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화 :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위하여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269. 배철현 『승화』 : 21세기북스

나로부터 발현된 세상을 최소한의 단위로 보면 그것은 ‘호흡’과 같다. 때문에 나는 언어로서의 호흡은 물론 실제로서의 호흡 역시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명사인 호흡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첫째로 숨을 쉼, 또는 그 숨이라는 의미가 있고, 둘째로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룸, 또는 그 조화라는 의미가 있다. 호흡은 생명이며 죽음이다. 호흡은 모든 일의 시작이며 과정이고 동시에 끝이다. 오늘 소개할 『승화』는 아마 내게 있어 ‘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저자는 인류가 남긴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위대한 개인이 획득해야 할 가치들을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 『심연』을 시작으로,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 『수련』, -나를 변화시키는 조용한 기적 『정적』을 거쳐, 오늘 소개할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위한 『승화』까지 네 권의 시리즈로 기획했다.

저자에 따르면 ‘승화’는 아무런 유혹도 시련도 없는 완성된 상태가 결코 아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더 높은 차원의 정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후 얻게 되는 겸허한 마음이다. 마치 동네 야산의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산보다 높은 산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도전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산을 정복한 뒤에도 그보다 더 높은 산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겸손한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과 같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벽은 방해물이 아니라 내가 극복해야 할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미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럼에도 오늘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정성스럽게 살려는 마음가짐과 그런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언행이 바로 승화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계돌파나 자기극복을 위하여 어떤 수련을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가 넘어서야 할 대상은 눈앞의 거대한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1부 <응시>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법에 대해 말한다. 2부 <엄격>에서는 품위 있는 나를 만드는 법에 대해 말하며, 3부 <명료>에서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순간에 대해 말한다. 마지막 4부 <승화>에서는 드디어 위대한 변화에 대하여 말한다. 유언, 공허, 고통, 양심, 진정, 내면, 의미, 걸음, 기억, 도야, 일념, 취미, 검역, 신중, 간절, 생성, 희생, 내재, 안내, 자기문화, 구별, 각성, 모험, 변모, 지고, 변화, 미지, 광휘까지 총 28개의 키워드는 각 7개가 하나의 장을 완성한다. ‘하루 10분, 나를 변화시키는 짧고 깊은 생각’이라는 프롤로그의 제목처럼 각 장은 10분도 걸리지 않을 만큼 짧고 명료하지만, 하나의 키워드가 갖고 있는 저자의 통찰을 유의미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꼬박 하루를 고민해도 모자랄 만큼 깊이가 있다.

이 책은 인종, 역사, 정치, 문화, 예술, 신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헌을 담고 있고, 저자의 이력에서 보듯 여러 고전에 담긴 통찰을 한 권의 책으로 ‘승화’시킨다. 우리가 ‘승화’를 위해 수련해야 하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몰입은 세속적인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다. 인간은 몰입을 통해 과학, 예술, 상업과 같은 분야에 필요한 기술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묵상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성공을 위한 필연의 조건이다. 묵상의 목표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완벽한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데 있다. 자기를 넘어선 자신, 초월적인 자신이자 신적인 자신을 찾기 위해 필요한 예술이 묵상이다. 묵상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는 자신을 스스로 제3자가 되어 가만히 지켜보는 행위다. 나의 생각들을 복기해보면, 그것들은 내가 습관적으로 해오던 생각들이다. 그러므로 나를 절제함으로써 다음 단계에 어울리는 행위를 생각해낸다. 그런 생각을 연습하고 자신의 몸에 익히는 것이 나의 개성이며 나의 운명인 것이다.

