 곱게 차려입은 주변의 평범한 아낙네 이미지이지 그 이상의 모습은 기대하기 힘들다. 지폐의 초상을 우리가 날마다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실정에서 지폐에 어떤 인물의 초상이 들어가는지, 그 초상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는지, 그 얼굴에서 어떠한 품격과 향기를 뿜어내는지에 대한 논란이 뜨거울 수 밖에 없다. 또한 우리가 의도하던지 않던지 간에 지폐 액수에 따라 초상의 인물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는데 생각에 미치면 지폐에 어떤 인물을 실을 것인지, 어떤 초상을 넣을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폐의 초상은 그 나라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동서양 세계 각국은 그 나라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의 초상을 화폐에 넣는 것이 일반화되어있다. 날마다 사용하는 지폐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대하게 함으로서 그 인물이 살았던 자국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고 그 인물을 흠모케 함으로서 인물의 인간적 사상적 영향력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 로마시대에 황제의 초상을 화폐에 새겼던 것은 그 시대의 정치적 배경으로서는 매우 의미있는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한은이 5만원권에 들어갈 초상을 공론화하면서 신사임당이 과연 화폐에 들어갈 만한 인물인지에 대한 논란이 뜨거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화폐의 인물이 갖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가 간다. 결국 많은 국민이 공감하는 인물보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신사임당이 선택되었기에 씁쓸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사임당으로 결정했다면 신사임당의 진정한 모습을 그려 넣어야 한다. 상상의 모습이 아니라 실제의 모습이어야 하고 실제의 모습에서도 그 인간의 내면이 가장 잘 드러난 모습이어야 한다. 한 인간에 대한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인물의 실제의 모습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물의 모습이 그림으로나 사진으로 남아있지 않는 경우 기록에 남아있는 묘사를 통해 얼굴을 그려볼 수 있다. 일종의 몽타쥬 작성인데 인물묘사 기록이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인 경우에는 그려지는 얼굴은 전적으로 상상의 모습이고 가공의 모습이다. 중세에 그렸던 예수나 제자의 모습은 화가 자신의 얼굴이나 가까운 사람의 모습이었다는 게 그것을 증명한다. 다시 말해 실제의 모습이 아닌 닮아보고자 하는 가공의 인물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신사임당의 초상은 남아있지도 않고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유교전통의 시대에 사대부가의 여인 얼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기록이 있을 턱도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그리는 신사임당의 모습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신사임당의 모습일 뿐이다. 더구나 신사임당에 대한 평가는 율곡의 어머니라는 프리미엄으로 좀 과대평가된 느낌이 강하다. 조선시대의 사대부 여인의 얼굴을 통해 현재 남녀평등의 현대 여성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국민들에게 어떤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무척 회의가 든다.


가공의 초상을 만들어내고 그 모습을 보면서 닮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의도된 정치적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 이순신이 그렇고 세종대왕의 모습이 그렇다. 근엄한 얼굴을 한 단군을 그려놓고 이게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이다 라고 하는 것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책에서만 통용되는 사실일 뿐 그림이나 사진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으면 인물됨의 구체적인 기록을 통해 그 모습을 느끼도록 각자의 상상력에 맡겨두어야 한다. 따라서 신사임당의 얼굴을 임의로 그려내어 공공의 화폐에 그려 넣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가미된 불순한 행위로 밖에 파악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았던 동시대에 아니면 현재에 영향을 미쳤던 수 백년 이내의 우리역사에 화폐에 들어갈 만한 인물은 얼마든지 많고 초상이나 사진으로 그 얼굴이 남아있는 인물도 많다. 여성단체의 주장으로 꼭 여성을 넣어야 한다면 사진이 남아있는 유관순이나 나혜석, 민비 등이 훨씬 더 우리와 호흡할 수 있는 인물이며, 예술작품 특히 미인도 속의 여인도 좋은 후보라고 여겨진다. 상상 속의 신사임당을 그려놓고 이게 신사임당이다 라고 우기는 현실을 보고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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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커피를 탄다. 원두커피를 곱게 갈아 포드에 담고 꾹꾹 눌러 다듬은 후 에스프레스머신에 걸고 스위치를 누른다. 흰색과 하늘색 두 컵에 나뉘어 흘러내리는 뽀얀 커피를 유심히 지켜본다. 커피 잔 안에서는 말간 화장분 같은 색깔의 크리마가 북한강의 물안개처럼 덮여지고 계곡의 가는 물줄기 같은 커피 줄기가 좌우로 흘러든다. 잔이 중간쯤 채워졌을 때 스위치를 눌러 끄고 좀 더 깊은 맛이 있을 것 같은 커피 잔을 아내에게 준다.


