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데아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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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로 살아갈 것인가'

스무 살 준서는 모로코와 파리를 거쳐 서울에 도착한다.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아온 그는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서울행은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려는 시도였지만, 그는 다시 이방인이 된다.

주연을 한국에 대한 끌림의 이유로 생각하지만, 그마저 신기루였음을 깨닫는다. 나는 준서가 타인에게 기대다 무너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정체성이란 타인을 통해 완성될 수 없는 것이었다.

작품을 통해 '소속'이 곧 정체성인지 묻게 되었다. 준서는 태어난 곳과 자란 곳이라는 두 색이 섞여 자신만의 색을 잃은 듯 보이지만, 그 섞인 색이 준서만의 색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외국에서 '외국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오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서도 언젠가 '나다움'이 자신의 정체성임을 알게 될 것이다.

준서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던 순간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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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나탈리아 쇼스타크 지음, 정보라 옮김 / 스프링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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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소녀가 겪어야만 했던
가족의 '상실'에 대한 이야기.


중학생 마리안나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남동생 야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잔잔하고 평온했던 일상은 아빠의 파산으로 무참히 깨져버린다. 빚을 청산하기 위해 부모는 영국으로 떠나고, 마리안나와 야쿱은 할머니 알리치아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 작품은 한 가장의 무책임함이 어떻게 한 가족의 형태를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준다. 가족이란 울타리는 단단해 보이지만, 현실의 사건 하나로도 쉽게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리안나는 부모와 떨어져 살아가는 생활을 마음 깊숙이 경멸한다. 오래되어 낡은 가구, 쿱쿱한 냄새가 나는 집, 그리고 자신에게 무관심해 보이는 할머니까지, 그녀는 모든 상황이 자신을 억누른다고 느낀다. 이때 마리안나가 느끼는 '상실'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가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감각에 가깝다.

"자신이 겪은 일이 무엇인지 이름조차 붙일 수 없었다. 그것을 고통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163p)

이 문장은 마리안나의 상태를 잘 보여준다. 그녀의 고통은 존재하지만, 아직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힘조차 없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비극은 가족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고, 마리안나 역시 부모의 부재와 할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삶에 집중하지 못한 채 방황한다. 성적은 떨어지고, 수업과 친구 관계마저 흔들린다. 이는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현실의 무게를 보여주고 있다.

'가족'이란 온전한 형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함께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마리안나를 보며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 작품 속 가족은 이미 어긋난 톱니바퀴처럼 삐거덕거리지만, 완전히 멈추지는 않는다. 그녀에게 가족은 상처를 주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사라져서는 안 되는 마지막 안전장치였던 듯하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청소년 소설로 분류된다. 그러나 중학생 소녀의 시선으로 그려낸 '상실의 그림자'는 깊다. 부모의 부재와 이혼, 세대 차이 등 이 사회적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마리안나가 집을 도망칠 만큼 버거워했던 상황이 결코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야기의 끝은 다행스럽게도 희망적이다. 무너진 가족의 틀은 다시 세워지고, 가족들은 각자의 자리를 조금씩 되찾는다. 이상적인 화해라기보다는, 상처를 안은 채 계속 살아가야 하는 관계에 가깝기에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당연하게만 여겨지던 것들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붕괴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가족의 의미와 자신의 자리를 다시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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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홍이
박경란 지음 / 하늘퍼블리싱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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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타고 내려온 아픔의 역사.
그리고 그 아픔을 끝마치기 위한 또 하나의 '안녕'


이야기는 3대에 걸쳐 대물림된 상처의 시간을 따라간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제 징용, 한국 전쟁, 파독 간호사,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까지. 이 소설은 한 가족의 삶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길게 관통한다.

일본인 순사에게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된 홍이는 전쟁이 끝나기 전 간신히 도망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온 삶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과거를 숨긴 채 살아가기엔 그녀가 감당해야 할 현실이 너무도 가혹했다. 죽음을 결심한 순간, 일본 군수공장에서 끌려갔다 돌아온 태구를 만나 서로의 상처를 위안 삼으며 살아가지만, 한국전쟁이라는 또 하나의 비극이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홀로 딸 현자를 낳은 홍이는 침묵 속에서 삶을 이어간다. 현자는 파독 간호사가 되어 독일로 떠나고, 현자의 딸 은수는 아빠의 죽음 이후 계모인 현자의 손에서 자란다. 그러나 은수는 뿌리를 알지 못한 채, 설명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살아간다. 이 세 여자의 삶은 모두 '전쟁'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의해 만들어진 시간이었다.

이 작품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홍이라는 인물이 선택한 '침묵'이었다. 딸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과거를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던 삶. 그 침묵이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을지, 나는 차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상처를 말하지 않는 것이 곧 극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홍이를 통해 더 분명해졌다.


