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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인 센스 - 지식의 경계를 누비는 경이로운 비행 인문학
김동현 지음 / 웨일북 / 2020년 6월
평점 :
플레인 센스 : 우리들의 大로망 비행기, 다음 생에서는 비행기 조종사가 될 겁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비상하기 직전 고속으로 바퀴를 튕기며 굉음을 내는 순간.
몸이 좌석 뒤쪽으로 살짝 제 껴지며 호흡이 턱 막히는 순간.
이윽고 엔진이 풀파워로 가동되며 속도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 절정의 순간처럼 가속되며 비행기는 하늘로 떠오르며 육지와의 연을 끊는다.
2년전 인생에서 제일 재미있던 4개월이 있었다. 부산으로 발령이나 매주 서울에서 왕복 출근을 해야 했다.
다행히 집에서 김포공항이 가깝고 근무지도 김해공항에서 택시로 15분 정도 거리. 아침에 일어나 9호선 급행을 타고 김포공항으로 달려가 비행기 탑승 전 대기 30분을 하고 김해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딱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놀랍지 않은가. 서울에서 대전가는 시간 정도로 부산까지 가는 짜릿함.
매주 1번씩 비행기로 출퇴근하는 괜찮은 경험이었다. 다시 본사 발령이 나며 제일 아쉬웠던 점이 비행기 못 타는 것이었다!
비행기는 남자들의 로망이다.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비행기 아니면 자동차였고, 만화영화에서 조종사는 비행기나 로봇을 조정한다. 한때 비행사가 꿈인 적도 있었고, 프라모델로 2차 세계대전의 고색창연한 전투기의 모형을 조립하고 책장에 장식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이란, 비즈니스 석을 탈 일은 거의 없고 이코노미 석 좁은 의자에 앉아 몇 시간씩 "승객"으로 가는 여정은 잠이나 실컷 자며 빨리 지나가는 게 나은 고통의 과정뿐.
비행기는 우리를 동경하는 하늘로! 우주로! 인도한다. 대한항공 기장인 저자는 유년시절의 로망에서는 멀어진 우리에게 쉽게 접할 수 없는 비행기에 얽힌 몰랐던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술 한 잔 하며 무용담 자랑하듯 풀어간다. - 놀라운 이야기들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나온다. 책 두께 생각하면 놀라운 압축율이다!
오래전 비행기표를 끊고 검문검색없이 걸어가서 비행기에 탑승하고, 하이재킹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부터.
세상에 하이재킹이란게 없던 시절이라니, "거짓말의 발명"과 동급 아닌가? 하이재킹을 발명한 이탈리아의 쾌남 이야기를 들으면, 조국의 힘과 영향력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제 나라 국민을 피지배자 수준으로 생각하는 나라였다면 미국에 바로 송환되었고 종신형으로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 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탈리아의 국민성이 플레인 센스와 연결되어 다행이다 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에피소드다.
2019년 태국에서 검사 중 기분이 나쁘다고 보안요원의 뺨을 때린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관광국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가볍게 넘어갔지만 미국이었으면 바로 체포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라면 과도한 신체접촉일 경우 항의의 의사를 표할 수도 있겠지만, 9.11테러를 겪은 미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부분이 각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국민들이 비행기와 관련된 "센스"가 다른 사례가 될 것이다. 땅콩 회항 사건 같은 경우도 스리 슬쩍 넘어간 거 같은데 사실 정해진 프로세스에 의해 움직이는 항공기의 이륙과정에서 빽 도를 시전한 상황은 꽤나 큰 처벌이 뒤 따라야할 사안이 아니었나 싶다. 우수한 변호사를 구하느라 꽤나 돈이 들어갔을 것 같다.
비행기를 타고 다녀도 선내에 공기가 희박해진다는 인지는 없었다. 에베레스트 무호흡 등정하는 것보다 더 높은 고도에서 비행을 한다면 당연히 산소는 부족한 법. 지속적으로 선내에는 비행 중에 빨아드린 공기를 압축하고 수분을 제거한 후 공급한다. 청정 산소로 폐를 리플래쉬해주는 것 아닐까? 좋은 산소로 채워져 있는 공간이 탑승객들의 호흡을 통해 배출된 가스로 텁텁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건 그야말로 착각이라 하겠다.
문제는 이렇게 불어넣어진 공기가 2-3분 마다 완전 교체되는데, 주입된 공기의 배출구는 기내압 유지를 위해 크기가 작다. 그러다 보니 기내 화재가 제일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데,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적은 배출구로는 유독가스를 내보내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추락의 지름길인 셈이다.
이 상황에서 담배를 못 피게 한다고 짜증내고 실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비행기 꼬리에 묶어서 운행해야 할 것이다.