입에 단 것만 먹고, 눈에 보이는 것만 연마한다면 대체 우리는 어떻게 자기극복을 할 수 있을까. 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우리는 진리를 찾을 수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변화했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어떤 답을 할 수 있는가.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의 나와는 다르게 내일은 승화한 내가 되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 - 초연결 시대를 이끌 공감형 인간
최배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270. 최배근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 : 21세기북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크게 두 가지 유형, 즉 작은 변화가 진행되는 시대와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는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과거의 경험은 미래를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라면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준비할 때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이전에 결코 겪은 적이 없는 새로운 현상, 즉 ‘새로운 처음’에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로운 처음’을 겪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새로운 처음’의 빈번한 발생은 근본적 변화가 진행되는 시대, 이른바 시대 이행기의 특징이다. ‘이행기’란 이전 시대의 현상들이 약화되고, 다음 시대의 새로운 현상들이 증가하는 시기를 의미한다. 이행기에는 새로운 현상들에 기초한 법과 제도 등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반면 여전히 사고와 행동 방식은 과거의 기준으로 작동한다. 이런 시대에는 혼란이나 불안 같은 불확실성이 일상화된다. 2020년 코로나19의 확산도 서구 산업문명이나 매뉴얼 사회 일본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현시대가 산업문명으로 대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는 과거의 경험에 기초한 매뉴얼이 ‘새로운 처음’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저자가 내린 결론은 우리가 현재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재가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는 이행기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진행된 IT 혁명이나 데이터 혁명 등도 기존 기술진보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혁명(단절성)’을 부정하고 기존 흐름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는 주장들도 나중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평가할 때 본질의 변화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맹아, 즉 자본주의의 싹은 봉건제하에서 발생했다. 농촌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농업과 토지 등 자연경제와 결합한 분권적인 정치체제(봉건제) 덕분에 상공업과 화폐경제가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자치도시’가 생겨났고, 자치도시의 성장과 더불어 봉건제가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진행 중에 있는 데이터 혁명 역시 자본주의 제도하에서 발생했다. 탈공업화에 대한 출구를 ‘금융화’에서 찾았던(영미형) 자본주의가 컴퓨터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을 수반했고, IT 기술은 데이터 혁명의 기술적 토대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현대인이 자신이 살아갈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회질서와는 근본적으로 성질이 다른 새로운 사회질서의 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는 한, 새로 도래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YTN ‘변상욱의 뉴스가 있는 저녁’, KBS ‘최경영의 경제쇼’, ‘뉴스공장’, ‘다스뵈이다’에 고정 출연 중인 국내 대표 경제사학자 최배근이 기본소득과 학교교육, 정부 정책, 무너지는 세계 시스템 등 현시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초연결 시대에 공감형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가 펼쳐갈 미래를 전망하는 책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로 돌아왔다. 대표 팩트 저격수인 최배근 교수는 특유의 돌직구 화법으로 ‘사상 초유의 대전환 시대에 공감형 인간만이 미래의 대안이다.’라는 주제로 끌어가는 이 책은 ‘야후와 구글의 운명이 뒤바뀐 이유’, ‘애플과 삼성전자가 다른 길을 걷게 된 이유’, ‘우버와 달리 타다가 플랫폼 기업이 될 수 없었던 이유와 같은 질문을 통해, 디지털 생태계에는 이익을 공유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파트1 <초연결 세계의 문이 열리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파트2 <공감, 초연결 세계의 가치가 되다>로 현재를 진단하며, 파트3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를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호혜적 디지털 생태계와 필연적으로 변모될 호모 엠파티쿠스에 대해 말한다. 마지막 파트4 <K방역, 한국의 미래가 되다>는 제목처럼 우리가 마주할 근미래를 예측하고 앞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대한 분기점 앞에 선 인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저자의 대담하고도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이는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는 ‘공감’과 ‘호혜’의 가치를 통해 향후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세밀하게 제시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멸망의 정원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3271. 쓰네카와 고타로 『멸망의 정원』 : 고요한숨

출근길, 전차에서 마주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스즈가미 세이치는 목적도 정하지 않은 채 여인의 뒤를 따른다. 나른한 오후의 단잠에서 깨듯 얼마간 혼미했던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마주한 곳은 마치 꿈결 같은 곳이다. 현실에선 꿈으로나 가능했던 일들이 이 세계에선 현실이 되어 일어났다. 이웃은 친절했고 배고플 이유가 없을 만큼 풍족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은 나를 사랑하고 밤하늘마저 아름다운 곳이다.

