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탕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7
이승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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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7. 이승우 『캉탕』 : 현대문학

걷고 보고 쓴다. 한중수는 그것 말고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한중수의 친구인 정신과 의사 J는 그에게 긴 휴식을 제안했다. 하던 일을 그대로 두고 떠나라. 책상을 치우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몸을 일으켜라. 하지 않던 일을 하고 가지 않던 곳으로 가라.

젊을 때부터 만성적인 두통에 시달린 니체는 걷다 보면 어느새 두통이 사라졌다고 한다. 언젠가 친구에게 쓴 편지엔 자기가 쓴 책 속의 거의 모든 생각들이 걷는 중에 떠올랐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중수는 J가 니체를 자기와 동일시하는 게 아닌 줄 알면서도, 자기에게 내린 걷기 처방을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니체와 그는 동일시할 수 없지만 니체의 두통은 그의 증상과 동일시할 만했다.

언젠가 꼭 한 번 만나보았다는 J의 외삼촌(최기남-핍)이 포경선과의 오랜 인연을 끝내고 정착한 곳은 한중수의 요양에 꽤나 도움이 됨직했다. J는 웬만한 지도에는 나오지도 않는 작은 항구도시 캉탕과 외삼촌 핍이 운영하는 식당 주소를 한중수에게 건넨다. 캉탕 사람들은 그곳을 ‘세상의 끝’이라고 말한다. 인구가 많지 않고 외지인들이 거의 드나들지 않아 1년 내내 한적하지만 5월 중순이 되면 역사 깊은 마을 축제로 인해 항구를 중심으로 제법 북적거린다. 바다의 신에게 바치는 전통 제사의식에 참여하며 캉탕의 사람들은 물론 외지인들은 스스로가 제물이 되어 바다로 몸을 던진다.

이승우 작가의 『캉탕』은 친구 J의 조언에 따라 오롯이 걷고 보고 쓰는 것 말고는 아무 계획도 없이 낯선 곳을 향해 훌쩍 떠난 한중수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가 도착한 캉탕, 그리고 외삼촌 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 피쿼드에서 만난 그와 그의 아내 요나의 이야기를 통해 한중수는 자신의 삶을 다시금 정립한다. 이것은 전작 『생의 이면』에서 그랬듯 이상적 자아 찾기의 여정으로 이어진다. 자신을 정립할 수 없기에 시작된 삶의 공백을 캉탕에 도착한 한중수가 니체가 그러했듯 걷고 또 걸으며 메운다. 이승우 작가가 대체로 자신의 소설에서 등장시키는 허무한 인간상, 즉 속이 텅 비어버린 사람은 『캉탕』에서 한중수로 등장한다. 또한 빠짐없이 배치되는 종교(기독교적), 신학 등이 이번 소설에서도 배치되지만 『캉탕』에서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이 기존에 작가가 중심 테마로 사용했던 종교, 신학 등에 가닿는다. 최기남-핍의 아내인 요나 역시 이와 연결되어 있다. 구약의 <요나서>는 신의 심판을 예언하는 요나의 이야기지만, 신의 메시지는 구원에 있다. 신은 고래로 하여금 요나를 삼켜 육지에 이르게 하고, 그에게 심판의 예언을 완수하게 한다. 요나의 예언으로 도시는 신의 구원을 받는다. 신화적 존재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비견되는 요나의 음성(노래)처럼 한중수는 캉탕과 작은 식당 피쿼드(의 사람들)에 이끌린다.

이승우 문학을 접할 때면 반드시 언급해야 할 부분이 바로 문체일 것이다. 갈 길 잃은 인간의 이상적 자아 찾기 여정을 통한 자신의 정립이라는 서사의 골조는 어쩐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도 목적과 방향이 비슷하다. 이승우 문학에서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하루키는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인한 텅 빈 인간을 그린다. 그러나 서사를 완성시켜 가는 단계에서의 문체는 어쩐지 정반대의 모습이다. 하루키의 문장이 어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검소하고 간결하면서도 원하는 모든 것을 담아낸 문장을 구사한다면 이승우의 문장은 어휘의 확장을 최대한 시도하며, 동의어 반복과 동어 반복을 통해 메시지를 강조하는 의미로 관용적인 어휘 구사를 통해 나쁘게 말하면 불필요하게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그 자체로(동의어 반복과 동어 반복) 자신만의 문체를 완성함은 물론, 효율과 확장, 간결과 복잡이라는 각 축의 정점에 있다는 점에서 나는 전혀 다른 두 작가의 문체를 열렬히 사랑한다.

이승우 작가는 『캉탕』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아무 데도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데도 갈 수 없었다. 아무 데나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아무 데나 갈 수 있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 무능한 사람이다. 허용된 것이 아니라 내버려 두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속이 텅 빈 채로 살아간다. 그리고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만약 텅 빈 속을 채울 수 있다면 나는 문학으로 채울 것이고, 만약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면 내 손엔 『캉탕』 같은 한 권의 책이 들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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