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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옳은가 -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후안 엔리케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무엇이 옳은가 :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알려주는 건 누구인가? 역사를 관통하는 진실을 찾아서
휘파람 불며 하얀 연기를 입안 가득히 머금었다가 뿜어내는 느낌이 좋았다.
한겨울 찬바람에서 입김과 섞여 공중으로 흩어지는 담배연기는 건강에 안 좋다고 뉴스에서 떠들어대도 정신건강학상 분명 도움이 되리라 믿기도 했다.
6년.
담배에서 손뗀 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가까운 지인의 죽음으로 결심한 금연의 독한 마음은 수십 번 시도했으나 실패로 귀결되는 금연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 흡연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차갑게 변해가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남자라면 으레 담배는 통과의례로 거쳐갔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비흡연자 수가 더 많아 보인다.
건강에 대한 담배 백해무익론이 미디어를 통해 퍼져 나간 이유도 있지만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눈총과 담배를 피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가장 큰 원인이다.
신입사원 시절에 사무실에서 담배를 필 수 있었다.
자기 자리에 앉아서.
여직원들도 있었지만 부장님부터 상당수 직원들은 겨울에 창문을 열어놓느라 코감기에 고생했지만 책상 위 재떨이를 수북이 채워 나갔다.
가급적이면 업무시간 이후에나 가능한 행위지만 바쁘거나 성질이 뻗치는 거래처 통화라도 하고 나면 화장실에서 피우든지 자기 자리에서 그냥 라이터를 틱.
뭐 라는 사람이 없었고, 그건 그냥 당연한 일과일 뿐이다.
저자는 옳음이 무엇인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책을 집필하지 않았다. 책을 잃어가면 단지 과거와 현재가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진 이슈에 대한 제시를 할 뿐, 저자의 주장이나 방향성 또는 태도를 제시하고 있지 않는다.
마치 물고기 집는 법을 알려주는 스승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대상을 명확히 해준다고 봐야한다.
바로 관심 - 사유 - 토론 - 공감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눈을 뜨고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과거에 옳다고 판단했던 잣대가 기술의 발전과 인류의 변화에 따라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역사적 사실들을 독자에게 제시하며 가치판단의 기준은 유동적이다 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정답이 없다고 모든 답안에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칠 수 없듯, 시대와 지역과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변하는 가치판단의 기준은 미래지향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대의를 이어받는 방향으로 가져가야 할 부분이다. 물론 이 또한 기준이나 평가가 뒤따르지는 않는다.
다만 정답이 없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기 때문에 난 이 문제에 더이상 관여하지 않겠소 라며 손을 씻는 행위보다는 깊은 사유와 토론을 통해 조금이라도 선(善)에 가까운 정답을 구하는데 노력하자는 깨우침을 던져준다.
다양한 사회현상과 문제에 대해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논의할 수 있는 화두를 던지는데 처음에는 이게 뭐가 문제일까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지만 읽다 보면 의외로 마음을 울리는 깊은 판단과 생각의 바다를 헤매야 하는 권고사항에 긴장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남북전쟁 직전 미 남부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가정해보자.
능력 있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아버지.
자애롭고 당신을 세상 그 누구보다 아끼는 어머니.
집의 모든 고장 난 부분을 척척 고쳐주는 샘 아저씨
어렸을 때 보모역할을 했고 지금은 가정부로서 살림을 이끌어가는 멜리사 아주머니
그들에 대한 당신의 태도에 옳고 그름의 메스를 들이밀 수 있을까?
아니 들이 밀 필요성조차 의심받을지 모르겠다.
여기에 하나의 설정만 더하면 논란은 뜨거워질 수 있다. 샘과 멜리사는 흑인노예라는 사실이다.
당신의 행복한 가족과 노예식구들이 당시의 미국사회에서는 의심할 여지없는 제도권내의 문제없는 행동이고 더욱이 노예 두 명 역시 다른 집의 주인들처럼 폭압적이지 않기에 만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
노예제의 부당함과 비도덕적임을 주장하는 이방인이 찾아와 당신의 아버지를 탓할 때 당신은 누구의 편을 들 것인가?
21세기의 누구도 노예제도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부도덕적인 계급의 조장일 뿐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미국 남부에서 태산 같은 일들을 노예제도가 아니라면 영위할 수 없는 농장주인이라면 그들에게도 옳은 판단 기준이 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옳고 그름이 때와 장소와 사회에 따라 주장하는 바가 변하는 와중에 우리가 선택할 태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다양한 주제에 마주칠 때마다 가치기준이 왔다 갔다 주체를 못한다면 좀 창피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하물며 인공지능이나 뇌의 물리적, 전기적 조작이 가능한 미래가 다가온다면 윤리관과 사회관은 새로운 형태가 필요하다. 지금 시점에서 부도덕하고 비난받을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블레이드 러너의 음습한 디스토피아 적 미래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윤리적인 고민과 판단들을 지금 시점에서 상상해보는 일은 골치 아픈 사유를 벗어나 또다른 재미있는 요소로 확대할 수도 있는데, 이 또한 책에서 영감을 얻는 재미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후손은 언제나 선조들의 무지함과 무자비함에 대한 험담만 할 수 없는 걸까?
시대의 변화, 과학기술의 발전, 변해가는 자연환경 등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인간을 둘러싸는 모든 것은 변한다. 덕분에 시간의 축적이 지난 후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과거의 올바른 행동과 용기를 우습게 생각하고 한심하다고 손가락질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땅 속에 묻혔으니 후세대의 비난과 성난 발길질을 묵묵히 참아내는 게 운명이란 말일까?
결국 저자는 겸손한 태도를 견지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앞서 이야기한 노예시대의 한 소년 이야기처럼 21세기 선진국 문명에 흠뻑 빠져 사는 사람이 타임슬립으로 링컨 시대로 돌아간다면 시대에 맞는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냉철한 겸손함에 순응해야 한다.
용서라는 행위가 마지못해 던지는 연민이 아닌 시대정신에 대한 이해와 변화에 적응하는 인간의 존중에서 우러난다면 이 역시 추천하는 덕목이다.
겸손과 용서라는 행동을 통해서 인류는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
과거의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투쟁과 변혁을 통해 과거보다 한단계 상위의 어딘가로 향하는 역사의 숨가쁜 심장박동을 만들어내 왔지 않던가.
어렵다. 책을 통해 제시되는 다양한 견해와 시간이 엉켜버린 무대 위의 우리의 모습을 이해하기란 헝클어진 퍼즐 맞추기 같다.
하지만, 저자가 펜을 든 이유가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슈를 책상 위로 끄집어내어 독자들이 사람들이 토론과 주장을 펼치며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길 바라서였다.
여러분도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