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 미학의 핵심은 작품에 표현을 없애는 것”, 다시 말해 가상을 중지시키고 운동을 정지시키며, 조화를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의 정치철학, 역사철학, 종교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상 혹은 작품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 그 대상의 맨살이 드러나게 될 때 영원 또는 구원에 이르게 된다. 곧 절대적 허무주의가 영원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를테면 자전거나 바위에 영원성을 부여하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두면 된다. 만약 이 대상을 가공한다면, 그러니까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로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한다면, 필연적으로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양식, 그것을 드러내려는 행위자의 주관적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해석들은 당대의 반영 즉 역사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역사는 결국 소멸하며, 이 대상들 역시 역사와 함께 소멸하고 만다. 하지만, 자전거든 바위든, 이것을 있는 그대로 둔다면, 그리하여 역사적 해석이 미칠 수 없다면, 역사라는 바람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술과 문학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역사성을 떠난 예술이나 문학을 하라는 것이다.

그럼 처음으로 돌아와서 그의 사유의 핵심인 표현을 없애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문장을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물음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표현은 무엇인가'(표현을 없애기 이전의 상태), '어떻게 표현을 없앨 수 있는가', '누가 표현을 없앨 수 있는가', '표현을 없애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가 그것이다. 이 각각의 물음들에 대해 벤야민은 다음과 같은 개념어들로 답하고 있다.

 

1) 표현은 무엇인가? (이것은 표현, 가상, 운동, 조화에 해당하는 것으로) 경험, 아우라, 연습 등등.

2) 어떻게 표현을 없앨 수 있는가친화성, 산책, (아우라를 붕괴하는) 파상력, 변증법적 이미지, 인식, 비평, 현상의 구제, 이념의 서술, 소외효과, 멜랑콜리(우울), 충격체험, 전시, 훈련, 복제, 중단(중지), 알레고리, 표상, 제스처 등등.

3) 누가 표현을 없앨 수 있는가? 무상과 영원성의 문턱에 서 있는 자들, 산책자들, 우울자들, 음모자, 새로운 천사, 변증법적 유물론자 등등.

4) 표현을 없애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구원, 이념, 순수언어, 형상, 성좌, 진리  등등.

 

벤야민의  사유는 이 단어들을 연결하는 방식들에 따라 전개되고 확장된다. 예컨대 “근대는 충격체험유일한 경험이 되어버린 시대다.”와 같은 언명 역시  표현을 없애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유일한 경험"을 "표현"에, "없애는 것"은 "충격체험"에 상응한다. 그러하다면 이 말은 근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에서 행해지는 (체화될 수 없는) 충격체험이 지니는 가치를 긍정하는 말일 것이다. 충격체험은 경험을 거부함으로써, 경험의 축적을 거부함으로써, 이념 혹은 진리의 성좌구조를 제시할 수 있게 된다. 비록 근대적 삶이 어떤 경험의 축적도 없는, 깊이도 심연도 없이 표면작용만을 반복하는 허무의 몸짓이라 할지라도, 아니 그러한 삶의 몸짓일 때 그 삶은 이념을 품은 영원한 어떤 것으로 격상될 수 있다. 그는 이것을 적극적 허무주의라고 불렀다.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 일이 곧 구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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