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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예술 - 15개 도시의 운명을 바꾼 예술의 힘
캐럴라인 캠벨 지음, 황성연 옮김, 전원경 감수 / 21세기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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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예술 : 15개 도시를 관통한 예슬혼의 세계를 들여다 보다 그리고 발견하다. 인간의 모습을.]
도시라는 인간이 쌓아 올린 최고의 문화 유산 내부에서 예술이라는 아름다움의 향기가 넘나드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도시의 세련됨 이면에는 온갖 추악한 인간 행동 군상의 찌꺼기 들이 방치되어 있고 산업화로
인한 빈민가의 위험한 위생과 파괴되는 환경의 디스토피아 음영도 공존하고 있다. 그런 만큼 도시를 채우는
예술은 새로운 문화 향기가 탄생하는 그릇과 오물을 세척하는 빨래통 또는 정수기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고고한 귀족의 향유가 아닌 더러운 바닥을 기어가며 살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회 이슈와
비판을 담아낸 작품들이 더욱 소중해지는 믿음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책에 서술된 도시와 예술의 역사는 인간의 거대한 도시라는 공간의 틀에서 예술의 향기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었는지 예쁜 꽃을 바라보는 긍정의 시선으로만 한정되어서는 곤란하다. 인간사의 굴곡과 더럽고
추악한 이율배반의 세태까지 비판으로 담아내는 예술의 향기가 진정 도시에서 요구하고 추앙하는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말로만 듣던 바빌론의 고대 도시부터 지척에 있는 평양의 오묘하고 기괴한 형태의 결과물을 커다란
붓의 한 획이라는 거시시점에서 조망해보는 의미는 바로 이런 시대와 불문한 저항과 예술의 연관 고리를 찾아내려는 시도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멋진 박물관에서 긴 대기 줄로 구경하는 유명 작품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시대 정신을 표출하고
삐뚤어진 예술혼으로 난잡한 캔버스나 공간을 해체하고 결합했던 불운한 천재들의 광기가 더욱 기대되는 시작점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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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시 남과 북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평양이란 고도시의 도도한 역사와 예술의 (엇나간) 결합을 너무 냉랭 하게만 바라보고 있는 거 아닐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예술이 미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전통의 관념에서 벗어나 프로파간다의 선전도구로 기막히게 기용될
수 있다는 의미는 상업주의 자본시장에서 예술의 향취 가득한 상업용 광고에 찬사를 보내는 행위가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외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남한과 북한의 이원화라는 과정이 왕권 국가로 회귀할 뻔한 현재의
어지러운 나라 상황이 먼 공간에서 교차되는 건 단순한 느낌일 뿐 일지.
팍스 로마나의 원대한 꿈을 현실화 시켰던 로마의 도시들과 예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게 된
원인이 이런 역동성과 변화에 기반하였다.
비교적 우리에게 친숙한 도시인 “로마”의 잘 알려진 역사 이면에 숨어있던 정치 체계와 문화의
변동은 통사 위주로 역사를 이해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권력 쟁탈을 위해 사회제도와 문화, 더 나아가 예술의
가치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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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냉은 서아프리카에 존재했던 도시로 지금은 나이지리아 지역에 있던 대규모의 도시다. 당시 유럽의 어느 도시와 견주어 봐도 대단한 위용을 자랑했던 문화와 결실을 표출했지만, 아쉽게도 서구 열강의 약탈로 인해 그들의 위대했던 유산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미국/유럽/중국 중심의 세계사에 길들여진 탓에
등장하는 왕이나 지역의 이름은 낯설고 머리 속으로 바로 입력되지 않지만, 익숙하지 않는 지역들에 번성하던
문명과 그들의 도시, 예술을 연결하여 바라 보는 과정은 마치 신대륙을 처음 발견하는 설레임이 있다. (사실 신대륙이라는 단어조차 지극히 서구의 시선이지만.)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강렬한 목마름은 바로 이렇게 아는 범위 훨씬 밖에 서있던 새로운
진실의 순간과 마주했을 때 아니던가. 제주 아프리카 박물관의 전시품들에 느꼈던 토속과 샤머니즘으로 뒤범벅된
원시 냄새 풀풀 나는 편협한 느낌에서 벗어나 한 세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숨어있는 왕국에 대한 전설을 찾아나서는 추가 독서도 한 번쯤 꿈꾸게 된다.
역시 세상의 중심은 뉴욕이다.
미국의 역사 속에 한 도시의 영광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이민자들이 처음 보는 아메리칸 드림의 첫 장면으로 더이상 설명이 필요할까?
유럽의 시간이 만들어낸 문화 유산에 대해 부럽기만 하던 미국의 자존심을 세워준 도시 역시
뉴욕이다.
20세기 들어서며 유럽은 물론 아시아에서 자유로운 영혼들이 속속 꿈꾸듯 홀리 듯 도시로 몰려들었고, 가난함과
부유함이 공존하던 공간에서 인류가 그동안 누렸던 속박과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로움과 새로움이 넘쳐나는 예술 사조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가동이 중단된 폐 공장은 돈 없는 예술가들의 거주지이자 작업장으로 속성을 변경하였고 그렇게
꿈틀대던 예술혼은 뉴욕이라는 새로운 풍요의 도시의 기운을 받아 대중과 호흡하며 전혀 색다른 결과물을 가져왔다.
뉴욕의 예술을 대표하는 앤디 워홀의 뛰어난 작품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미술품이라는 비아냥을
극복했으며, 현대미술의 이전과는 단락을 구분 짓는 새로운 도약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변화와 혁명은 뉴욕이라는 도시에 가능했고, 뉴욕이라는
도시가 품을 수 있는 경제와 예술의 지적 포용력이 융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역사와 미술, 그리고 문화를 한데 묶어 새로운
독서 경험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벽돌책이지만 말랑말랑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사족을
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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