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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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속도보다 저 단어들이 내 몸으로 밀려오는 속도가 더 빠르다. 그래서 빌 브라이슨의 폭발적인 글쓰기 앞에서 독자인 나의 의지는 무용지물이다. 책은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책 스스로 읽혀져 나가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그냥 읽히고 그 읽힘을 거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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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중학생 34명 지음, 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장현실 그림 / 보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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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함이 내밀함을 불러 모으는 것일까? 이상은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라 했지만, 이 글을 읽고 나면 거지가 될지라도 비밀을 털어놓고 싶을 테니 죽을 만큼 아프다면, 그런 내밀함을 가졌다면, 이 책을 샀다하더라도 읽지는 말 것. 가지고만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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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중학생 34명 지음, 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장현실 그림 / 보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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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함이 내밀함을 불러 모으는 것일까? 이상은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라 했지만, 이 글을 읽고 나면 거지가 될지라도 비밀을 털어놓고 싶을 테니 죽을 만큼 아프다면, 그런 내밀함을 가졌다면, 이 책을 샀다하더라도 읽지는 말 것, 그 내밀함에 새살이 돋을 때까지 읽지 말고 가지고만 있을 것. 대신 나는 쓰는 듯 안 쓰기로 한다.) 

농민운동이다 민주화운동이다 밖으로만 나돌던 아버지에게 집도 못 간수하면서 민주화가 가당키나 하냐며 대들었던 형에 대해, 그래서 형의 주댕이가 얼마나 부어올랐는지에 대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서 무엇하냐며 죽어야 일을 고마하지, 라고 입버릇처럼 외던 어머니에 대해, 그러다 싸움이나서 하필이면 하나뿐인 TV를 아버지가 부셔버린 일에 대해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메칸더V가 오메가 미사일에 파괴되려 했던 절체절명의 순간 부서져버린 TV에 대해, 아니 TV를 보지 못해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나에 대해, 그래서 내가 얼마나 자주 울어야 했는지에 대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키스라는 것을 처음 했던 열여섯의 나이에 왜 눈물이 났는지에 대해, 그 여자 친구와 어떻게 헤어졌는지에 대해, 석 달이나 지난 뒤, 세수를 하다말고 쏟아진 눈물에 대해, 같이 놀던 남자친구들과 가출한 그 애가 결국은 술집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냉소를 지어버렸던 일에 대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대신 나는 이 내밀함에 대해 쓰려 한다.)

 

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써버린 것들과 쓸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 것들, 이것들은 나의 어디에서 살아, 살아나오는 것일까. 이것들을 꺼내어 무말랭이 말리 듯 펼쳐 놓으면 지금의 내가 말려지는 것일까, 그때의 내가 말려지는 것일까. 내밀한 것들은 내밀한 것들끼리 친화력이 있는 것일까. 그래서 내밀한 것들이 내밀한 것들을 불러 모은 것일까. 내밀한 것들이 정말 내밀하다면 그것들이 쏟아지고 난 뒤, 이렇게 글이 되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내밀한 것일까.

