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인간까지 속임수의 진화 - 속임수는 어떻게 생존 전략이 되었는가
리싱 선 지음, 김아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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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의 진화 : 속고 속이는 생존 게임, 승자만이 살아 남는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영화 “비바리움”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그 불쾌한 골목길 풍경을 기억한다. 

똑같은 모양의 집들이 끝없이 늘어선 기묘한 마을.

그곳에 갇힌 젊은 커플에게 배달된 상자 하나. 

그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아기가 들어있고, 상자에는 "아이를 키우면 해방되리라"는 명령이 적혀 있었다. 

인간의 언어가 아닌 기괴한 소리를 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자라나는 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먹이고 돌보느라 서서히 생기를 잃고 죽어가는 주인공들 모습은 관객 숨을 턱 막히게 한다.

이 영화는 사실 자연계의 가장 잔혹한 속임수인 ‘탁란'을 인간의 관점에서 극화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뻐꾸기의 속임수.. 

우리는 흔히 자연을 순수하고 정직한 공간으로 상상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환상을 무참히 파괴된다.  자연은 정직한 자들의 낙원이 아니라, 상대를 완벽하게 속여 넘긴 자만이 생존을 선택받는 거대한 사기극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자연계의 속임수가 유독 '먹이'와 '생식'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왜 하필 이 쪽에 유독 심한 속임수가 등장할까? 

저자의 설명은 명쾌하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먹이는 에너지고 생식은 유전자의 보존이다. 즉, 생물에게 있어 이 둘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라, 존재의 이유 그 자체이자 진화가 일어나는 근원의 힘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만큼 사기꾼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속임수가 들통나는 순간, 그 대가는 단순한 망신이 아니라 죽음이나 종의 끝장일 수도 있다. 따라서 생물들은 이 위험천만한 도박을 가장 큰 판돈이 걸린 곳에서만 블러핑을 하는 셈이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하나같이 처절한 사투를 표현하지만 관찰자 입장에서는 기발하다. 

암컷 반딧불이의 빛 신호를 흉내 내어 짝짓기를 기대하며 날아온 다른 종의 수컷을 잡아먹는 팜므파탈 반딧불이의 이야기는 공포영화 한 장면 같았다.

수컷 벌의 성적 욕망을 착취하여 꽃가루를 옮기게 만드는 난초의 에피소드는 흥미를 넘어 자연에 대한 경외감까지 느끼게 한다. 난초는 꿀을 만드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벌의 감각 기관을 해킹한다. 벌의 눈에 비치는 암컷의 모습, 솜털의 질감, 심지어 페로몬의 화학 구조까지 복제하는 그 정교함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진화 노력을 열심히 했는지, 절실하게 느끼게 만든다.


이런 동물들의 세계는 얼핏 보기엔 재미있지만, 그 이면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생존 투쟁이 깔려 있다. 죽은 척 연기하는 주머니쥐나 뱀의 머리를 흉내 내는 애벌레에게 속임수는 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포식자의 뇌에서 먹잇감으로 인식되지 않게 만드는 고도의 전술이자, 오늘 하루를 더 살아남아야 하는 끝없는 생존본능의 몸부림이다.


하지만 속임수가 반복되면 신뢰는 무너진다. 양치기 소년이 된다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저자는 자연계의 사기꾼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내는지 흥미롭게 설명한다. 사기꾼의 비율이 너무 높아지면 속는 자들이 학습을 통해 더 이상 속지 않게 되므로, 사기꾼들은 항상 전체 집단에서 소수를 유지하는 전략을 취한다고 한다. 예를들자면 다람쥐는 경쟁자가 지켜볼 때만 가짜 구덩이를 파는 식의 전술적 기만을 사용한다.


인간은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복잡한 사기극을 벌인다. 

언어라는 추상적인 도구는 더욱 현란한 기술력을 보유한 덕분이다. 인간은 눈앞에 없는 미래를 약속하고, 실체가 없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타인을, 아니 종 전체를 조종한다.

저자가 언급한 자기 기만의 메커니즘도 흥미롭다

우리는 흔히 거짓말을 하면 티가 난다고 믿는다. 식은땀을 흘리거나 눈동자가 흔들리는 식의 생리적 반응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놀라운 능력을 발달시켰다. 바로 자기 자신을 먼저 속이는 것이다. 내 거짓말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면 뇌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도, 생리적 동요도 사라진다. 저자가 2차 이라크 전쟁을 슬쩍 언급한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저자는 당시의 정치인들을 단순히 사기꾼으로 비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신념에 스스로 눈이 멀어버린, 자기 기만의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분석한다. 스스로 확신에 차 있었기에 그들은 그 어떤 노련한 거짓말쟁이보다 더 당당하게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똑똑한 인간들이 모여서 집단적으로 실수를 저지르는 아이러니는 인간의 속임수는 사실 생존을 위한 사투가 아니라, 나의 이익을 정당화하고 극대화하기 위한 레벨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또다른 인간의 속임수에 대한 설명은,  우리가 속임수를 몰라서 당하는 것보다 알면서도 또는 알고 싶지 않아서 엮이는 데 있다는 점이다. 하위권 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더닝-크루거 효과'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의사의 하얀 가운을 믿고, 전문가의 직함을 믿으며, 통장 숫자를 믿는다. 이것은 효율적인 사회를 위한 약속이지만, 사기꾼들에게는 가장 좋은 표적이 된다. 우리는 속지 않기 위해 과학적 방법론을 연구하고 법 제도를 만들지만, 정작 노력 없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지인이 들려주는 달콤한 사기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존 카펜터의 걸작 “더 씽(The Thing)”에는 인간의 세포를 하나하나 복제하여 겉모습만으로는 절대 구분할 수 없는 외계 생명체가 등장한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외계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를 의심하며 파멸해가는 대원들의 모습이 절망을 안겨준다.

저자는 책에서 암세포가 면역 체계를 속이는 과정을 설명하며 이와 유사한 공포를 전달한다. 암세포는 '나는 아군이다'라는 위장 신호를 보내 우리 몸의 방어망을 유유히 통과한다. 우리 몸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자연의 거대한 생태계, 그리고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정치적 결정에 이르기까지 속임수는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

결국 이 책은 우리에게 진실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정직하라고 교육받아왔지만, 우리의 유전자는 기만과 사기의 역사 속에서 다듬어졌다. 자연은 순수한 낙원이 아니며, 인간 사회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정직이 허상이라고 단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속기 쉬운 존재인지, 그리고 자기 기만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를 재대로 바라봄으로서 거대한 사기극의 희생양이 스스로 되지 않을 최소한의 통찰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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