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1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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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1월 18일이다. 그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타라는 어느 날 갑자기 반복되는 시간 속에 갇힌다.
분명 하루를 마치고 잠이 들었는데, 다시 눈을 뜨면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타라는 멈춰버린 시간을 다시 움직이기 위해 애쓴다.
출장지에서 집으로 돌아가 남편에게 설명해 보기도 하고,
제한된 자유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는 바뀌지 않는다.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일수록 무력감은 더욱 깊어졌다.

총 다섯 편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출구를 찾으려는 타라의 여정을 따라간다.
1편은 사건보다도, 그 안에서 그녀가 어떤 감정으로 흔들리는지를 촘촘하게 보여준다.

자신만 기억을 안은 채 같은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하다.
놀라움과 분노를 지나, 타라는 급기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에까지 닿는다.

"나를 비틀거리게 하는 것은 상실이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149p)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타라가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여기기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자신이 건드린 물건과 음식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그녀는 남편의 일상에서조차 조용히 자신을 지워간다.
그 장면을 읽는 동안 그녀가 얼마나 깊은 외로움 속에 있었을지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타라가 가장 믿고 있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며 남편만큼은 자신의 말을 믿어주고,
시간을 되돌릴 방법을 함께 찾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의 흔들리는 눈빛과 망설이는 태도를 마주하는 순간,
자신이 믿어왔던 것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오랜 지인 역시 그녀의 이야기를 믿기보다 두려움을 먼저 드러낸다.
그 모습을 보며 타라는 결국 이 시간을 자신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솔직히 1편은 빠른 전개를 기대했다면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흐름을 따라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사건보다 타라의 감정 변화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반복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타라의 마음이 더 궁금해졌다고 해야 할까.

이제 2편에서는 타라가 여러 도시를 떠돌며 본격적으로 시간의 출구를 찾아 나선다.
그녀가 다음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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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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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와 계절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하루.


멈춰버린 시간 속에 갇혀버린 타라.

1편에서는 시간을 다시 움직일 여러 방법을 찾아보고,
남편과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된 그녀는 결국 홀로 유럽 여러 도시를 떠돌기 시작한다.

2편은 11월 18일을 반복해 살아가는 타라가 시간이 흐를수록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더욱 집중한다.
그녀는 여러 도시를 오가며 시간과 공간, 그리고 계절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던 타라는 점차 달라진다.
스스로 답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는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을 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희망을 잃어가는 과정처럼 보여 더욱 마음이 아팠다.

여전히 자신을 세상을 갉아먹는 괴물이라 여기며,
타인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그 모습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하나둘 끊어내는 것처럼 보였고,
멈춰버린 세상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려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타라가 점점 '계절의 변화'에 집착하기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타라는 겨울과 봄, 여름의 흔적을 찾아 여러 도시를 떠돈다.
좁은 감옥에 갇힌 사람이 작은 틈새 하나를 찾듯,
그녀는 시간이 아직 흐르고 있다는 단서를 놓치고 싶지 않아 보였다.

급기야 그녀는 수많은 역사 속에서도 그 답을 찾으려 한다.
로마제국의 발전이 한순간에 멈춘 이유를 찾기 위해 도서관의 자료를 뒤지지만
끝내 명확한 해답은 발견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담담히 받아들이는 타라를 보며,
이제 그녀는 시간을 되돌리는 것보다 멈춘 시간을 살아내는 법을 조금씩 익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는 무한한 시간이 결코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간이 바뀌고 계절이 달라져도 타라는 여전히 같은 하루를 살아간다.
변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그 시간을 견뎌내는 타라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번에도 타라는 멈춘 시간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2편은 출구 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변화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다음 3편에서는 타라가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리고 그 시간이 그녀를 어디까지 바꾸어 놓을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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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남긴 것
애너 퀸들런 지음, 김지현 옮김 / 리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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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평범한 아내이자, 네 아이의 엄마, 그리고 친구였던 애니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이야기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을 들여, 하나씩 차근차근 그들의 흔들리는 감정과 조금씩 달라지는 삶을 보여준다.

각자가 슬픔을 견디는 방식이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어느 순간 그들의 감정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버티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내의 빈자리를 마주한 채 홀로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빌.
엄마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챙기며 어느새 어른이 되어가는 첫째 딸 알리.
그리고 결국 다시 약에 손을 대고 마는 앤마리.

한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을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

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적이 있기에,
인물들이 겪는 혼란과 상실이 더욱 깊게 다가왔다.

"슬픔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슬퍼하지 않는 사람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단다"(183p)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남았던 인물은 첫째 딸 알리였다.

