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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시간 기록자들
정재혁 지음 / 꼼지락 / 2020년 11월
평점 :
도쿄의 시간기록자들 : 장인들이 펼치는 또다른 세계의 치열한 일대기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이라는 사람들은 다른 존재일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사람마다 호감도는 다르겠지만, 36년의 강점과 사과조차 없는 후안무치는 모든 감정을 덮어버릴 만큼 우리에게는 자극적인 소재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좋은 감정들이 많은 편이다. TV를 통해 어린이들의 눈과 귀를 잡아 끌었던 만화영화들은 나중에서야 대부분 일본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꼈고, 성인이 되어가며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이와이 슌지의 감성적인 영화들은 made in Japan이라는 상표가 분명히 보였지만 흔쾌히 받아들였다.
직장생활을 하며 현장조사차 방문한 일본이라는 나라의 (눈에 보이는 부분에서) 정갈한 거리풍경이나 다양한 직종의 쇼핑몰과 미니샵들, 그리고 자신감 발걸음의 행인들이 넘치는 거리의 표정은 잃어버린 경제 10년, 20년과는 거리가 먼 그들만의 무언가가 있었다.
물론 좋은 감정들은 한일전이라는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면 스르르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아직까지 청산하지 못한 우리 스스로의 잔재들에 분노가 차오를 때면 이들의 마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이중적인 잣대의 근원은 결국 일본이라는 국가와 일본인이라는 사람들을 분리해서 생각하자는 아전인수격의 해석이 있기에 가능했다. 소니의 워크맨과 플레이스테이션이 좋다고 그걸 만든 일본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듯, 일본문화를 좋아한다고 일본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은 시간이 흘러가며 나 편하자고 생각했을 뿐이지 않을까.
국가는 국민이 아니지만 국가의 사상과 방향은 국민과 대부분 합치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서 웃으면서 과한 와사비를 넣어 대접하던 스시집의 주방장이 어쩌면 진짜 일본인이라는 공동체의 얼굴은 아니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장점과 우리가 배워도 좋은 면은 받아들이자!라는 예외조항은 하나 슬쩍 집어넣기하고 있다.
어쨌든 일본인들만의 직업에 대한 의식은 본받을 부분 분명히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대기업과 프랜차이즈가 골목 깊숙이 까지 장악해 버린 탓에 퇴직자들의 발걸음은 편의점 아니면 치킨집 밖에 남아있지 않는 불균형한 경제구조가 된 우리의 자화상. 직업에 대한 존중, 대를 잇는 가업의 부재, 획일화된 교육과 그로 인한 획일적인 문화향유에서 모든 어려움이 기인한 것은 아닐까? 어떻게 보면 왜 저런 일에 저런 시간과 정열을 받치고 있지라는 우리의 관점에서의 직업을 면면히 이어가는 장인들에게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보면 무리일까?
우리가 아는 콜라는 유리병에 들어있거나 펫트병에 들어있거나 캔에 들어있다. 우리가 아는 콜라는 코카거나 펩시거나 가끔 처음 보는 마이너들.
금고 안에 숨겨진 코카콜라의 레시피는 고위 관리자 외에는 절대로 볼 수 없다는 도시전설이다. - 영화 한 편 나왔을 법도 한데 들어본 적은 없다.
세계 최초의 콜라 장인 코라 고바야시가 파는 콜라는 비닐팩에 들어있다. 마치 양파즙이나 양배추즙처럼. 패키지 디자인 자체가 눈길을 끌었다. 새를 형상화한 로고도 마음에 들었고 어쨌든 수제 크래프트 맥주가 남다른 매력을 뽐내며 잘 나가는 것 처럼 콜라도 이런 방식이라면 누구든 흥미롭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바로 제조한 콜라는 맛이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다. 할아버지가 제약사인 덕에 어릴 적부터 조제하는 장면을 봐왔던 주인공은 콜라의 레시피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실험을 거듭했었고 결국은 할아버지가 블랜딩하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본인만의 답을 찾았다. 그리고 수제 콜라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구하는 일부터 어렵사리 시작했고 본인이 만들어내고 싶은 콜라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89년생의 젊은이의 도전은 깜짝 놀랄 만 했고, 다행히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며 백화점에 상설매장을 설치할 정도로 판매망을 넓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그냥 용돈벌이 겸 해서 푸트트럭을 오픈하고 장사 안되면 바로 때려 치우고 하는 경우도 많은데, 오랜 시간에 걸쳐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끈질기게 도전하여 결실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바로 장인의 모습이겠구나 생각이 든다.
장인이란......라고 한 설명이 바로 맞지 않은가?

