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에 진심인 편 - 히라가나는 모르지만
도쿄잇초메(최제이) 지음 / 길벗이지톡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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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도쿄 초밥집에서 먹고 싶은 것만 골라서 주문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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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에 진심인 편 - 히라가나는 모르지만
도쿄잇초메(최제이) 지음 / 길벗이지톡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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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에 진심인 편 : 이제 도쿄 초밥집에서 먹고 싶은 것만 골라서 주문할 수 있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10여년전, 회사에서 도쿄로 단체 벤치마킹을 보내 준 적이 있다.

유통 관련된 현장의 모습을 생생히 직접 보고 느낀 후, 어떻게 국내 비즈니스에 적용을 시킬 것인가.

주어진 과제였다.

백화점 이세탄 백화점부터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이온몰과 오다이바까지 꽤 넓은 지역을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가이드의 설명을 신나게 들었던 즐거운 경험이었다.

첫 날 저녁 식사는 회전초밥 집을 갔는데, 눈 앞에 돌아가는 멋진 접시 위의 스시가 눈길을 끌었지만 우리나라와 조금 다르게 적극적으로 원하는 메뉴를 달라고 주방장에게 요청하는 고객들이 부러웠다. 아무거나 집어도 훌륭한 식사가 되었지만, 참치 대뱃살같은 메뉴를 즉석에서 주문해서 내 앞으로 배달된다면 그것 또한 입맛 도는 주문이었을테다.



고등학교 제2외국어는 독일어다보니, 히라카나 조차 제대로 모르지만 일본어를 익혀두면 여행할 때라도 꽤나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는 언어 욕심이 들었지만 10여년 동안 공부한다고 책장을 넘기는 기회는 없었고, 그나마 최근 여행 일본어라도 배우겠다는 욕심에 듀오 링고에서 일본어 챕터를 올려두었다. 하루에 5분 정도 학습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이지만 그래도 시작해서 칭찬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한다.


그러던 중 만난 이 책은 간단한 일본어 일상대화 뿐 아니라 그 상황에 맞는 일본의 문화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익힐 수 있어 책장 넘기기 수월하고 말 익히기 욕심도 돋게 만든다. 아니, 사실 회화는 양념이고 일본 여행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일본의 문화 파먹기가 더 어울릴 수도 있다. 가령 식당에서 주고 받는 대화는 최소한의 소통이 가능한 작은 부분이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불필요한 요소는 쏙 빼고 집중해서 원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다고 보면 되겠다.


앞 부분에 등장하는 “스미마셍”의 의미부터 애매하지만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명확히 알게 해준다.  단순히 죄송하다가 아니라, 고마움의 느낌도 담겨있고, 우리나라에서 “잠시만요.”라고 양해를 구하는 의미를 가지는 말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사실 여행갔을 때, 복잡한 거리에서 다른 사람을 지나칠 때 “스미마셍”이라는 말을 했지만, 그 당시의 내 의미는 약한 죄송함의 표현이었지만 실제 약간의 불편함에 대한 양해라는 조금 더 약한 느낌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여행할 때 자주 들리게 되는 식당, 편의점, 카페 등 장소를 선정하여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대화와 일본인들의 행동방식을 한 번에 읽어나갈 수 있어 단순한 일본어 회화 교재가 아닌 일상의 한순간과 그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짤막하지만 긴요한 대화를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무엇보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초밥집 챕터는 눈에 불을 켜고 히라카나까지 외우려는 집념이 불타오른다. 말로 주문할 수 있지만 단어를 확실히 기억한다면 내가 원하는 네타를 얹어달라고 확실하게 요청할 수 있겠다 싶다. 물론 이 와중에 어떤 순서로 생선을 시키면 되는지라던가 초밥이 오래던 어떻게 시작되었고 지역별, 시대별로 어떻게 다른지 상식도 같이 배우게 된다.


미-이란 전쟁 이후 유류대 인상으로 여행길이 무거워진만큼, 오히려 일본을 찾는 한국인의 발걸음은 더욱 많아질 듯하다. 왕복 10만원대의 초절약 항공권 구하기는 이제 물건너 갔지만, 아직은 저렴한 엔화와 방문할 수록 알게되는, 음식과 쇼핑의 심도, 그리고 문화 즐길거리는 여행길을 또다시 도전하게 만든다. 


