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커피를 탄다. 원두커피를 곱게 갈아 포드에 담고 꾹꾹 눌러 다듬은 후 에스프레스머신에 걸고 스위치를 누른다. 흰색과 하늘색 두 컵에 나뉘어 흘러내리는 뽀얀 커피를 유심히 지켜본다. 커피 잔 안에서는 말간 화장분 같은 색깔의 크리마가 북한강의 물안개처럼 덮여지고 계곡의 가는 물줄기 같은 커피 줄기가 좌우로 흘러든다. 잔이 중간쯤 채워졌을 때 스위치를 눌러 끄고 좀 더 깊은 맛이 있을 것 같은 커피 잔을 아내에게 준다.


아내는 커피를 좋아한다. 다방커피도 좋아하지만 아침 식사 직후 바로 마시는 커피를 제일 좋아한다. 항상 아침신문을 보면서 활자에서 풍기는 잉크냄새와 함께 마시는 커피를 좋아한다. 에스프레소의 진한 향이 느껴지는 그렇다고 찔끔찔끔한 양보다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넉넉한 양의 커피를 좋아한다. 잠깐 신문을 보다 커피가 식었어도 그 잔에 담긴 쌉쌀한 맛의 커피를 좋아한다. 아침커피를 마실 때마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아내를 위해 아침마다 커피를 탄다. 나도 커피를 즐기지만 원두커피를 갈고 뽑을 때까지는 아내를 위해 얼마나 크리마를 잘 낼 수 있을까 얼마나 깊은 커피 맛을 낼 수 있을까 이 정도 맛이면 아내가 좋아할까 이 정도 양이면 아내에게 적당한 양일까 첫 맛을 보고는 참 맛있네요 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을까 아내가 커피를 다 마시는 중에도 커피가 식지 않고 맛을 그대로 유지하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한다.  아내가 신문에 집중하다가 커피가 식을 때면 따뜻할 때 어서 드세요 라고 말하지만 문뜩 신문읽기와 커피 맛 느끼기의 강렬한 유대감을 깨뜨리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리 커피 잔을 뜨거운 물로 덥혀 놓을 걸 후회감도 든다.


행복을 위해 커피를 탄다. 커피머신에 물을 붓는 순간부터 행복을 위한 의식이 시작되고 흘러내리는 커피줄기를 보며 행복한 커피를 위한 마법을 건다. 알라딘 램프의 연기처럼 잔에서 풍겨 나오는 진한 커피 향은 아내와 나에게 행복의 마술을 건다. 아내가 커피를 마시며 참 맛있네요 라며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하고 그 모습을 보는 나의 뇌에서 엔돌핀을 스며 나오게 한다. 아내가 그냥 내 얼굴을 보고 커피를 마실 때보다 아침 신문기사에 두 눈을 고정한 채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는 모습이 훨씬 좋다. 눈과 코와 맛을 연결해주는 강한 유대감을 느끼며 평안과 행복의 마법에 잠겨있는 모습이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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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4-09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을 읽으니 저를 위해 커피를 내려줄 누군가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옆에 명반 열가지에 제가 가진건 세가지 밖에 없군요!!

치유 2009-04-09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편안하고 행복해 보여요..
커피향이 은은하게 풍겨오는듯하네요..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정말 향기롭고 좋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