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현관 : 따뜻함이 묻어나는 건축가가 추격하는 잘 익은 미스터리 한 편
잡지에 등장하는 개성 넘치는 집을 보면 건축가를 직업으로 삼았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본다.
삐까번쩍한 대기업의 우렁찬 고층빌딩이나 무엇이든 다 팔 것 같은 쇼핑몰의 외양과 인테리어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가장 눈에 쏙 들어오는 건축물은 단연 집이다.
매일 살아가는 나만의 보금자리가 성냥갑 같은 아파트 - 물론 그 안에 인테리어는 돈을 얼마나 지불하냐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 그리고 매매가격이 전부인 삶은 따분하고 멋대가리 없지 않은가?
값비싼 대리석으로 치장하지 않고 B&O의 스피커가 거실에 놓여있지 않아도 개성 넘치는 주택들의 묘미는 아주 나중에는 저런 집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기대하게 만든다.
주인공 아오세의 직업은 건축사다.
일본의 버블경제시절 꽤나 연봉 두둑하게 받던 좋았던 때가 지나고, 일개 월급쟁이로 몰락한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딸은 한달에 한번 보는 외톨이가 되어 고독한 하루를 일과 맞물려 그럭저럭 살아간다.
어느 날 건축사 님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 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고, 잃어버렸던 정열과 몰입의 마음을 되찾아 주인공이 살고 싶은 바로 그런 집을 설계하고 완성시킨다. 아내가 원했던 목조건물, 평생 생각지도 않았던 내가 원하는 집이 콘크리트가 아닌 목조건물이 변해버린 상황에 자신 놀라기도 하지만 유일한 목적이 되었다. 남들 모두 신처럼 떠받드는 남향집도 아닌 북향집. 창을 그만큼 크게 만들어야 했지만 다른 빛과는 다른 북향의 빛이 집을 감싸는 집을 창조했다. 덕분에 올해 최고의 주택 200선에 뽑혀 잡지에 소개되어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자신의 분신으로 인해 유명 건축사가 되어가는 달콤함이 따라왔다. 아니 제일 중요한 것은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자존감의 회복이다. 의뢰인의 눈치나 보고 시공사에게 물에 물 탓 듯 영혼 없는 직장인이었던 그에게 "장인"이나 "아티스트"의 정신이 다소 돌아온 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집에 살게 된 가족들에게는 완공 이후 연락이 없다.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불편한 점이 많은가? 잡지에서 보고 집을 구경하러 간 의뢰인은 내부를 보고 싶었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고?"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그저 이상한 일 이네라고 넘어갔겠지만 주인공은 뭔가 찜찜한 기분과 배신감마저 들게 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만들어낸 작품이 알 수 없는 일에 의해 버림받고 자신이 내팽개쳐진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집을 방문하기로 마음먹은 주인공은 오랜 친구이자 건축회사 소장인 오카지마와 함께 차를 몰았다.
예상대로 사람사는 인기척도 없고 문은 열려 있다. 누군가 침입한 흔적도 있지만 세간살이가 거의 없었기에 훔쳐갈 물건도 없다.
그저 부재중 녹음소리만 반복되는 전화기 한 대와 의자 하나가 오롯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볼품없어 보이던 의자에 앉은 주인공은 예사 의자가 아님을 느낀다. 온몸을 받아들이며 창을 통해 푸른 하늘을 보게 되는 특별한 의자였다. 의자를 꼼꼼히 살피니, 독일 건축가이자 나치의 핍박을 피해 일본에 망명하여 3년여 살았던 거장 타우트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놀라움이 드러난다.
그러나 처음 집을 방문했던 이유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다. 혹시라도 의자의 구입처를 추적하다 집의 의뢰인이었던 요시노의 행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추적의 시나리오를 따라가는 주인공.
하지만 요시노의 행적을 파헤칠 수록 의심만 늘어난다. 알 수 없는 여인의 등장, 단란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뒤에 숨겨진 의문점들, 홀로 살고 있다는 제보.
이제는 집에 대한 자존심보다 알 수 없는 가족의 행방을 찾기 위한 탐정이 되기로 스스로 다짐한다.
미스터리 물로 시작한 책의 도입부분과 전개상황은 다소 따분한 감이 있다. 뭔가 쿵 하고 터지는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행적을 뒤쫓으며 확대되는 배경의 스케일과 복잡하게 꼬인 진실로 가는 실타래는 독특한 몰입감을 선사해준다.
특히 일본인들이 건축에 대해 생각하는 이상도 잘 드러나고, 그들이 가진 장인의 정신도 느껴지는 묘사가 마음에 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이어지며 떠오르는 가족의 이야기다.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댐 기술자인 아버지가 남겨준 정신적 유산들과 자상함.
비록 이혼을 했고 한 달에 한 번 밖에 못 보고 스스로 못난 아버지라 생각하는 주인공. - 그럼에도 딸아이의 휴대폰 벨 소리에 신경을 쓰는 숨어있는 부정(父情)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같이 살지 못하게 된 그리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요시노 일가의 행적들.
그런 가족들이 오손도손 살 수 있는 빛이 있는 주택의 이미지는 책 말기에 따뜻하게 마무리될 수 있을까?
작가의 필력에 새삼 놀라게 된 독특하고도 많은 생각을 던져준 미스터리 소설 한 권이다.
*서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