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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의 어린이 십자군 ㅣ 어린이를 위한 인생 이야기 25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김준형 옮김 / 새터 / 2012년 1월
평점 :
2차 세계 대전에 대해 브레히트라는 독일 작가가 시로 쓴 것이다. 한편의 영화로 만들어도 눈물과 감동의 쓰나미를 몰고 올 이야기다. 내가 브레히트라는 작가 이름을 어디서 들었더라 기억을 더듬는데, 엄마가 옆에서 말해줬다. <행복한 청소부>라는 상당히 철학적이고 고차원적인 그림책에 나온다고... 아, 맞다~ 그때 책 뒤에 나온 작가 사진과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보면 분명 만나게 될 대단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1898년 뮌헨에서 태어난 브레히트는 시나 연극 비평을 통해 파시즘과 싸웠다니, 정치와 세계사 혹은 문학에서도 빼놓지 않을 작가라 그의 작품도 관심을 갖고 찾아봐야겠다.
이 책은 브레히트의 서사시와 거친 그림으로 꾸며졌는데 한 페이지는 그림만 나오고, 다음 페이지는 시와 그림이 같이 나온다. 브레히트가 보고 듣고 겪은 세계 2차 대전의 참상을 압축된 시와 그림으로 보여준다. 전쟁의 참혹함을 담은 그림 자체는 침묵이지만, 그 어떤 웅변보다 강력하다. 전쟁으로 고아가 되어 떠도는 쉰 다섯 명의 어린이 십자군은, 역설적으로 평화를 호소하는 십자군이다.
1939년 폴란드에서 일어난 끔찍한 전쟁은 모든 걸 파괴하고 폐허로 만들었다.
남자들은 군대로 갔고,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잃었다.
편지나 신문으로 소식을 들을 수 없었지만,
폴란드에서 길을 떠난 '어린이 십자군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제대로 먹지 못해
삐쩍 마른 아이들이 떼 지어
꼬부랑 시골길을 이리저리 헤매고
무너진 집들 사이에서 우는 꼬맹이들도 함께 데리고 떠났다는 것을...
아이들은 널브러진 시체와 대포 소리를 벗어나
따뜻하고 먹을거리도 많은 평화로운 마을로 가고 싶어서
대장을 뽑고 말을 잘 들었지만, 대장도 길을 몰랐다.
열한 살 먹은 소녀가 네 살짜리 아이 손을 잡고 걸었고
엄마처럼 토닥토닥 안아주기도 했다.
따뜻한 집과 맛난 음식은 없었지만 진짜 엄마 같았다.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서로 돌보는 아이들,
어른들은 전쟁으로 모든 걸 파괴하지만, 아이들은 서로 감싸고 돕고 잘못을 용서했다.
먹을 거 하나 없이 굶주렸어도 쫄래쫄래 따라오는 강아지를 죽일 수 없었고
글자를 아는 형들은 선생님처럼 동생들에게 글자를 가르쳤고 서로 사랑했다.
죽은 아이의 장례식도 치르고 땅에 묻어주었다.
먹을 걸 나눠줄 수 없는 농부를 미워하지 않았고, 먹을 걸 훔쳤다고 나무라지 않았다.
오로지 남쪽 '빌고라이'를 찾아가는 게 최고의 목표였다.
점점 불어나 쉰다섯 명이 된 어린이 십자군....
눈이 펑펑 내리는 추운 겨울, 먹을 것도 없고 길도 잃은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다음 해 1월, 사람들은 삐쩍 마른 개 목에 걸린 종이에 쓰인 글을 읽었다.
삐뚤빼뚤 쓴 아이들의 글씨를 본 굶주린 농부들은 개를 따라 나서지 못했다.
그 글을 보고 1년 반이 지나는 동안 그 개도 이리저리 떠돌다가 길에서 굶어 죽은 채 발견됐다.
오직 그 아이들이 있는 곳을 아는 개도 죽었으니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쉰다섯 명의 어린이 십자군 이야기는 가슴이 먹먹하다.
전쟁 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은 이룰 수 없는 꿈일까...
또 다른 그림책 <평화란 어떤 걸까>에서 '평화란 내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하는 것' 이라 정의한다.
길을 떠돌다가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갔을 어린이 십자군은, 과연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했을까...
브레히트의 어린이 십자군은 글이 끝나는 뒤에 번역자의 말과 해설을 실어 1939년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세계 2차 대전을 설명하고 브레히트가 꿈꾼 평화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떤 시대인지 생각해보라고 인도한다.
세상은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를 유지하게 위해 전쟁을 불사하는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평화란 그들의 주장처럼 전쟁을 통해서 이룰 수 있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