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쿄 근교를 산책합니다 - 일상인의 시선을 따라가는 작은 여행, 특별한 발견
이예은 지음 / 세나북스 / 2023년 9월
평점 :
도쿄 근교를 산책합니다 : 도시의 근교를 산책하는 여유를 찾는 시간
도쿄라는 도시는 매력이 가득 넘친다.
과거와 현재가 적절히 혼재되어있다.
유행과 최신의 물결이 잘 포장되어 있지만 문득 지나치는 풍경 속에는 100년을 훌쩍 넘은 전통과 자존심이 묻어나는 공간이 잠깐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정도의 빠른 근대화로 이행은 조선이 쇄국정책이란 미명하에 머리만 둥지 속으로 집어넣고 몸을 사리는 동안 양국의 격차를 크게 만들었다.
도쿄가 자신의 위상을 뽐낼 정도의 채워짐이 가능한 이유는 이 때부터 축적된 일본의 희망과 희생이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늙어가는 국가로의 이미지가 더 강해진 일본의 요즘 모습이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우습게 보다는 한국인의 시각에서나 뒷방 노인네 취급이지 아직도 세계인의 머리 속에서 일본과 수도 도쿄는 매력적인 관광지로 꼽힌다.
막연한 동경의 눈빛으로 도시를 바라보기에 우리의 감정선이 예리하지만, 이 부분을 잠시 내려놓고 경쟁자를 벤치마킹하는 마음이나 좋던 싫던 가까운 이웃 나라의 생활을 엿본다는 가벼운 방문이라면 단순 관광 차원이 아닌 문화와 역사를 더듬어보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특히 남들 다가는 여행지 보다 살짝 도시에서 벗어난 근교로 시간을 낼 수 있다면 뻔한 일정표에 등장하는 이정표와는 다른 깊숙한 그들의 일상과 소소함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내년초 일찌감치 비즈니스 탐방 여행지로 도쿄에 예약을 걸어놓았지만 일주일 안되는 일정으로 외곽을 둘러볼 틈새는 없는듯하다.
그럼에도 책을 통해 가보고 싶은 공간을 두어개 찜해놓고 혹시하도 일정이 변경되어 잠시 짬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음식, 콘텐츠, 키워드라는 3개의 테마를 뽑고 요소가 어울리는 장소를 추천하는 방식은 독자의 선호도와 무관하게 글쓴이의 의도대로 발걸음을 옮기며 숨어있는 매력을 찾아내기 적절한 구성이다.
키워드라는 범용성이 조금 아쉽긴 하다. 차라리 건물을 테마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개인의 바램도 담아보며 책 속으로 들어간다.
참치로 시작되는 에세이의 만남은 요즘은 가격이 너무 올라 쉽게 방문하기 어려운 전문점을 가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오르게 만든다.
거래처와 저녁 회식을 많이 하던 시절에도 개인 1호 희망 식당은 참치 집이었다. 지금도 장사가 잘되는 옥수역 근처의 나만의 맛집도 있었고 프랜차이즈화된 유명 참치 가게 초창기에도 몇 번 들렀던 기억이 난다.
일본인들의 참치 사랑은 해마다 연초면 몇 억 짜리 참치가 경매로 팔렸다는 기사를 접할 때 재확인된다.
한국인 대상 와시비 테러로 유명한 오사카 초밥 집에서 사건이 있기 훨씬 전에 맛보았던 오도로 초밥은 입에서 살살 녹았던 멋진 추억으로 기억 속에 붙어있었다, (지금은 오사카에 가더라도 굳이 그 집으로 재방문할 일 없지만)
사진으로 소개되는 미사키항의 참치초밥 사진은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항구에서 맛보는 생선의 묘미는 남다르지 않을까.
고양이도 안먹는 참치가 이렇게 귀한 생선이 되었지만, 앞으로 과연 계속 사람들이 먹을 수 있을까 먹먹해진다.
영화나 소설의 배경이 된 지역을 관광지로 엮어내는 기술은 정교함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도 무명이던 바닷가가 드라마 한 편으로 단번에 핫 플레이스가 되는 사례는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2-3년이 지나면 해당 콘텐츠의 인기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의 발걸음과 기억도 사라진다.