"침묵했던 할머니들은 한참이 흐른 후에야 상처를 이야기했다. 상처가 치유되어서가 아니라, 상처를 안고 저무는 인생이 더 두려워서였다."(109p)

한 번 구겨진 종이는 다시 필 수 있어도 남은 주름은 사라지지는 않는다. 마음에 새겨진 상처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질 수는 있어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왜 이 아픔은 3대에 걸쳐 이어져야 했을까. 답 없는 질문을 되뇌는 사이, 이야기는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늘 홍이가 있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존재하는 인물, 모든 고통이 그녀를 향해 모이고 다시 흘러간다. 홍이의 삶에 도착하는 순간, 나는 결국 한참을 멈춰 서야 했다. 울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홍이라는 인물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상상하는 순간 끝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그들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 것은 '외로움'이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땅에서의 삶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이렇게 참 많은 상처를 품고 있다. 그 시간을 직접 겪지 않은 나는, 그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밖에는 할 수 없다는 사실마저 마음을 무겁게 했다.

홍이들의 이야기는 단지 한 가족의 비극이 아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새기고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고통의 역사다.
그리고 이 소설이 건네는 '안녕'은, 이별이 아니라 끝내 잊지 않겠다는 약속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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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나쓰키 시호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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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규범과 욕망의 갈림길 앞에서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보통 아이와는 다르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고이치는 우연히 미술 선생님 니키의 비밀을 알게 된다. 니키는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롤리콘'이자, 성인용 롤리콘 만화를 연재하는 만화가였다. 사회적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정체성을 숨긴 채, 그는 평범한 교사로 살아가고 있었다.

고이치는 니키의 작품을 훔치다 들키고, 니키의 도움으로 상황을 무마한다. 이후 고이치는 그의 비밀을 알고 있다며 니키를 협박하고, 두 사람은 '비밀'을 매개로 기묘한 관계를 맺게 된다.


왜 고이치는 니키를 협박했을까. 그 이유는 고이치 자신조차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관계가 이어질수록 그의 감정은 점차 드러난다. 고이치는 자신처럼 '평범하지 않은' 니키가 평범한 인간의 얼굴로 살아가는 모습에 강한 동경을 느꼈던 것이다. 그는 인기 있는 노래를 억지로 듣고, 타인의 행동을 흉내 내며 다수에 속하려 애쓴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그는 끝내 '평범한 집단'에 들어가지 못한다.

니키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면서도 성인 만화를 그린다. 그 이유는 어쩌면 자신의 내면 속 욕망을 억누르기 위한 일종의 발악이지 않을까 생각됐다. 비밀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가면을 쓰고 드러내는 이중적인 모습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고, 동시에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혐오와 연민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렇다면 '평범함'이란 무엇일까.
눈에 띄지 않고, 모두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이 과연 평범함일까.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좋은 삶일까. 소수로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잘못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무심코 믿어왔던 '보통의 기준'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느끼게 되었다.

니키는 아이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지만, 절대 행동으로 옮기지 않겠다는 신념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의 내면까지 용납하지 않는다. 선택하지 않은 정체성으로 비난받는 그의 모습은 불편하면서도 씁쓸하다.


"자신의 소중한 부분을 옷장 속에 숨기고 사는 방법도 있는데."(182p)

결국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을 옷장 속에 숨긴 채 살아간다. 비밀을 가진다는 사실 자체가 죄는 아니다.
사회가 금기시하는 정체성을 가진 채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드러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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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꽃
이동건 지음 / 델피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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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 그 경계에 선 자를,
당신이라면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날, '세상의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고, 그 의학 기술을 공개하고 싶다'는 남자가 나타난다. 그의 이름은 이영환. 단, 조건이 있다. 223명을 대상으로 한 인체 실험으로 사람을 죽인 죄에 대해 법적 처벌을 면제해달라는 것이다. 만약 그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까지 말한다.


"제가 223명을 죽여서 2개월 정도 갇혀 있었네요. 그 2개월이라는 시간 사이에 적어도 전 세계에서 60만 명이 암으로 죽었어요. 그리고 제가 그 60만 명을 살릴 수 있었죠. 지금! 223명 때문에 60만 명이 죽었어요. 판사님, 저는 죄가 없습니다."(87p)


'인류의 구원'을 내세워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이영환의 주장에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그를 변호해 면제를 받아주면 원하는 사람을 치료해 주겠다는 제안에, 딸을 살리고 싶은 재준은 자신의 신념을 거슬러 그를 변호하기로 결심한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킨 이영환.
그에 말대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희생은 정말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당신이라면, 용서할 수 있을까.


비윤리적인 인체 실험이라는 죄와 완벽한 치료법 사이에 선 이영환은 끝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죄로 인식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죽였으면서도, 그는 당당하고 뻔뻔하다. 그 모습에 나는 분노를 느꼈다. '정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으로서, 그의 논리와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 그리고 치료를 바라는 사람들까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아이를 잃은 부모로서 그의 사형을 외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병든 아이를 살리기 위해 그의 면제를 요구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오히려 이런 질문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영환은 정말 단순한 '악인'일까?


"아니! 제 어머니를 죽인 놈이 지금 저를 살릴 유일한 사람이라고요!! 어떻게 어머니를 죽인 새끼한테 살려 달라고 빕니까... 근데 저... 살고 싶어요... 살려 줘요..."(142p)

만약 내가 그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했다.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과 가족밖에 보지 못하는 존재일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면서까지, 나의 생존을 택하게 되는 존재일까.

이 소설은 반복해서 질문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존재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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