(사실 금연은 필수적인 요건은 아니라고 한다. 담배로 인한 공기오염과 화재발생의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회사에서 흡연이 가능한 비즈니스 전용 전세 항공권 판매를 진지하게 검토한 적이 있는데, 단지 수요가 적을 것으로 예상되어 포기했을 뿐이다. 당시 흡연가들은 이 사업은 무조건 뜬다고 의견을 모았었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랜딩기어에 숨어서 밀항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산소의 결핍은 물론이고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고도에서 살아남기는 불가능하다. 하와이에 고막손상만 입은 채 도착한 꼬마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이 스토리를 근거로 시도한다면 누군가는 랜딩기어에 crushed되어 얼굴도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발견될 것이다. 랜딩기어로 잠입하여 선내로 진입하는 스파이 영화가 뻥이라는건 알았지만 두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며 영화의 오류 찾기는 생각보다 아이템이 많겠구나 생각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항공사들은 도산의 위기에 직면했고, 저가 항공사들은 이미 대규모 인력 감축과 인수합병 시장에 내몰렸다.
호황인 시절에도 항공사들의 경쟁은 인력확보를 원활히 하고 정비에 드는 비용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들을 내놓았는데 이러다 보니 자연스레 시장은 소수의 항공 제작사를 위주로 몰아가는 방향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보잉과 에어버스, 두 회사만 살아남는 시장이 된 것이다. 운항과 정비의 효율성 증대를 위한 단일기종 또는 1개사 기종 운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맥도널드 더글라스가 보잉에 합병된 사실에 깜짝 놀랐다.)
린드버그가 해낸 대양 횡단의 역사와 이면에 얽힌 항법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이 배를 항해하고 비행기를 운영하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내 위치를 아는 법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해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분명히 저 산에 가기로 했는데 어, 이 산이 아닌가 보다라고 한다면...지친 병사들이 추위에 동상에 걸려 병사하듯 비행기도 연료를 읽고 태평양 한가운데에 추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각종 전자장비와 계측장비들이 발달한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항상 급박한 상황에서 말을 안 듣기 마련인 전자기기의 반란은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기본능력 탑재가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다. 수시로 내 위치를 점검하는 것은 인생 살아가면서 프로로 살아남기 위한 기본적인 확인사항이라는 것이 비행기에서도 마찬가지 룰로 적용된다.
책 후반부에 어이없는 장면도 등장한다.
비행기 운항에 대한 메뉴얼이나 룰이 없던 시절,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나는 오랜 인류의 꿈을 이루게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너도 나도 비행기를 만들어 타는 상황이 지속된다. 이 와중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철모르는 젊은이들은 비행기 조종사를 희망하여 참전하게 되나, 철없기는 군 수뇌부도 마찬가지 인지라 햇병아리들을 거대한 비행기에 태워 적진으로 내보내지만 결과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추락한 연합군 비행기 90%는 적기의 공격과는 무관하게 조종사의 운전 미숙이었다. 비행기 결함 8%, 적기에 의한 추락 2%. 코미디도 아니고.
그래서 조종사들의 3차원 공간감각을 키우고 조종사들을 선별하는 시스템이 개발되어 지금의 시뮬레이션 시스템으로 발전하게 된다. 놀이터에서 코끼리 코 뱅뱅 돌고 목적지를 행해 뛰어가다 넘어지는 아이들을 보며 웃음 잔치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종사라면 승객들이 그처럼 웃고 떠들 수 있었을까?
사진을 통해 블레리오 시뮬레이터와 러글스 오리엔테이터라는 오래된 판별 시스템을 볼 수 있었는데, 멋지게 보이긴 해도 내가 그 안에서 테스트를 받고 통과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바이킹 맨 뒷줄에서 노래를 부르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 때 비행기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겨하던 시절이 있다. F-15나 스텔스 전투기도 몰아보고 그 유명한 마이크로 소프트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하드에 설치한 적도 있다. 이 게임의 영문 매뉴얼을 보고 기가 찼던 기억이 난다. 복잡한 조종석의 시스템은 물론이고 주요 공항의 활주로 배치도까지 등장한다. 게임을 하는 거야 진짜 비행기를 모는 거야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당연히 비행기 운항하는 것은 완전 다른 프로의 영역이다.
지금도 공항에서 기장들의 멋들어진 유니폼을 보면 비행기 한 번 몰고 싶다는 욕심이 스물 스물 기어 나온다. 이 책을 읽어가며 나오는 그들의 어려움을 간접 체험해도 꼭 한 번 해보고 싶기는 하다. 다음 생에는 기장이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디카프리오도 그래서 판암 기장인 척 했잖은가.
"손님, 이제 비행기 조종사는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저희 테슬라 플라이트 4.5는 무인 항공기이며....". 젠장. 다음 생에는 다른 로망을 꿈꾸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