대중의 관심이 휘발성을 가진 한순간의 불꽃이지만, 새롭게 개발된 공간의 의미는 치밀한 계획과 실행을 통해 생명연장을 할 수도 있다.
자연 경관 자체가 역할을 하는 경우라면 걱정거리가 없지만,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고 하고, 관광객의 방문을 간절히 바라는 지역 상인들의 바램은 항상 어긋날 수 밖에 없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한 다양한 장치와 언론이나 미디어로 사람들의 흥미를 지속 유발시키는 전략의 필요성은 다시 강조된다.
저자가 방문하였지만 영화와 다른 부분에 실망감을 곱씹을 수 밖에 없던 바닷가, 가마쿠라는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인기를 구가해도 마땅하지만 저자의 의견을 따르면 조금 더 세심한 고객몰이가 수반되야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나 역시 재미있게 영화를 보았던 팬 입장에서 마지막 장면의 바닷가에서 사진 한 장 찍는 기쁨을 포기하기 쉽지 않지만, 방문 일정 요소마다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장치들이 더욱 많았다면 짧은 일정에서도 필수 방문지로 구글 깃발을 꼽았을 지 모른다.
“국화와 칼”은 낯선 일본의 생활과 문화를 서양인의 시각으로 잘 그려낸 르포였다.
출판된지 수십년이 지났고 몇가지 내용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일본인들의 특성에서 변화를 거듭했지만 서양 사람들의 시각인 이 책 이후 크게 변한 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일본인들의 숨어있는 생각과 심정까지 글로 잘 뽑아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하긴 세상 그 어떤 나라보다도 그들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우리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문화가 가득이니 기초 사상부터 다른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눈에는 이색의 흥미와 다르다는 혐오가 뒤엉킨 혼돈 그 자체였을 지도 모르겠다.
영화 “킬 빌 첫번째 이야기”에는 주인공과 맞수가 한 판 진 검 대결이 펼쳐진다.
차가운 달의 바람이 고즈넉한 정원의 고요를 뚫고 분노와 복수의 피바람이 잠시 소강상태를 펼치다 조용하지만 힘있는 동작과 거친 힘의 대결로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정점을 찌른다. 민첩하면서도 큰 소리가 나지 않으나 얼음같은 긴장감을 관객은 숨막히며 지켜본다.
국화와 칼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근교에서 만날 공간이 있다는 점은 매우 생소하게 다가온다.
일본 특유의 문화 재생산의 현장에 요코하마가 있다는 소개도 인상적이다.
어렸을 때 눈이 휘둥그래지며 읽었던 “80일간의 세계일주”에도 등장할 정도로 서양인들에게는 일본의 무역항으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일본인 입장에서는 새로운 문물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며 문명의 새로운 레벨로 다가서는 계기가 된 장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신문물이라면 일단 만져보고 싶은 욕망에 쌓인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포장하고 재발명하여 자국에 보급시킨 문화의 산실이 요코하마였으니 지금도 영욕의 흔적들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유혹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동에 시간만 절약할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일정을 확보하고 싶으니 말이다.
책에 소개된 지역들은 도쿄의 화려함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겨워지기 시작한 관광 가이드 상의 도시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사는 냄새가 가까이 있고 남들은 가보지 못한 미지의 공간을 탐험하는 느낌으로 외곽을 전전하고자 하는 욕심은 자주 든다.
10여년전 오사카 방문시 외곽에 자리잡은 목표상점을 가기 위해 지하철에 버스에 긴 도보로 걸었던 기억이 새록난다.
인형을 가슴에 꼭 쥐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기던 노부인의 재촉하던 나들이가 하나의 풍경으로 머리 속에 자리잡은 것처럼 도쿄 외곽의 여유있고 풍미있는 음식들을 기대하는 일정을 다시 한번 짜보기로 마음먹는다.
가이드 역할까지는 아니더라도 여행의 팁과 꼭 가봐야할 장소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가 있어 일정짜기는 이 책 한 권으로도 수월해보인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