알리는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하고 동생들을 돌본다.
나 역시 첫째 딸로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을 챙기고 스스로 해내는 법을 익히며 자랐기에,
알리의 조숙함은 마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어른들이 슬픔 속에서 흔들리는 동안에도 알리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친구 제니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그럼에는 끝내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아빠는 다른 아내를 맞이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절대로 다른 엄마를 가질 수 없다는 거예요."(321p)

마지막, 알리가 꺼낸 이 한마디는 슬픔에 머물러 있던 어른들을 비로소 현실로 이끈다.

더 이상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는 것.
애니는 떠났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결국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제야 나는 '애니가 남긴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애니는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사랑과 기억은 여전히 사람들의 삶 속에 남아 있었다.
이 작품은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라
품고 살아가는 것임을 조용히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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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우주 - 더 잘 머물고 싶어 유영하는 삶의 기록
정영한 지음 / 북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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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목적지가 아니라,
'나'를 만나는 시간.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뭘까.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이다.

나는 파워 J다.
여행이라면 세 달 전부터 일정을 꼼꼼히 계획하고,
한 달 전에는 반드시 필요한 예약은 물론 계획이 틀어졌을 때의 대안까지 준비해 두는 편이다.
한 번 가는 여행인 만큼, 다시 찾지 않아도 아쉬움이 남지 않을 정도로 마음껏 보고 오자는 주의였다.

그런데 30대에 들어서 어느덧 서른다섯이 된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즐겁기만 했던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어느 순간 버겁고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끔은 시간과 일정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여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나운서이자 유튜버, 그리고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영한 작가의 산문집은
여행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건넨다.

작가는 여행을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한 공간에 천천히 머물다 가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고,
때로는 그런 시간이 우리를 다시 설레게 만든다.

그 모습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요즘의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출장을 가는 남편을 따라 도쿄로 갈 예정이다.
물론 10여 년을 살다 온 곳이라서 이제는 여행지라는 느낌보다 익숙한 동네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작가가 말한 여행을
직접 경험해 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고, 중간중간 비는 시간에는 카페나 공원에 앉아 책을 읽는 일.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탐탁지 않게만 여겼던 이번 도쿄 일정이 조금은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책 곳곳에는 작가가 직접 여행지에 담아낸 사진들도 실려 있다.

사진마다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은 그 도시가 가진 생동감이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사람만이 담아낼 수 있는 여유가 사진 속에 고스란히 묻어나,
가보지 못한 도시 한가운데에 잠시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
나아가고 있는 방향 키를 조정하기 위해서,
흘러가는 젊음을 여행의 장면으로 조금이나마 묶어 두기 위해서."(28p)

작가는 여행에서 마주한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낯선 풍경도, 스쳐 지나가는 시간도 자신의 삶과 연결해 바라본다.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삶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는지 자연스레 돌아보게 되었다.

이번 도쿄에서는 계획표보다 그 순간의 마음을 조금 더 따라가 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그 여행이 끝난 뒤에는,
내가 기억하는 도쿄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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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당신
마림 지음 / 볕뉘서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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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첫사랑은 끝났는데도 오래도록 마음속을 흘러가는 걸까.


누구나 가슴 한편에는 첫사랑의 기억 하나쯤 품고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려 오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살며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기억.

《비와 당신》은 비와 함께 떠오르는 첫사랑을 담아낸 이야기다.

비 오는 날 건넨 우산 하나로 시작된 소년과 소녀의 사랑.
서툴고 미숙했기에 누구보다 뜨겁게 서로에게 빠져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마음은 조금씩 엇갈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10년 뒤,
우연한 재회 끝에 다시 마주한 그녀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때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당신의 첫사랑은 어떤 날씨로 기억되나요?

작품을 읽으며 미숙했기에 더욱 눈부셨던 첫사랑을 떠올렸다.
돌이켜 보면 나의 지난 사랑 역시 참 서툴렀다.
표현하는 방법도,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도 부족했지만,
상대를 향한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있었고, 있고, 있을 거야. 네 곁에."(51p)

10년 후에도 함께하자고 약속했던 사랑은
끝내 엇갈린 채 같은 자리에 머물지 못했다.

서로의 마음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눈앞의 현실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두 사람을 보며 문득 어른이 된 뒤 만났더라면 조금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랑이 청춘의 한가운데에서 피어났기에,
더욱 애틋하게 남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어긋난 관계를 붙잡기 위해 애쓰는 소년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를 조용히 응원하고 있었다.

결말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끊어진 사랑의 실이 다시 이어지기를 조용히 바라게 되었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청춘과 사랑을 담아낸 이야기는
첫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잠시 자신의 기억을 꺼내보게 만든다.

첫사랑이 유난히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일까.
부족했던 나 자신에 대한 후회일까.
아니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가장 반짝이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까.

장마가 시작된 요즘,
이 작품을 읽으며 비와 함께 그 시절의 나를 잠시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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