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종말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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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러나 그레이엄 그린이 쓴 사랑이라면 조금 다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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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폭력들 - 미투 이후의 한국, 끝나지 않은 피해와 가해의 투쟁기
이은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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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대체 언제까지 피해자가 '나는 성범죄를 당하지 않을 주의 의무를 다했음'을, 공포 속에서도 최선의 저항을 하였음'을, '피해를 당한 후에는 피해자답게 행동했음'을 소명해야 하는 걸까. 



성폭력 피해 상담 및 법률 지원을 주로 해 온 변호사인 저자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여러 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다시 정리해서 묶은 것이다. 가정 폭력, 친족간 성폭력, 데이트 폭력, 사내 성폭력, 낙태죄, 공공기관 내 성추행, 성매매 등 저자 본인이 맡았던 여러 사건 사례와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들이 담겨 있다.  








데이트 폭력 가해자가 재판에서 형을 감경받는 가장 많은 사유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사랑해서 우발적으로 때렸다고 말한 경우다. 한국은 여전히 처벌 여부를 판단할 때 이를 참작한다. 우발적 본능이 아동이나 여성에게서 흔하게 발견되지 않는다. 가해자에게 '우발적'이란 때릴 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때릴 수 있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저자의 사무실을 찾아오는 의뢰인은 성폭력 피해 신고를 했거나 피해 사실을 말했다가 무고.명예훼손.위증으로 고소당한 피해자들이다. 미투가 사람들의 마음엔 변화를 일으켰을지 모르지만, 사회나 제도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는 성폭력 피해자 처지에서 무언가를 해본 제대로 된 경험이 없다. 성폭력 무고의 경계선에 서서 성범죄로 성립하지도 않을 것을 신고하는 피해자 또는 당신은 성폭력을 당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법조인 혹은 피해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문제인가라고 저자는 스스로에게, 우리에게 묻는다.



저자는 법이 약자의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기득권의 입장에서 운용되어 왔음을 인정한다. 성관계와 성폭력에서 주장하는 바가 서로 극명한 차이를 보일 때에, 법이 인정하는 성폭력과 일반 피해자들이 처하는 성폭력 상황에는 괴리가 있고, 그 괴리는 피해자들이 겪는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성폭력 '가해자'의 처지를 '함께' 고민한다. 그나마 성범죄와 관련하여 형사재판 판결과는 다른 민사재판 판결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법의 판결이 다르다는 것도 씁쓸한 일이다.  




2020년 'n번방 사건'은 대중들이 폭발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n번방 사건'이 뭐가 그렇게 충격적이냐고 되묻고 싶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동안 수많은 'n번방 사건'이 꾸준히 있어 왔기 때문이다. 사건의 본질을 오도하는 대표적인 범죄가 성범죄다. 사실 디지털 성범죄 대부분이 'n번방 사건'과 본질이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와 제도가 해야할 일은 긴급한 대안이 아니라 사건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과 피해자를 위한 제대로 된 개선책임을, 저자는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스텔싱을 처벌할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연인이든, 일회성 만남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가 원하지 않는 짓을 일방적 욕구로 자행하는 것은 폭력이다. 도의적인 책임을 현실적이고 법적인 책임으로 부여해야한다는 데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현재 형법이 강간죄의 성립 요건으로 '최협의설'을 채택하고 있다.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저항해야 하고, 이를 완전히 억압하는 수준의 폭행이 이루어져야 강간죄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과연 '사력을 다한 저항'의 기준은 누구 입장의 기준인가. 또한 사법기관이 협박으로 인정하는 해악의 고지는 일반인들이 공포를 느낄만한 극단적인 용어를 구체적으로 사용해야 인정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자신의 인적 사항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워질 수 있음을 납득하지 않는 것이다. 법은 아직도 물리적.사회적 약자인 피해자의 입장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는 맥락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이와 유사한 사건 사례를 접할 때마다 답답함을 넘어 분노가 이는 건 쩔 수 없다. 성범죄는 다른 범죄와 달리 객관적 증거가 잘 남지 않는다. 거기다 여전히 '문란'이라는 단어는 애 어른 할 것 없이 여성을 향해 낙인을 찍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으나 남성에게는 '능력'이라는 단어로 대체되고, 피해자보다 경제적.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괴롭히는 대한민국사회에서 넘어야할 벽을 실감할 때마다 입안이 쓰다. 우리가 사회에서 누리는 작은 평등은 아픔을 겪은 개인들의 고단함에서 비롯된다는 저자의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성폭력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성이어도 법은 동등하게 적용된다. 특히 직장 내 성범죄는 성적 문제에 더하여 계급 문제인 경우가 많다. 남성 가해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현실이지만, 여성이 가해자인 경우도 있다. 이 책에서 구성한 사례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접한 사건들의 피해자를 보면서 대다수의 성폭력 사건은 권력의 소산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피해 사실을 쉽게 꺼내놓지 못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피해자 중심의 법률 개정도 필요하지만, 실무에서 시급한 것은 궁극적으로 피해자를 괴롭히는 일(무고죄를 빌미로 한 맞고소)이 가해자에게는 불리한 결과로 이어지는 제도 마련이라고 얘기한다.  




