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윌북 클래식 브론테 세 자매 컬렉션
에밀리 브론테 지음, 박찬원 옮김 / 윌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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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이들의,
추악하지만 애절한 폭풍 같은 사랑.


🏷️ 요크셔의 황야에 자리한 '워더링 하이츠'를 중심으로, 거친 언덕 위에서 펼쳐지는 폭풍 같은 사랑 그린 폭풍의 언덕. 세계 문학을 대표하는 고전 명작으로, 깊은 호수 아래 잠긴 어둠처럼 인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야기가 담겨 있다.


🏷️ 힌들리와 캐서린, 그리고 언쇼 가문에 등장한 히스클리프의 관계는 지나치게 복잡하다. 캐서린을 사이에 둔 히스클리프와 에드거의 모습은 잔잔한 언덕 위에 드리워지는 먹구름처럼 느껴진다. 서로를 운명이라 여겼지만, 사회적 신분이라는 벽 앞에서 두 사람은 끝내 이어지지 못하고 캐서린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적어도 나에게 캐서린과 에드거의 결혼은, 모든 비극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지점처럼 보였다.


❝나한테 캐서린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 게 있을까?... 온 세상이 캐서린이 존재했었다는, 그리고 내가 캐서린을 잃었다는 끔찍한 기록이야!❞(548p)


▫️잔혹하고 거친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캐서린이 죽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 그의 뒤틀린 감정은 두 가문 모두를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캐서린을 향한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따뜻한 로맨스가 아니라, 손에 넣을 수 없는 새를 어떻게든 자신의 새장에 가두려는 미숙한 아이의 욕심처럼 보였다.

이 비극적인 사랑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작품 속 인물들 모두가 마치 불행을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사랑으로 인한 불행을 담아낸 이야기에 독자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사촌 간의 결혼, 가스라이팅, 정신적 불륜 등 현대의 기준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정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물론 시대적인 배경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추악한 감정들이 난무하는 인물들의 사랑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영문학 3대 비극' 중 하나로 언급되는 이 작품은 파격적이고 잔인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감정이야말로 인간이 사랑할 때 드러내는 본성은 아닐까 싶다. 증오와 집착, 상처와 후회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재출간된 윌북 판본은 옮긴이의 감각이 잘 살아 있어, 문장이 막히지 않고 수월하게 읽힌다. 인물들의 성격이 드러나는 말투와 어휘 선택 덕분에 이야기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된다. 고전이라는 이유로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작품은 단언컨대 읽기 힘든 책은 아니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격정적인 사랑과 복수, 집착의 서사를 마주하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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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정원
조경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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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비밀스러운 병원에 가면 죽을 수 있다.”
🏷️ 스스로 생을 끊은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던 태오는, 충격으로 세상과 단절해버린 동생 태린을 찾기 위해 ‘안락정원’으로 향한다. 동생의 짐더미 속에서 발견된 명함 한 장. 그 작은 종이 한 장이 태오를, 누구의 간섭도 닿지 않는 은밀한 공간으로 이끈다. 태오는 동생이 그 곳에 있으리라는 희망을 붙잡고, 죽고 싶다는 거짓말로 ‘안락정원’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죽음이 넘나드는 그곳에서, 그는 과연 동생과 함께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을까.


🏷️ 사채업자와 연결되어 있고, 죽음을 원하는 이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곳이라는 어두운 소문을 지닌 안락정원.

그 안에는 당뇨를 앓는 순이 할매, 늘 웃는 얼굴의 현빈,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402호까지, 저마다 상처를 안은 이들이 함께 살아간다. 모두 한 번쯤은 죽음의 문턱 앞에 서본 사람들이다.


“죽고 싶은데 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 거죠?”
“죽음은 그냥 어떤 순간일 뿐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요.”(89p)


▫️이 작품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시간’을 이야기한다. 그 시간은 단순한 유예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다.