물론 많은 일본인들이 일본어로 대화를 거는 것 보다 영어로 거는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하다는 속설도 있긴 하지만, 어쨋든 원만한 소통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현지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일본 여행을 처음 가는 분이던 자주 갔던 분이던 음식점, 카페, 회전초밥집에서 자신있게 주문하는 상황이라 아니라면 여행 동선 짜는 철저함으로 꼭 이 책을 미리 보고 준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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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인간까지 속임수의 진화 - 속임수는 어떻게 생존 전략이 되었는가
리싱 선 지음, 김아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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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의 진화 : 속고 속이는 생존 게임, 승자만이 살아 남는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영화 “비바리움”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그 불쾌한 골목길 풍경을 기억한다. 

똑같은 모양의 집들이 끝없이 늘어선 기묘한 마을.

그곳에 갇힌 젊은 커플에게 배달된 상자 하나. 

그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아기가 들어있고, 상자에는 "아이를 키우면 해방되리라"는 명령이 적혀 있었다. 

인간의 언어가 아닌 기괴한 소리를 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자라나는 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먹이고 돌보느라 서서히 생기를 잃고 죽어가는 주인공들 모습은 관객 숨을 턱 막히게 한다.

이 영화는 사실 자연계의 가장 잔혹한 속임수인 ‘탁란'을 인간의 관점에서 극화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뻐꾸기의 속임수.. 

우리는 흔히 자연을 순수하고 정직한 공간으로 상상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환상을 무참히 파괴된다.  자연은 정직한 자들의 낙원이 아니라, 상대를 완벽하게 속여 넘긴 자만이 생존을 선택받는 거대한 사기극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자연계의 속임수가 유독 '먹이'와 '생식'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왜 하필 이 쪽에 유독 심한 속임수가 등장할까? 

저자의 설명은 명쾌하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먹이는 에너지고 생식은 유전자의 보존이다. 즉, 생물에게 있어 이 둘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라, 존재의 이유 그 자체이자 진화가 일어나는 근원의 힘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만큼 사기꾼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속임수가 들통나는 순간, 그 대가는 단순한 망신이 아니라 죽음이나 종의 끝장일 수도 있다. 따라서 생물들은 이 위험천만한 도박을 가장 큰 판돈이 걸린 곳에서만 블러핑을 하는 셈이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하나같이 처절한 사투를 표현하지만 관찰자 입장에서는 기발하다. 

암컷 반딧불이의 빛 신호를 흉내 내어 짝짓기를 기대하며 날아온 다른 종의 수컷을 잡아먹는 팜므파탈 반딧불이의 이야기는 공포영화 한 장면 같았다.

수컷 벌의 성적 욕망을 착취하여 꽃가루를 옮기게 만드는 난초의 에피소드는 흥미를 넘어 자연에 대한 경외감까지 느끼게 한다. 난초는 꿀을 만드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벌의 감각 기관을 해킹한다. 벌의 눈에 비치는 암컷의 모습, 솜털의 질감, 심지어 페로몬의 화학 구조까지 복제하는 그 정교함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진화 노력을 열심히 했는지, 절실하게 느끼게 만든다.


이런 동물들의 세계는 얼핏 보기엔 재미있지만, 그 이면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생존 투쟁이 깔려 있다. 죽은 척 연기하는 주머니쥐나 뱀의 머리를 흉내 내는 애벌레에게 속임수는 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포식자의 뇌에서 먹잇감으로 인식되지 않게 만드는 고도의 전술이자, 오늘 하루를 더 살아남아야 하는 끝없는 생존본능의 몸부림이다.


하지만 속임수가 반복되면 신뢰는 무너진다. 양치기 소년이 된다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저자는 자연계의 사기꾼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내는지 흥미롭게 설명한다. 사기꾼의 비율이 너무 높아지면 속는 자들이 학습을 통해 더 이상 속지 않게 되므로, 사기꾼들은 항상 전체 집단에서 소수를 유지하는 전략을 취한다고 한다. 예를들자면 다람쥐는 경쟁자가 지켜볼 때만 가짜 구덩이를 파는 식의 전술적 기만을 사용한다.


