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영화 “비바리움”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그 불쾌한 골목길 풍경을 기억한다.
똑같은 모양의 집들이 끝없이 늘어선 기묘한 마을.
그곳에 갇힌 젊은 커플에게 배달된 상자 하나.
그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아기가 들어있고, 상자에는 "아이를 키우면 해방되리라"는 명령이 적혀 있었다.
인간의 언어가 아닌 기괴한 소리를 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자라나는 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먹이고 돌보느라 서서히 생기를 잃고 죽어가는 주인공들 모습은 관객 숨을 턱 막히게 한다.
이 영화는 사실 자연계의 가장 잔혹한 속임수인 ‘탁란'을 인간의 관점에서 극화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뻐꾸기의 속임수..
우리는 흔히 자연을 순수하고 정직한 공간으로 상상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환상을 무참히 파괴된다. 자연은 정직한 자들의 낙원이 아니라, 상대를 완벽하게 속여 넘긴 자만이 생존을 선택받는 거대한 사기극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자연계의 속임수가 유독 '먹이'와 '생식'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왜 하필 이 쪽에 유독 심한 속임수가 등장할까?
저자의 설명은 명쾌하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먹이는 에너지고 생식은 유전자의 보존이다. 즉, 생물에게 있어 이 둘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라, 존재의 이유 그 자체이자 진화가 일어나는 근원의 힘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만큼 사기꾼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속임수가 들통나는 순간, 그 대가는 단순한 망신이 아니라 죽음이나 종의 끝장일 수도 있다. 따라서 생물들은 이 위험천만한 도박을 가장 큰 판돈이 걸린 곳에서만 블러핑을 하는 셈이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하나같이 처절한 사투를 표현하지만 관찰자 입장에서는 기발하다.
암컷 반딧불이의 빛 신호를 흉내 내어 짝짓기를 기대하며 날아온 다른 종의 수컷을 잡아먹는 팜므파탈 반딧불이의 이야기는 공포영화 한 장면 같았다.
수컷 벌의 성적 욕망을 착취하여 꽃가루를 옮기게 만드는 난초의 에피소드는 흥미를 넘어 자연에 대한 경외감까지 느끼게 한다. 난초는 꿀을 만드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벌의 감각 기관을 해킹한다. 벌의 눈에 비치는 암컷의 모습, 솜털의 질감, 심지어 페로몬의 화학 구조까지 복제하는 그 정교함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진화 노력을 열심히 했는지, 절실하게 느끼게 만든다.
이런 동물들의 세계는 얼핏 보기엔 재미있지만, 그 이면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생존 투쟁이 깔려 있다. 죽은 척 연기하는 주머니쥐나 뱀의 머리를 흉내 내는 애벌레에게 속임수는 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포식자의 뇌에서 먹잇감으로 인식되지 않게 만드는 고도의 전술이자, 오늘 하루를 더 살아남아야 하는 끝없는 생존본능의 몸부림이다.
하지만 속임수가 반복되면 신뢰는 무너진다. 양치기 소년이 된다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저자는 자연계의 사기꾼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내는지 흥미롭게 설명한다. 사기꾼의 비율이 너무 높아지면 속는 자들이 학습을 통해 더 이상 속지 않게 되므로, 사기꾼들은 항상 전체 집단에서 소수를 유지하는 전략을 취한다고 한다. 예를들자면 다람쥐는 경쟁자가 지켜볼 때만 가짜 구덩이를 파는 식의 전술적 기만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