정말로 끝내고 싶은 것이 삶인지, 아니면 지금의 고통인지.

안락 정원에는 죽고 싶지만 스스로 죽지 못하는 사람과, 사실은 살고 싶지만 죽어야만 하는 사람이 공존한다. 그 아이러니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생각보다 얇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 역시 힘들고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 ‘죽고 싶다’라는 말을 내뱉은 적이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하루르 버티기 싫었던 것뿐이었다. 어쩌면 그 말은 끝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닿고 싶다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슬픔과 웃음도 삶과 죽음처럼 티슈 한 장 차이일지 모르겠다.”(262p)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결국 사람으로 인해 조금씩 회복되는 이야기. 이 소설은 죽음을 말하지만, 결국은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생은 낙하산 같다”는 순이 할매의 말처럼,
태풍에 휘말려 낙하산이 뒤집히는 날도 있겠지만 바람은 영원히 같은 방향으로 불지 않는다.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결국은 하루를 더 살아보기로 마음먹는 이야기.


🔖 이 작품을 읽는 나를 포함한 모든 독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여러 번, 삶을 다시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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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인형 나쁜 인형 YA! 30
서하나 지음 / 네오픽션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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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은 왜, '착한' 가면을 벗어야만 했을까.

복제 인형 젠은 극단적으로 계급이 분리된 사회에서 살아간다. '실버'라 불리는 계층의 노인들은 각자 인형과 함께 살며, 인형들은 실버를 즐겁게 하기 위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다닌다. 인형들은 혼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고, 실버에 대한 복종의 의미로 흰색이 들어간 옷과 소품을 착용해야 하며, 그들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다. 이 설정만으로도 숨이 막히듯 답답한 세계다.

엄격한 규칙과 통제 속에서 살아가던 젠은 점점, 인형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부당한지 깨닫기 시작한다.

젠은 실버의 손녀 마릿으로 인해 가장 친한 친구 칼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를 알게 되고, 자신과 다른 인형들을 위협하는 현실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그 선택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젠은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게 된다. 젠은 과연 자신에게 씌워진 '착한 인형'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


작품 속 인형들의 삶은 철저한 계급 사회 안에서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 채 이어간다. 젠의 실버 루비는 그나마 젠을 인간처럼 대하며 사랑해 주지만, 대부분의 인형들은 폭력과 무관심 속에 놓여 있다. 젠의 친구 칼은 실버로부터 가학적인 폭행을 당하고, 닐은 강압적인 명령에 무조건 복종한다. 이 장면들을 읽으며, '이들이 정말 인형일까'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라 불편했다. 인형과 인간은 과연 다른 것인가.

젠은 점점 이 삶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통받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한다.

"알아요. 당신은 우리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거. 그래도 해야겠어요. 하다 보면 언젠가 들어주겠죠. 닐이 더는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닐의 실버가 마음을 바꿀 수 있게 해주세요. 닐은, 우리는 잘못한 게 없잖아요."(190p)

젠은 더 이상 참지 않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한다. 그것은 곧 자신의 목숨을 거는 일이자, 사회 질서에 맞서는 행동이었다. 젠 혼자의 날갯짓은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작은 나비들의 날갯짓이 모인다면, 완벽하지 않은 사회의 틈 사이로 언젠가는 바람이 스며들지 않을까.

사회 체제에 도전하는 젠의 모습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폭력과 통제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순응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맞설 것인가.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저항해왔다. 조선 시대의 농민운동, 독재로 맞선 학생운동,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시민운동까지. 그러나 나 역시 젠처럼 행동할 수 있을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젠이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는 용기와 실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를 빼앗긴 사회에서 살아가는 젠이 '사랑'을 무기로 자유와 존엄을 찾아가는 이야기.
이 작품은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는 부당함 앞에서, 어떤 가면을 쓰고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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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요리사
김범석 외 지음 / 네오픽션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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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재료들로 완성된 여섯 편의 이야기.
-바이러스, 여객선, 그리고 괴물.