인간은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복잡한 사기극을 벌인다. 

언어라는 추상적인 도구는 더욱 현란한 기술력을 보유한 덕분이다. 인간은 눈앞에 없는 미래를 약속하고, 실체가 없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타인을, 아니 종 전체를 조종한다.

저자가 언급한 자기 기만의 메커니즘도 흥미롭다

우리는 흔히 거짓말을 하면 티가 난다고 믿는다. 식은땀을 흘리거나 눈동자가 흔들리는 식의 생리적 반응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놀라운 능력을 발달시켰다. 바로 자기 자신을 먼저 속이는 것이다. 내 거짓말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면 뇌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도, 생리적 동요도 사라진다. 저자가 2차 이라크 전쟁을 슬쩍 언급한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저자는 당시의 정치인들을 단순히 사기꾼으로 비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신념에 스스로 눈이 멀어버린, 자기 기만의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분석한다. 스스로 확신에 차 있었기에 그들은 그 어떤 노련한 거짓말쟁이보다 더 당당하게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똑똑한 인간들이 모여서 집단적으로 실수를 저지르는 아이러니는 인간의 속임수는 사실 생존을 위한 사투가 아니라, 나의 이익을 정당화하고 극대화하기 위한 레벨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또다른 인간의 속임수에 대한 설명은,  우리가 속임수를 몰라서 당하는 것보다 알면서도 또는 알고 싶지 않아서 엮이는 데 있다는 점이다. 하위권 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더닝-크루거 효과'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의사의 하얀 가운을 믿고, 전문가의 직함을 믿으며, 통장 숫자를 믿는다. 이것은 효율적인 사회를 위한 약속이지만, 사기꾼들에게는 가장 좋은 표적이 된다. 우리는 속지 않기 위해 과학적 방법론을 연구하고 법 제도를 만들지만, 정작 노력 없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지인이 들려주는 달콤한 사기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존 카펜터의 걸작 “더 씽(The Thing)”에는 인간의 세포를 하나하나 복제하여 겉모습만으로는 절대 구분할 수 없는 외계 생명체가 등장한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외계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를 의심하며 파멸해가는 대원들의 모습이 절망을 안겨준다.

저자는 책에서 암세포가 면역 체계를 속이는 과정을 설명하며 이와 유사한 공포를 전달한다. 암세포는 '나는 아군이다'라는 위장 신호를 보내 우리 몸의 방어망을 유유히 통과한다. 우리 몸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자연의 거대한 생태계, 그리고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정치적 결정에 이르기까지 속임수는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

결국 이 책은 우리에게 진실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정직하라고 교육받아왔지만, 우리의 유전자는 기만과 사기의 역사 속에서 다듬어졌다. 자연은 순수한 낙원이 아니며, 인간 사회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정직이 허상이라고 단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속기 쉬운 존재인지, 그리고 자기 기만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를 재대로 바라봄으로서 거대한 사기극의 희생양이 스스로 되지 않을 최소한의 통찰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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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쓸모 있는 수학적 사고 - 복잡한 세상을 꿰뚫는 19가지 생각의 기술
류쉐펑 지음, 이서연 옮김, 김지혜 감수 / 미디어숲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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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쓸모 있는 수학적 사고 : 복잡한 세상을 바라보는 수학의 세계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이 싫어 문과로 '도망친' 전형적인 사람이다. 복잡한 수식과 기호는 늘 도망자로 만들었고, 수학이란 그저 대학 입시를 위한 통과의례일 뿐, 삶의 지혜와는 가장 먼 곳에 있는 학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수학과 관련된 삶의 지혜를 배우는 기회는 가급적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세상을 깊게 들여다볼수록 언제까지나 도망칠 수는 없다는 자각이 들고는 했다 “이토록 쓸모 있는 수학적 사고”는 평소 관심이 많던 생각의 방식에 대한 고민과 방향에 수학적 이론을 접목한다는 접근법이 마음에 들었더.


마케팅 업무에서 일하다 보면, 세상은 결코 1+1=2 처럼 명쾌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공들여 기획한 캠페인이 무색하게 소비자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이 되는 복잡계 그 자체다. 저자는 우리가 성실함 또는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수많은 실패의 원인을 확률의 부재에서 찾는다.


