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명성아파트
무경 지음 / 래빗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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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아파트를 둘러싼 인간의 탐욕!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어린 소녀 입분은 이른 부모의 죽음으로 식모살이로 여러 집을 전전한다. 도둑으로 오해받아 쫓겨난 뒤, 최연자(가야마)를 따라 명성아파트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1939년 경성, 산 아래 바위 지대를 깎아 세워진 명성아파트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의문의 죽음들. 입분은 그곳에 사는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단서 삼아 사건의 진실을 좇기 시작한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풀어가는 이 추리의 끝에는, 어른들의 욕망과 탐욕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위에 추리소설을 결합한 독특한 설정은 생각보다 훨씬 몰입하게 했다. 일본의 지시 아래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아파트, 그리고 그 안에서 뒤섞여 살아가는 일본인과 조선인들. 이야기 속에는 자연스럽게 역사적 분위기가 스며들고, 강압적인 일본인들의 태도와 이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조선인들의 현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입분은 식모로서 마님을 위해 밥을 짓고 심부름을 하며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똑똑하고 관찰력이 뛰어난 아이이다. 그래서 '명성아파트'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하나씩 짚어 나가는 입분의 추리는 놀라움을 준다. '과연 어린아이가 이런 추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그 힌트가 대부분 어른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는 점에서 오히려 설득력을 갖는다.

"너도 조심해야 한다. 겉은 멀쩡해보여도 속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그걸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해."(77p)
"겉보기엔 괴물처럼 보이지 않는 괴물이겠지. 사람들은 진짜 모습을 숨기고 살거든.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모습을 보이지만, 속으로는 어떤 잔혹한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니까."(171p)

입분을 제외한 어른들은 저마다의 '진짜 얼굴'을 감추고 살아간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던 그들의 욕망은 사건을 파헤칠수록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낯선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인간의 민낯은 지금의 우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에 사는 누구라도 범인이 될 수 있다. 미우라 경부가 범인일 수도 있고, 히로타 교수, 정 작가, 마쓰 감독 일행, 심지어 내가 범인일지도 몰라."(264p)

결국 입분의 추리대로 범인은 밝혀진다. 그러나 진실 위에 덧붙여진 또 하나의 진실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 사건의 범인이 아닐 뿐, 누구나 또 다른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죽음이라는 이름 안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과 비밀은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1939년 명성아파트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그래서 더욱 잔인하고 무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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