아내는 커피를 좋아한다. 다방커피도 좋아하지만 아침 식사 직후 바로 마시는 커피를 제일 좋아한다. 항상 아침신문을 보면서 활자에서 풍기는 잉크냄새와 함께 마시는 커피를 좋아한다. 에스프레소의 진한 향이 느껴지는 그렇다고 찔끔찔끔한 양보다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넉넉한 양의 커피를 좋아한다. 잠깐 신문을 보다 커피가 식었어도 그 잔에 담긴 쌉쌀한 맛의 커피를 좋아한다. 아침커피를 마실 때마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아내를 위해 아침마다 커피를 탄다. 나도 커피를 즐기지만 원두커피를 갈고 뽑을 때까지는 아내를 위해 얼마나 크리마를 잘 낼 수 있을까 얼마나 깊은 커피 맛을 낼 수 있을까 이 정도 맛이면 아내가 좋아할까 이 정도 양이면 아내에게 적당한 양일까 첫 맛을 보고는 참 맛있네요 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을까 아내가 커피를 다 마시는 중에도 커피가 식지 않고 맛을 그대로 유지하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한다.  아내가 신문에 집중하다가 커피가 식을 때면 따뜻할 때 어서 드세요 라고 말하지만 문뜩 신문읽기와 커피 맛 느끼기의 강렬한 유대감을 깨뜨리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리 커피 잔을 뜨거운 물로 덥혀 놓을 걸 후회감도 든다.


행복을 위해 커피를 탄다. 커피머신에 물을 붓는 순간부터 행복을 위한 의식이 시작되고 흘러내리는 커피줄기를 보며 행복한 커피를 위한 마법을 건다. 알라딘 램프의 연기처럼 잔에서 풍겨 나오는 진한 커피 향은 아내와 나에게 행복의 마술을 건다. 아내가 커피를 마시며 참 맛있네요 라며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하고 그 모습을 보는 나의 뇌에서 엔돌핀을 스며 나오게 한다. 아내가 그냥 내 얼굴을 보고 커피를 마실 때보다 아침 신문기사에 두 눈을 고정한 채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는 모습이 훨씬 좋다. 눈과 코와 맛을 연결해주는 강한 유대감을 느끼며 평안과 행복의 마법에 잠겨있는 모습이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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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4-09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을 읽으니 저를 위해 커피를 내려줄 누군가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옆에 명반 열가지에 제가 가진건 세가지 밖에 없군요!!

치유 2009-04-09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편안하고 행복해 보여요..
커피향이 은은하게 풍겨오는듯하네요..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정말 향기롭고 좋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
 







[수입]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4-6번
Evgeny Mravinsky / DG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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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기력증에 빠질 때 절망감에 빠질 때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을 듣습니다.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교향곡에 비해 세련미나 완성미는 떨어지지만 이 교향곡은 생기를 불어넣는 힘이 있습니다. 특히 므라빈스키 연주는 거칠고 광폭하지만 4악장에서 터져나오는 맹렬함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에피네프린을 분비시켜줍니다.










카라얀 탄생 100주년 기념 - 베토벤 : 교향곡 제9번 합창 - 초도한정 디지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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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는 베토벤이 됩니다. 바하나 모짜르트는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있지만 베토벤은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가 살았던 치열한 삶이 내 자신의 모습이고 혼돈과 갈등의 응어리를 합창을 들으면서 뿜어냅니다. 음악은 인간의 또 다른 언어입니다. 그 언어는 번역이 필요없는 인류의 공통된 언어입니다. 모든 인류가 하나가 되는 꿈, 그게 바로 9번교향곡의 의미입니다. 남북이 통일되어 7천만이 하나되어 불러보길 소원합니다.










바흐 :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Henryk Szeryng / DG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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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의 무반주첼로조곡이 인간의 내면을 향한 음악이라면 무반주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우주를 향한 음악입니다. 특히 파르티타 2번의 샤콘느를 듣고 있으면 저 먼 우주속을 여행하는 느낌입니다. 캄캄한 우주의 심연에서 점점이 떠 있는 별들, 그 가운데 떠 다니는 내 영혼은 계시를 받고 무한한 희열을 느낍니다. 첼로조곡과는 달리 약간의 화려함이 들어있는 연주가 좋습니다. 조용한 방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혼자 들으시기를.