이것은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다. 매일 야근에 시달리는 삶에 지칠 대로 지친 그에게 돌아갈 곳은 없다. 집에 도착한 그를 맞이한 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낡은 외줄 위에 선 아내였다. 현실에서의 스즈가미 세이치는 모든 면에서 대체제가 있었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친구들이나 이웃 사이에서도 그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는 사뭇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 어디에도 대체제가 없을 것만 같은 이 세계에선 이웃도, 친구도, 여인도 친절했으며 동시에 그를 필요로 했다.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얼마간 그는 현실 세계의 ‘세이치’를 잊고 - 마치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것처럼 - 살았다.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쁜 딸아이와 함께라면 이 세계의 정체 따위는 스즈가미 세이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새로운 세계의 여정을 시작할 즈음, 현실은 고통과 시름으로 가득 찼다. 푸니에 의해 파괴되어 가던 세계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마주한다. 인류는 세이치가 그랬던 것처럼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며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 충동에 휩싸인다. 사람들은 폭력적으로 변하고 정부는 통제력을 상실한다. 어느 날 받아 든 한 통의 편지를 통해 세이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행복해질수록 인류가 불행해진다는 사실도.

어쩐지 영화 『매트릭스』가 떠오른다. 소설을 읽어보면 『매트릭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지만 영화 속 빨간 약과 파란 약, 현실과 가상 현실이라는 설정에서 묘하게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소설의 주인공 스즈가미 세이치가 인류로부터 받은 마지막 부탁은 아주 단순한 것이다. 지금 나의 행복을 파괴(포기) 하면 인류를 존속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 쓰네카와 고타로가 선물한 환상의 세계는 스즈가미 세이치에게 인생 최고의 선물임과 동시에 잔혹한 저주가 되고 만다. 멸망을 향해가는 지구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미지의 존재 푸니로 인해 권력층은 힘을 상실하고 정부는 통제력을 상실한다. 전 인류가 마치 현실에서의 스즈가미 세이치처럼 고통에 절규한다. 폭동과 살인이 끊이지 않으며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은 그 자체로 지옥이다.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가혹하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과 맞바꾸어 인류를 살릴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비록 정체가 불분명하지만 행복한 지금과 지독하고 처절한 현실. 둘 중 우리는 어떠한 것에 가치를 둘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영화 『매트릭스』가 떠오른 이유는 단지 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웠던 기억이 있는 만큼 쓰네카와 고타로의 『멸망의 정원』은 재미 면에서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소설의 중반부에 다다라 작가가 내던진 잔혹한 질문을 받게 되는 순간. 재미 이상으로 우리는 깊은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캉탕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7
이승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247. 이승우 『캉탕』 : 현대문학

걷고 보고 쓴다. 한중수는 그것 말고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한중수의 친구인 정신과 의사 J는 그에게 긴 휴식을 제안했다. 하던 일을 그대로 두고 떠나라. 책상을 치우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몸을 일으켜라. 하지 않던 일을 하고 가지 않던 곳으로 가라.

젊을 때부터 만성적인 두통에 시달린 니체는 걷다 보면 어느새 두통이 사라졌다고 한다. 언젠가 친구에게 쓴 편지엔 자기가 쓴 책 속의 거의 모든 생각들이 걷는 중에 떠올랐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중수는 J가 니체를 자기와 동일시하는 게 아닌 줄 알면서도, 자기에게 내린 걷기 처방을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니체와 그는 동일시할 수 없지만 니체의 두통은 그의 증상과 동일시할 만했다.