이 책에서 배운 수학적 사고를 가장 먼저 적용해 본 곳은 지극히 현실적인 나의 생활 반경이었다. 최근 동네 아파트 단지들을 보며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가능성을 타진하고, 곧 있을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선택의 연속이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 동네가 뜨고 있으니까",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라는 직관에 의존했을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강조하는 '기댓값'의 논리를 대입해 보기로 했다.

단순히 '가격이 오를 확률'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정책 변화, 금리 변동, 그리고 해당 단지의 고유한 변수들이 실현될 확률과 그로 인해 얻게 될 순수 가치를 곱해 기대 값을 산출해 보는 과정이다. 물론 초보자가 정교한 수치 모델링을 해내기란불가능이다. 하지만 어설프지만 각 시나리오별로 확률을 배분해 보고, 최악의 경우를 배제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만으로도 막막했던 결정에 논리적 근거가 생겼다. 이는 단순히 돈을 버는 법을 넘어, 불확실한 미래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엄청난 안정감을 주게된다. 최악의 수를 피하는 확률게임을 시작하게 된 셈이다.


나의 오랜 취미는 록 음반을 수집하는 것이다. Deep Purple이나 Rainbow 같은 밴드들의 복잡한 멤버 교체사와 리치 블랙모어, 이언 길런 사이의 갈등사를 파헤치는 것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인간관계의 오묘한 순간들을 관찰하는 탐구라고도 볼 수 있다. 천여장 남짓한 CD가 꽂힌 랙의 알록달록한 모습은 어떤 이에게는 혼돈한 공간으로 보이겠지만, 내게는 나만의 정보 질서를 갖추어 놨다. ABC 순서가 아니라 그룹 계보나 미세한 장르 패턴에 맞춘다..

이 책은 이러한 복잡한 데이터 속에서 어떻게 유의미한 패턴을 찾을 것인지를 수학적으로 설명한다. 밴드의 라인업 변화를 마르코프 연쇄와 같은 확률적 전이 과정으로 이해해 보거나, 특정 앨범의 사운드 실험을 정보 엔트로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복잡한 세상을 꿰뚫는 기술은 결국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소음을 제거하고 핵심적인 수학적 규칙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점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정보의 노이즈를 제거하고 진짜만 골라내는 능력은 단순한 직관이 아니라 수학적 알고리즘이 필요하겠다는 공감을 갖게 한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을 위한 'AI 기반 생기부 컨설팅'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저자는 이런 막연했던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는 힌트를 알려준다. 즉, 완벽한 계획을 세워놓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가 유입될 때마다 나의 가설을 수정해 나가는 접근법이 그것이다.

또하나 중요한 습관의 방법을 얻었다. 바로 '잠시 멈춤'이다. 드라마를 볼 때나 책을 읽을 때, 예전에는 그저 결말을 향해 달려갔다면 이제는 결정적인 사건의 분기점에서 잠시 책장을 덮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방향을 예측해 보려고 한다.

예를들어  "이 인물의 성향과 지금까지의 복선을 고려할 때, 다음 선택의 확률은 어떻게 될까?"

이런 훈련은 비즈니스 기획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일본의 소자본 공간 활용 사례나 senior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할 때도, 단순히 사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시장이라는 변수를 대입했을 때의 성공 확률을 시뮬레이션해 본다. 이러한 '멈춤과 예측'의 시간은 성인 교육에 있어 단순 암기식 학습이 아닌, 복합적이고 통섭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솔직히 고비가 찾아왔다. 각 챕터의 도입부에서 일상적인 에피소드로 시작할 때는 "수학, 생각보다 할 만한데?"라며 부담 없이 읽어나갔지만, 이를 이론적으로 심화하는 과정에서 생소한 수학 기호와 공식들이 등장하면 당황스러움이 앞섰다. Σ(시그마)나 복잡한 지수 함수 기호들은 고등학생 시절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며 "역시 수학은 내 길이 아니야"라는 도피 본능을 깨우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책은 불친절한 교과서가 아니었다. 기호 그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그 수식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논리적 흐름을 하나씩 따져보니 상당수 내용이 이해할 수 있다. 사실 기호는 그저 복잡한 생각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약속일뿐이었다. 다만 내게는 효율성이 조금 부족하지만.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갑자기 수학적 호기심이 불타올라 미적분 문제를 풀고 싶어지는 학구열이 생긴 것은 아니다. 여전히 수식은 낯설고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수학적 사고가 주는 인사이트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생겼다. 특히 챕터별 마지막에 배치된 요약 정리는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며 내용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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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함 중독 - 남을 기쁘게 하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헤일리 머기 지음, 정지현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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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함 중독 : 그래, 착하다고 칭찬 받는 건 네가 호구라는 뜻이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싫어.”, “안돼.”.