아니리라. ‘이건 비밀인데라고 말할 때 비밀을 싸안고 있던 알 수 없던 것들의 장막이 걷히고 비밀은 그 알몸을 드러내게 되리라. 내밀한 것들이 나의 삶의 영역으로 떠오르고 내가 거기까지 발 디딜 수 있게 되리라. 그렇다면 글을 쓴다는 것은 내 내면의 극한에 이르는 일이며, 늘 있었으되 잊지 않다고 믿었던 마음의 영역에 발을 내딛는 일일 것이리라. 그리하여 그 영역을 알게 되는 일이리라. 알 수 없고, 막연히 슬프고, 고통스럽다고 여겼던 것들이 결국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그런 지점을 발견하는 일이리라. 모기에게 발바닥을 물린 사람처럼 그 부은 자리를 긁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그러다가 그 자국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면 그리하여 그리워지리라. 그리하여 영영 잊으리라. 그리하여 삶의 영역으로 변하리라. 삶이 안 되고서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여전히 남는 문제 둘. 하나. 말이 되어지더라도 여전히 말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남을 것이다. 그것을 빼놓았기에 이미 말 되어진 것들이 왜곡되었는지도 모른다. , 내밀한 것들이 내밀하다면 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남아 있는 이것들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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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 숭고와 시뮬라크르의 이중주 진중권 미학 에세이 2
진중권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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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렇게까지 똑똑하면 안 되는 거다. 이 지나친 똑똑함을 몸서리 치도록 질투한다. 어찌 그가 선생님이 아닐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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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미학의 핵심은 작품에 표현을 없애는 것”, 다시 말해 가상을 중지시키고 운동을 정지시키며, 조화를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의 정치철학, 역사철학, 종교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상 혹은 작품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 그 대상의 맨살이 드러나게 될 때 영원 또는 구원에 이르게 된다. 곧 절대적 허무주의가 영원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를테면 자전거나 바위에 영원성을 부여하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두면 된다. 만약 이 대상을 가공한다면, 그러니까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로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한다면, 필연적으로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양식, 그것을 드러내려는 행위자의 주관적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해석들은 당대의 반영 즉 역사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역사는 결국 소멸하며, 이 대상들 역시 역사와 함께 소멸하고 만다. 하지만, 자전거든 바위든, 이것을 있는 그대로 둔다면, 그리하여 역사적 해석이 미칠 수 없다면, 역사라는 바람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술과 문학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역사성을 떠난 예술이나 문학을 하라는 것이다.

그럼 처음으로 돌아와서 그의 사유의 핵심인 표현을 없애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문장을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물음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표현은 무엇인가'(표현을 없애기 이전의 상태), '어떻게 표현을 없앨 수 있는가', '누가 표현을 없앨 수 있는가', '표현을 없애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가 그것이다. 이 각각의 물음들에 대해 벤야민은 다음과 같은 개념어들로 답하고 있다.

 

1) 표현은 무엇인가? (이것은 표현, 가상, 운동, 조화에 해당하는 것으로) 경험, 아우라, 연습 등등.

2) 어떻게 표현을 없앨 수 있는가친화성, 산책, (아우라를 붕괴하는) 파상력, 변증법적 이미지, 인식, 비평, 현상의 구제, 이념의 서술, 소외효과, 멜랑콜리(우울), 충격체험, 전시, 훈련, 복제, 중단(중지), 알레고리, 표상, 제스처 등등.

3) 누가 표현을 없앨 수 있는가? 무상과 영원성의 문턱에 서 있는 자들, 산책자들, 우울자들, 음모자, 새로운 천사, 변증법적 유물론자 등등.

4) 표현을 없애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구원, 이념, 순수언어, 형상, 성좌, 진리  등등.

 

벤야민의  사유는 이 단어들을 연결하는 방식들에 따라 전개되고 확장된다. 예컨대 “근대는 충격체험유일한 경험이 되어버린 시대다.”와 같은 언명 역시  표현을 없애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유일한 경험"을 "표현"에, "없애는 것"은 "충격체험"에 상응한다. 그러하다면 이 말은 근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에서 행해지는 (체화될 수 없는) 충격체험이 지니는 가치를 긍정하는 말일 것이다. 충격체험은 경험을 거부함으로써, 경험의 축적을 거부함으로써, 이념 혹은 진리의 성좌구조를 제시할 수 있게 된다. 비록 근대적 삶이 어떤 경험의 축적도 없는, 깊이도 심연도 없이 표면작용만을 반복하는 허무의 몸짓이라 할지라도, 아니 그러한 삶의 몸짓일 때 그 삶은 이념을 품은 영원한 어떤 것으로 격상될 수 있다. 그는 이것을 적극적 허무주의라고 불렀다.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 일이 곧 구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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