언젠가 꼭 한 번 만나보았다는 J의 외삼촌(최기남-핍)이 포경선과의 오랜 인연을 끝내고 정착한 곳은 한중수의 요양에 꽤나 도움이 됨직했다. J는 웬만한 지도에는 나오지도 않는 작은 항구도시 캉탕과 외삼촌 핍이 운영하는 식당 주소를 한중수에게 건넨다. 캉탕 사람들은 그곳을 ‘세상의 끝’이라고 말한다. 인구가 많지 않고 외지인들이 거의 드나들지 않아 1년 내내 한적하지만 5월 중순이 되면 역사 깊은 마을 축제로 인해 항구를 중심으로 제법 북적거린다. 바다의 신에게 바치는 전통 제사의식에 참여하며 캉탕의 사람들은 물론 외지인들은 스스로가 제물이 되어 바다로 몸을 던진다.

이승우 작가의 『캉탕』은 친구 J의 조언에 따라 오롯이 걷고 보고 쓰는 것 말고는 아무 계획도 없이 낯선 곳을 향해 훌쩍 떠난 한중수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가 도착한 캉탕, 그리고 외삼촌 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 피쿼드에서 만난 그와 그의 아내 요나의 이야기를 통해 한중수는 자신의 삶을 다시금 정립한다. 이것은 전작 『생의 이면』에서 그랬듯 이상적 자아 찾기의 여정으로 이어진다. 자신을 정립할 수 없기에 시작된 삶의 공백을 캉탕에 도착한 한중수가 니체가 그러했듯 걷고 또 걸으며 메운다. 이승우 작가가 대체로 자신의 소설에서 등장시키는 허무한 인간상, 즉 속이 텅 비어버린 사람은 『캉탕』에서 한중수로 등장한다. 또한 빠짐없이 배치되는 종교(기독교적), 신학 등이 이번 소설에서도 배치되지만 『캉탕』에서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이 기존에 작가가 중심 테마로 사용했던 종교, 신학 등에 가닿는다. 최기남-핍의 아내인 요나 역시 이와 연결되어 있다. 구약의 <요나서>는 신의 심판을 예언하는 요나의 이야기지만, 신의 메시지는 구원에 있다. 신은 고래로 하여금 요나를 삼켜 육지에 이르게 하고, 그에게 심판의 예언을 완수하게 한다. 요나의 예언으로 도시는 신의 구원을 받는다. 신화적 존재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비견되는 요나의 음성(노래)처럼 한중수는 캉탕과 작은 식당 피쿼드(의 사람들)에 이끌린다.

이승우 문학을 접할 때면 반드시 언급해야 할 부분이 바로 문체일 것이다. 갈 길 잃은 인간의 이상적 자아 찾기 여정을 통한 자신의 정립이라는 서사의 골조는 어쩐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도 목적과 방향이 비슷하다. 이승우 문학에서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하루키는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인한 텅 빈 인간을 그린다. 그러나 서사를 완성시켜 가는 단계에서의 문체는 어쩐지 정반대의 모습이다. 하루키의 문장이 어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검소하고 간결하면서도 원하는 모든 것을 담아낸 문장을 구사한다면 이승우의 문장은 어휘의 확장을 최대한 시도하며, 동의어 반복과 동어 반복을 통해 메시지를 강조하는 의미로 관용적인 어휘 구사를 통해 나쁘게 말하면 불필요하게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그 자체로(동의어 반복과 동어 반복) 자신만의 문체를 완성함은 물론, 효율과 확장, 간결과 복잡이라는 각 축의 정점에 있다는 점에서 나는 전혀 다른 두 작가의 문체를 열렬히 사랑한다.