하나의 사건과 배경을 두고 여섯 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집이다.
여객선 ‘지수호’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퍼진 바이러스, 그리고 감염으로 괴물로 변해버린 사람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생존과 공포는 생각보다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야기마다 등장인물은 다르지만, 모두가 같은 위기 속에 놓여 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괴물에 맞서고,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배신을 선택하며, 또 누군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버틴다.
작품은 서로 다른 결을 지니고 있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본질만큼은 다르지 않다.
바로 ‘인간의 욕심’이라는 본성이다.

결국 벼랑 끝에 다다라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인간의 얼굴은 서늘하다.
나 혹은 소중한 사람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선택. 어쩌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지닌 두 얼굴일지도 모른다.


여섯 편의 서사는 저마다의 매력과 흡인력을 지니고 있어, 읽고 나면 오히려 짧게 느껴질 만큼 몰입하게 된다.
잔인하게 공격하는 괴물의 모습에 빠져들다 보면 문득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바이러스를 둘러싼 국가 간 이해관계 속 인간들의 모습은 또 다른 괴물처럼 보인다.
직접적인 폭력만이 괴물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선택 역시 또 하나의 폭력이 아닐까.


마치 넷플릭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액션과 추격의 스릴, 그리고 인물들 사이의 치열한 심리전이
짧은 이야기 안에 촘촘히 담겨 있다. 강렬한 스토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기묘한 재료로 완성된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이야기 속 ‘진짜 괴물’을 끝까지 추적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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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명성아파트
무경 지음 / 래빗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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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아파트를 둘러싼 인간의 탐욕!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어린 소녀 입분은 이른 부모의 죽음으로 식모살이로 여러 집을 전전한다. 도둑으로 오해받아 쫓겨난 뒤, 최연자(가야마)를 따라 명성아파트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1939년 경성, 산 아래 바위 지대를 깎아 세워진 명성아파트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의문의 죽음들. 입분은 그곳에 사는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단서 삼아 사건의 진실을 좇기 시작한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풀어가는 이 추리의 끝에는, 어른들의 욕망과 탐욕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위에 추리소설을 결합한 독특한 설정은 생각보다 훨씬 몰입하게 했다. 일본의 지시 아래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아파트, 그리고 그 안에서 뒤섞여 살아가는 일본인과 조선인들. 이야기 속에는 자연스럽게 역사적 분위기가 스며들고, 강압적인 일본인들의 태도와 이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조선인들의 현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입분은 식모로서 마님을 위해 밥을 짓고 심부름을 하며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똑똑하고 관찰력이 뛰어난 아이이다. 그래서 '명성아파트'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하나씩 짚어 나가는 입분의 추리는 놀라움을 준다. '과연 어린아이가 이런 추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그 힌트가 대부분 어른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는 점에서 오히려 설득력을 갖는다.

"너도 조심해야 한다. 겉은 멀쩡해보여도 속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그걸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해."(77p)
"겉보기엔 괴물처럼 보이지 않는 괴물이겠지. 사람들은 진짜 모습을 숨기고 살거든.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모습을 보이지만, 속으로는 어떤 잔혹한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니까."(171p)

입분을 제외한 어른들은 저마다의 '진짜 얼굴'을 감추고 살아간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던 그들의 욕망은 사건을 파헤칠수록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낯선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인간의 민낯은 지금의 우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에 사는 누구라도 범인이 될 수 있다. 미우라 경부가 범인일 수도 있고, 히로타 교수, 정 작가, 마쓰 감독 일행, 심지어 내가 범인일지도 몰라."(264p)

결국 입분의 추리대로 범인은 밝혀진다. 그러나 진실 위에 덧붙여진 또 하나의 진실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 사건의 범인이 아닐 뿐, 누구나 또 다른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죽음이라는 이름 안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과 비밀은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1939년 명성아파트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그래서 더욱 잔인하고 무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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