연말연시 핫트랙스같은 문구점에 가면 색색 가득한 다이어리와 수첩, 노트들이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태를 뽐내며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가끔씩 헉 소리날 정도의 가격대를 가진 다이어리들은 도대체 이녀석들은 무슨 장점이 있길래 이 정도 가격을 붙여놓을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한참 인기를 구가하던 플랭클린 다이어리를 써보았지만 정교한 시스템에 맞춰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고갈시키며 살라는 주문이 부담스러워 2년 정도 쓰다가 접었던 기억도 난다.
오래전 검은 테두리를 한 손바닥만한 수첩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예쁘지도 않고 특별한 기능도 없고 요즘 아이들이 쓰기에는 투박함의 극치다. 하지만 실용적인 면은 우수했던 문구의 오래된 대표주자. 일본에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양사업이 되었고 거의 멸종된 직종이다. 하지만 아직도 가업을 이어가며 수첩을 만들어내는 장인들이 소개된다.
30평 남짓한 공장에는 일본에는 이제 하나 밖에 남아있지 않는 기계도 있고, 수첩이라는 한 물 간 상품에 혼을 불어넣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집요함은 가끔 일본사람들에게 매료되는 특성 중 하나이다. 수첩에 글을 똑바로 쓰기 위해 괘선을 일부러 교정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틈새시장 공략부터 잉크에 글이 번지지 않게 남들 다 쓰는 유성잉크 프린트를 포기하고 수성잉크를 고집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장인들의 똥고집을 누가 말리겠는가? - 루이비통 만드는게 아니고 고작 노트인데, 이 사람들아. - 멋짐을 인정할 수 밖에.
금남의 지역이라 일컬어지는 초밥의 세계에 도전장을 던진 첫번째 여성 스시 장인의 이야기는 우리보다 훨씬 여성을 비하하는 생각을 가진 일본인들의 생각구조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긴 나 조차도 만화책에서 슬쩍 보았던 여자들은 손이 따뜻해서 스시를 제대로 만들 수 없다는 편견을 아직도 나도 모르게 떠올리고 있었으니…

가업을 이어받아 술전문점과 갤러리를 합치는 신묘함은 독립서점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시도와도 연결되어 있다. 조금만 우리가 더 여유있는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퇴근후 술 한잔에 그림을 구경하고 책을 읽고 이웃들과 담소를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텐데.
우리는 어느덧 프랜차이즈에 둘러 쌓여 한 발자국도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대형마트가 동네 상권을 박살내어 개성을 없애 버렸다면 프랜차이지는 개성의 싹까지 도려내어 다양한 상점과 문화가 어우러진 우리의 일상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차를 타고 홍대 앞이나 가로수길 같은 번화가에 가봐야 그나마 개성있는 상점들을 조우할 수 있고 그나마 조금 지나면 관심에서 멀어져 망해 나가는 빈곤의 악순환이 시작된 것일지 모른다. 동네에 무명상표를 달고 새로 생겨난 찻집과 빵집, 음식점을 응원하고 싶지만, 항상 발걸음은 별다방과 불란서 빵집이다.
이렇게 시대가 급변하는 세상에서도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14명의 장인들의 이야기와 저자와 주고 받은 대화들, 그리고 스타일 있는 사진들이 책의 가치를 올려주고 있다. 일본의 새로운 모습들 독특한 모습들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풀어가는 도서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일본이 한 물 간 나라라고 얕잡아 봐서는 안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집요함과 끈질김, 그리고 목적을 이루겠다는 욕망이 잠시 한 눈을 팔아 군사 무기 쪽으로 갈 경우 새롭게 우리와의 갈등이 생겨날 수 밖에 없는 관계 아닌가?
획일적인 프랜차이즈 사업과 뻔한 레퍼토리의 소규모 제조업들로 미래의 먹거리는 커녕 당장의 먹거리도 못 만들어 전전긍긍하는 자영업과 제조업의 현실을 생각할 때, 많은 분야로 관심과 호응이 우리 사이에서 확산되었을 때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얼마 전 TV에서 하나의 레시피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노력과 실험을 했던 식당의 레시피를 카피했다가 국민들의 욕으로 실컷 두드려 맞았던 프랜차이즈 회사가 생각난다.
평상시였다면 힘없는 자영업자의 레시피는 대기업에 의해 프랜차이즈에 의해 도용되어 망해가는 사연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겠지. 이런 사례가 반복되지 않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 숨어있는 장인들이 더 좋은 상품들을 공급하고 같이 사람들과 꿈꾸는 나라가 되지 않을까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본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