이승우 작가는 『캉탕』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아무 데도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데도 갈 수 없었다. 아무 데나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아무 데나 갈 수 있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 무능한 사람이다. 허용된 것이 아니라 내버려 두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속이 텅 빈 채로 살아간다. 그리고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만약 텅 빈 속을 채울 수 있다면 나는 문학으로 채울 것이고, 만약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면 내 손엔 『캉탕』 같은 한 권의 책이 들려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 유물과 유적으로 매 순간 다시 쓰는 다이나믹 한국 고대사 서가명강 시리즈 12
권오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272. 권오영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 21세기북스

2000년대 초반 ‘21세기는 정보화 시대’라는 문구는 미디어를 도배했다. 그러나 정보와 관련된 많은 책들을 접하며 나는 이 시대도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도 결코 일반인들에게 정보란 유의미하지 않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정보(information)는 자료(data)와 한 몸이면서 적절히 분리되어야 할 대상이다. 정보는 내 손에 들어오는 순간까지 이미 수많은 손을 거쳐 소실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소실의 정도에 따라 대부분은 아무 의미 없는 정보가 되고 만다. 그러나 지식(자료)은 정보의 특성과 다르게 꾸준히 쌓이며 가치를 지속한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 정보를 취득하는 것보다는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류의 역사는 반복된다. 물론 지나간 역사를 토대로 앞으로 일어날 역사의 오류를 거듭 수정하고 있으나 큰 틀에서의 역사는 여전히 반복 중에 있다. 때문에 나는 재미 반, 흥미 반 정도로 역사를 접하고 있는데 물론 이러한 지식이 개인적인 미래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역사를 접해본다.

역사를 접할 때에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성질, 즉 사실성이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역사들이 선조에 의해 혹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 의해 미화되고 왜곡되며 편향된 역사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정작 내가 알고 싶은 역사는 앞서 말한 사실성에 기인한 진짜 역사다. 우리의 선조가, 우리의 역사가, 조금 부끄럽더라도 때로 나약했고 때로 슬픈 현실을 담고 있다 해도 나는 늘 진실을 원한다. 사실성에 기인한 역사를 알아야 다가올 미래에 적어도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권오영 교수의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는 지난 시간 언급했던 서가명강 열두 번째 시리즈다.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라는 의미의 서가명강은 서울대 학생들이 듣는 인기 강의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시리즈로 현직 서울대 교수진의 유익하고 흥미로운 강의를 엄선하여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양과 삶에 품격을 더하는 지식을 제공한다. 특히 이 시리즈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기초 학문부터 전공을 넘나드는 융합 콘텐츠, 트렌드를 접목한 실용 지식까지 차원이 다른 명품 강의라는 데 있다. 생각해보자 서울대 가긴 정말 힘들지만 이 책 한 권 읽는 것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한국사란, 한국과 관련된 사료를 평가 및 검증하고 역사적 사실과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파악하고 역사의 진실을 추적하면서, 앞으로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안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을 다루고 있으며, 국제 교류의 흔적이 발견되면서 한중일 삼국의 동북아시아에서 더 나아가 유라시아 전체로 연구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책을 읽기에 앞서 주요 키워드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읽어보면 삼국사기, 삼한, 가야, 임나일본부설, 고분, 순장/후장, 수도유적, 위례성, 실크로드 같은 단어들이 눈에 띈다. 책의 제목과 키워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삼국시대 역사의 진실에 대해 탐구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오류를 수정한다. 또한 저자는 기존의 역사학계가 폭증하는 새로운 자료를 제대로 정리하고 보급하지 못한 점, 역사학 고유의 방법이라는 도그마에 빠져 눈부시게 발전하는 자연과학과 공학, 통계학 법의학 등 인접 학문의 방법론을 활요한 융복합적 연구에 소홀한 점, 한반도라는 좁은 공간만을 대상으로 연구와 교육을 전개한 탓에 한국 고대사회의 특징을 외국의 사례와 비교하여 세계사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을 설명해내는 비교사적 시각이 크게 부족한 점을 들며 고대사 중에서도 남아 있는 사료가 상대적으로 많은 삼국시대에 집중하여 유물, 유적이 발굴될 때마다 반전이 일어나는 연구의 역동성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으로 원고를 써 내려갔다고 한다.

이 책에는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건들을 완전히 뒤집을 만한 새로운 면면들이 제시되고 있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 많은 사람들이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를 통해 지나간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고 한국 고대사를 바라보는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