누군가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두 단어를 쉽게 내뱉지 못하는 사람, 좋은 말로 ‘착한 사람’, 실제적으로 ‘호구’의 금기어다. 이를 피플 플리징이라고도 한다.

이 책의 주장은 피플 플리징이 단순히 개인의 유약한 성격이나 우유부단함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파고든다. 집단생활로 생존을 유지하던 인류의 과거에는 신체적·정서적 안전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현재의 삶에서는 관계와 건강, 자존감을 해치는 적응 방식으로 설명하는데, 이 관점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 

나 역시 피플 플리저라는 말을 들으면 예전에는 그저 지나치게 착한 사람, 거절을 못 하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보니 그것은 한 시절을 통과하기 위해 몸에 밴 생존 기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이 책의 문제의식이 더 선명하게 읽힌다. 위계가 분명하고, 조직 안에서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이 무난한 사람으로 취급되며, 윗사람의 기분과 분위기를 먼저 살피는 것이 오랫동안 미덕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내 의견을 너무 강하게 내세우면 튀는 사람처럼 보이고,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굴면 이기적인 사람처럼 보이는 문화에서는, 남에게 맞추는 능력이 곧 사회생활의 기술이 되기 쉽다. 그런 점에서 피플 플리징은 개인적인 결함이라기보다 집단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익힌 행동양식의 연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바로 그 점을 무시하지 않고, 왜 우리가 이런 습관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면서도 이제는 그 방식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차분히 보여 준다는 데 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으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피플 플리저에게는 이 질문이 의외로 가장 어렵다. 오랫동안 타인의 기대와 요구를 먼저 읽어내는 데는 익숙해져 있으면서, 정작 자기 욕구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찾으려는 노력도 안했다.

이에 저자는 원하는 것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가치부터 찾으라고 제안하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방향과 태도를 먼저 붙잡으라고 설명한다.

단순히 내가 뭘 원하는지 말해 보자.라고 다그치는 건 아니다. 사실 그런 질문은 겉보기에는 단순하지만, 자기감각이 흐려진 사람에게는 아주 추상적이고 막막한 주문이다.

저자는 그래서 가치 목록과 질문지를 통해 내가 존중하는 삶의 태도, 반복해서 마음이 움직이는 주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활동, 분노를 느끼는 장면 등을 보게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욕구를 직접 말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내가 어떤 방향의 삶을 원하는 사람인지는 조금씩 알아갈 수 있다.

평소에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대강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차분히 생각해 보니,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 그냥 남들도 좋아하니 나도 원한다고 믿었던 것, 혹은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습관적으로 갈망해 왔던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남의 시선 속에서 필요하다고 여긴 것들도 있었고, 정작 내게 꼭 필요하지 않은데 괜히 붙들고 있었던 욕구도 있었다. 그런 부분에 대한 관심을 조금 내려놓게 된 점을 변화의 시작이라 봐도 좋을 듯하다.

책은 주문한다, 자기를 버리는 착함을 멈추자. 남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배려가 언제나 나를 지워 가는 방식으로만 작동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친절이 아니라 자기소외이다.


많은 사람이 경계라는 말을 들으면 차갑게 선을 긋는 것, 관계를 끊는 것, 혹은 갑자기 냉정한 사람이 되는 것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책은 경계를 전혀 다르게 설명한다. 경계는 상대를 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내가 허용할 것과 허용하지 않을 것,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내가 응할 수 있는 것과 응하지 않을 것을 스스로 명확하게 아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언제까지 미룰 수 없는 관계의 정리이다. 요구사항에 경계를 두는 작업이 “착한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피플 플리저는 흔히 갈등을 피하기 위해 지금 당장의 평화를 택하지만 결국 더 큰 피로와 분노를 축적하게 된다.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자기 감정만 누적시키는 사람들의 모습은 단순한 소심함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즉각적 평온을 자기 욕구보다 더 우선시한 결과이다. 