[수입] Pablo Casals - J.S.Bach / Cello Suites - Great Recordings of The Century
파블로 카잘스 (Pablo Casals) 연주 / 이엠아이(EMI)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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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의 무반주첼로조곡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입니다. 첼로의 저음을 통해 나오는 울림은 인간의 폐부를 찌르고 뼈속 깊이 잔잔한 진동을 전달합니다. 인간의 삶을 한편의 드라마라고 하지만 바하는 프랑스 춤곡의 형태로 표현하였습니다. 너무나 많은 세상의 외침속에 내 자신을 찾을 수 없을 때 바하의 음악을 나 자신을 들여다 보게 합니다. 악기 하나로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음악 그대의 이름은 바하. 바하의 진정한 울림을 느끼기 위해 현학적인 연주나 화려한 연주 매끄러운 연주는 오히려 부담이 됩니다. 카잘스나 빌스마로!










[수입] 베르디 : 리골레토 전곡
Maria Callas, Tito Gobbi, Tullio Serafin / 이엠아이(EMI) / 2006년 2월
39,500원 → 34,300원(13%할인) / 마일리지 35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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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골레토를 볼 때마다 저는 인간에 대해 공부합니다. 사랑, 증오, 정욕, 분노, 배신, 탐욕 등 인간이 인간일 수 밖에 없는 동물적이고 나약한 모습을 봅니다. 자식을 위하는 애비의 사랑과 연인의 정욕을 알면서도 연인에게 이끌리는 사랑이 충돌하며 오페라는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과 더러운 분노의 모습이 내 마음속에서 충돌하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며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를 깨닫습니다. 질다역의 칼라스도 좋지만 리골레토역의 곱비도 더욱 좋습니다. 오페라에 입문하시는 분들은 DVD로 꼭 보시길!










[수입] Wolfgang Amadeus Mozart - Piano Concertos No6.17.21 / Geza Anda - DG Originals
모차르트 (Mozart) 작곡, 게자 안다 (Geza Anda) 지휘, 게자 안다 (Gez / 유니버설(Universal) / 1998년 1월
15,000원 → 12,900원(14%할인) / 마일리지 13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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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1번 2악장은 엘비라마디간이라는 영화에 삽입되어 더욱 유명해진 곡입니다. 삽입이라기보다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흘러나옵니다. 특히 두 남녀가 나비를 잡으러 들판을 돌아다닐때 이 음악이 주는 감미로움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결코 사랑의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주고받는 눈빛이 나비를 쫓아가는 몸짓이 바로 사랑의 대화입니다. 둘 사이를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이 휘감아 돕니다. 황홀한 사랑이 가슴에서 피어납니다.










모차르트 : 바이올린 소나타 18,21,24,26번
모차르트 (Mozart) 작곡 / PHILIPS / 2002년 2월
14,800원 → 13,400원(9%할인) / 마일리지 14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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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언제 들어도 내 영혼을 맑게 해줍니다.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나를 인도합니다. 모짜르트의 깨끗한 영혼과 해맑은 미소가 들을 때마다 느껴집니다. 그루미오와 하스킬의 연주에서는 조미료가 전혀 가미되지 않는 두 연주자의 음의 대화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게 행복입니다.










[수입] 도시바 EMI - 브람스 : 바이올린 협주곡
David Oistrakh / 이엠아이(EMI) / 2003년 10월
19,600원 → 17,100원(12%할인) / 마일리지 18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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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의 음악은 가을에 듣기 좋습니다. 특히 바이올린 협주곡은 찬바람에 내 마음이 휩쓸려나가 공허해질 때 들으면 좋습니다. 2악장의 아름다움은 창백한 대뇌에 담백하고 청초한 색깔들로 물을 들게 합니다. 3악장에 이르면 그 색깔들이 일어나 춤을 춤니다. 오이스트라흐의 깔끔한 활놀림은 클럼펠러의 절도있고 정확한 오케스트레이션에 큰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수입] 브루크너 : 교향곡 7번 (귄터반트)
귄터 반트 / TDK / 2007년 3월
39,000원 → 33,800원(13%할인) / 마일리지 34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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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크너는 자연에 대해 노래하고 인간의 구원을 노래합니다. 시간이 소멸하는 듯이 천천히 장중하게 진행하는 그의 음악에서 세상사에 물든 내 마음을 표백합니다. 특히 7번 2악장은 이순신 드라마에서 장군의 고뇌장면에서 사용하던 음악입니다. 자기 몸을 지탱하기 힘들지만 안광이 지배를 철하듯 티없이 맑은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수입] 말러 : 교향곡 3번
Claudio Abbado / DG / 2006년 3월
29,600원 → 25,700원(13%할인) / 마일리지 26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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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교향곡 3번은 인간과 우주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잡다한 세상과 자연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악장에서 하늘나라로 들어갑니다. 하늘문이 열리고 베드로가 들어갈 때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밝은 불빛을 느낍니다. 번스타인의 연주도 좋지만 마지막 6악장의 피날레는 아바도의 연주가 최고입니다. 천국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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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9-04-09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희 아이들은 음반에 빠져있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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