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과 지록위마


최근 5만원권 지폐에 들어간 신사임당 초상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화가는 스승이 그렸던 공인영정의 모습을 기초로 신세대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했다고 하는데 문중에서는 공인영정과는 다르고 평범한 여인네 얼굴이라고 불끈하고 어떤 이는 현모양처이면서 예술가인 여인의 향기가 전혀 나지 않는 그저 그런 여인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림에 전문성이 없는 내가 보더라도 곱게 차려입은 주변의 평범한 아낙네 이미지이지 그 이상의 모습은 기대하기 힘들다. 지폐의 초상을 우리가 날마다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실정에서 지폐에 어떤 인물의 초상이 들어가는지, 그 초상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는지, 그 얼굴에서 어떠한 품격과 향기를 뿜어내는지에 대한 논란이 뜨거울 수 밖에 없다. 또한 우리가 의도하던지 않던지 간에 지폐 액수에 따라 초상의 인물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는데 생각에 미치면 지폐에 어떤 인물을 실을 것인지, 어떤 초상을 넣을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폐의 초상은 그 나라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동서양 세계 각국은 그 나라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의 초상을 화폐에 넣는 것이 일반화되어있다. 날마다 사용하는 지폐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대하게 함으로서 그 인물이 살았던 자국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고 그 인물을 흠모케 함으로서 인물의 인간적 사상적 영향력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 로마시대에 황제의 초상을 화폐에 새겼던 것은 그 시대의 정치적 배경으로서는 매우 의미있는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한은이 5만원권에 들어갈 초상을 공론화하면서 신사임당이 과연 화폐에 들어갈 만한 인물인지에 대한 논란이 뜨거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화폐의 인물이 갖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가 간다. 결국 많은 국민이 공감하는 인물보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신사임당이 선택되었기에 씁쓸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사임당으로 결정했다면 신사임당의 진정한 모습을 그려 넣어야 한다. 상상의 모습이 아니라 실제의 모습이어야 하고 실제의 모습에서도 그 인간의 내면이 가장 잘 드러난 모습이어야 한다. 한 인간에 대한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인물의 실제의 모습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물의 모습이 그림으로나 사진으로 남아있지 않는 경우 기록에 남아있는 묘사를 통해 얼굴을 그려볼 수 있다. 일종의 몽타쥬 작성인데 인물묘사 기록이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인 경우에는 그려지는 얼굴은 전적으로 상상의 모습이고 가공의 모습이다. 중세에 그렸던 예수나 제자의 모습은 화가 자신의 얼굴이나 가까운 사람의 모습이었다는 게 그것을 증명한다. 다시 말해 실제의 모습이 아닌 닮아보고자 하는 가공의 인물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신사임당의 초상은 남아있지도 않고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유교전통의 시대에 사대부가의 여인 얼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기록이 있을 턱도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그리는 신사임당의 모습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신사임당의 모습일 뿐이다. 더구나 신사임당에 대한 평가는 율곡의 어머니라는 프리미엄으로 좀 과대평가된 느낌이 강하다. 조선시대의 사대부 여인의 얼굴을 통해 현재 남녀평등의 현대 여성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국민들에게 어떤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무척 회의가 든다.


가공의 초상을 만들어내고 그 모습을 보면서 닮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의도된 정치적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 이순신이 그렇고 세종대왕의 모습이 그렇다. 근엄한 얼굴을 한 단군을 그려놓고 이게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이다 라고 하는 것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책에서만 통용되는 사실일 뿐 그림이나 사진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으면 인물됨의 구체적인 기록을 통해 그 모습을 느끼도록 각자의 상상력에 맡겨두어야 한다. 따라서 신사임당의 얼굴을 임의로 그려내어 공공의 화폐에 그려 넣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가미된 불순한 행위로 밖에 파악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았던 동시대에 아니면 현재에 영향을 미쳤던 수 백년 이내의 우리역사에 화폐에 들어갈 만한 인물은 얼마든지 많고 초상이나 사진으로 그 얼굴이 남아있는 인물도 많다. 여성단체의 주장으로 꼭 여성을 넣어야 한다면 사진이 남아있는 유관순이나 나혜석, 민비 등이 훨씬 더 우리와 호흡할 수 있는 인물이며, 예술작품 특히 미인도 속의 여인도 좋은 후보라고 여겨진다. 상상 속의 신사임당을 그려놓고 이게 신사임당이다 라고 우기는 현실을 보고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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