나의 경우에도 꽤 닮아 있었다. 누군가 어떤 부탁을 하면 일단은 “그렇게 하자”라고 말해 놓고, 정작 돌아서서는 마음속으로 불만을 쌓고 지치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겉으로는 충돌을 피한 것 같지만, 실은 내 감정이 계속 누적되면서 관계 전체가 더 무거워지는 방식이었다. 책은 바로 이런 패턴이 장기적으로는 분노와 피로, 수동적인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는데, 그 말이 꽤 아프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기대, 실망, 감정, 불편함을 너무 쉽게 자기 책임으로 끌어안는 경향을 버려야한다. 내가 정중하게 한계를 말했는데 상대가 서운해한다면, 그 서운함은 상대가 다룰 몫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쉽지 않지만 나 자신의 존재를 위해서 기꺼이 경계를 그려야 한다.

경계를 세우는 일은 상대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나를 먼저 챙기기 시작하면 당장은 내가 더 나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기 욕구를 무시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고, 그 결과 자신을 돌보는 행동조차 죄책감과 함께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그런 죄책감을 무조건 버리라고 말하지 않고, 자기연민으로 전환하라고 말한다. 내가 지금 왜 이렇게 불편한지, 왜 거절하고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지, 왜 한계를 말하고도 스스로를 탓하는지 먼저 이해해 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큰 차이다. 자기비난은 사람을 더 움츠러들게 하지만, 자기연민은 적어도 지금의 나를 조금은 덜 적대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나는 이 부분이 우리 시대 직장인들에게 꼭 필요한 태도라고 느꼈다. 우리는 생산적이어야 하고, 유능해야 하고, 늘 괜찮아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산다. 그러다 보니 지치거나 힘든 순간에도 “이 정도는 다들 하지 않나”, “내가 더 참으면 되지”라고 생각해 버린다. 그런데 책은 그렇게 오랫동안 자기 욕구를 무시하는 방식으로는 결국 오래 버틸 수 없다고 말한다. 회복은 단순히 싫은 것을 거절하는 능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안에서 사라져 버린 감각, 기쁨, 여유, 자기존중, 놀이와 쉼의 감각을 다시 되찾는 과정까지 포함해야 한다. 


우리는 늘 유용하고 생산적이고 필요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쉬는 시간조차 뭔가를 해내지 못하면 불안해하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 시간은 마치 낭비인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무목적의 시간, 빈둥거림, 여유, 놀이가 회복에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아주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피플 플리저는 늘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로 존재 가치를 확인해 왔기 때문에, 아무 쓸모를 증명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일상 속에서 너무 거창하지 않은 방식으로라도 나를 다시 느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꼭 대단한 취미나 특별한 휴식이 아니어도 될 것 같다. 하루 중 10분이나 15분 정도라도 잠깐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해 보고, 지금 내 몸이 어디에서 긴장하고 있는지 느껴 보고, 손에 닿는 감촉이나 현재의 공기를 의식적으로 느껴 보는 것 - “현재”를 느껴보는 행위 - 만으로도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자질은 또 다른 자원일 수 있다는 메시지가 울림이 있었다. 예민함은 관찰력이 될 수 있고, 망설임은 신중함이 될 수 있으며, 쓸쓸함은 자기 자신에게 다시 가까워지는 시간을 열어 줄 수 있고, 분노는 자기 보호의 신호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사람은 흔히 자기 안의 결함만 먼저 본다. 나도 그렇다. 우유부단함, 예민함, 지나친 배려, 쉽게 지치는 성향을 단점으로만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저자는 그것을 무조건 없애야 할 고장 난 부품처럼 보지 않고, 방향을 잘 읽으면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자질로 보게 한다. 이 시선의 전환이 생각보다 크다. 자존감이라는 것도 대단한 자기확신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자질을 전부 결함으로만 보지 않을 때 조금씩 회복되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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