우리는 종종 성폭력 가해자를 두고 '그 사람이 그럴 리 없다'는 가해자에 대해 확신을 갖는다. 그러나 '그럴 리 없는 사람'은 없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가해자가, 또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제일 많이 겪게 되는 입장은 '주변인'이 될 것이다. 이 주변인이 어떠냐에 따라 2차 피해가 발생할 수도, 아니면 사건을 조속히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사건의 방향이 2차 가해로 향한다면 피해자는 소리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폭력과 갑질을 감수해야 하는 조직문화가 남으며, 그것은 남은 자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 된다. 피해자를 잡아 주는 손은 피해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우리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저자는 주변인들의 건강한 가치관이 사회 곳곳에서 작동할수록 그동안 이례적인 판결로 여겨졌던 법원의 태도가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법이 세상을 무작정 따라가는 것도 안 될 일이지만, 과거에 머무른 상태에서 현재를 재단한다면 세상의 인식과 늘 차이가 생길테고, 법의 존재의 이유를 묻게 될지 모른다. 저자는 부끄럽고 불편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 대중의 공분을 당부한다. 공분조차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을테니.



책을 읽으면서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알아야 할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척 하면서 언론 매체가 전달하는 대로 받아들이며 그 이면에 있는 진실을 외면하고 피해자의 고통에 진정성 있게 이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는 어떤 주변인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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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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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까지 이어지는 도스토옙스키의 서사. 새롭게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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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5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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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자신과는 너무 다른 결을 가진 인물이기에 이 작품을 사랑했던 것은 아닐지. 문학동네의 판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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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로드
조너선 프랜즌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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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내세가 있다고 생각해요. (p655)




[논제]

■ 영혼은 육신과 독립적이며 불변이다.

■ 선량함은 지성의 정반대 기능이다. (행위자가 자신의 지성을 활용해 전적으로 이기적인 계산에 따라 했을지도 모르는 행위를 선량한 행동이라고 지명할 수 있을까?)

■ 악을 포용하는 것이 힘을 주는가. (힘의 차이가 위법행위의 심각성에 따라 달라진다)

■ 러스의 딜레마. (프랜시스는 러스가 선량하고 도덕적인 사람이라서 좋아했다. 그녀가 자신의 민낯을 알게 되면 싫어하게 될 것이고, 결국 그녀를 곁에 붙잡아 두는 방법은 자신의 욕정을 숨기고 선한 사람 코스프레를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녀(육체)를 가질 수 없다)







 
소설은 1971년 대림절에서 시작한다. 미국 서부 외곽의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와해를 통해 1971년을 전후로 한 미국 사회를 통찰했다. 인종차별, 원주민 박해, 베트남 전쟁, 여성주의, 마약과 성적 욕망, 가치관 혼란, 서로를 연민도 신뢰도 하지 못하는 가족 구성원의 애정 결핍, 인정 욕구, 죄책감 등 시대적 사건을 제외하면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을 면밀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을 관통하는 논제는 '도덕성'이다. 이 작품이 상당히 매력적인 이유는, 작가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찬반도, 러스의 외도나 매리언의 과거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 것처럼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결론을 유도하지 않고, 끊임없이 논제를 제기하며 독자로부터 철학적.심리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데에 있다. 이는 이마누엘 칸트의 정의 명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더불어 근원적인 인간 심리에 대한 질문(심리)도 따라온다. 



  


작은 메노파 공동체 집단에서 성장한 러스는 목사로서 중재자 역할을 했던 아버지와 순종적인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열등감과 박탈감은 매리언을 만나면서 대리만족으로 전환되고 이는 가정생활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지나치도록 딸을 편애하고 집착하는 걸 넘어서 다른 자식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의 모습을 납득할 수 없었다가 이야기가 진행할수록 알게 되는 사실은, 그에게는 모든이의 주목을 받고 외모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자신을 빛내줄 자식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차별받는 약자의 입장에 서는 사랑과 공동체를 실천하며 정의롭고 선량하며 도덕적인 부목사라는 겉모습 뒤에는 외모를 중요시하고 여성 신도를 욕망하며 자식조차 자기를 빛내줄 도구로 이용하는, 홀로서기에 실패한 나약한 내면이 있다. 이러한 러스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건은 곳곳에서 보인다. 타인의 시선을 예민하게 신경쓰며 저 혼자 추측하고 단정하고, 타협이나 조율을 지는 것이라고 여기는 자격지심 등 이러한 모습은 관계의 미숙일 수도 있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부재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러스가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했다기 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더 집중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아내 모습을 보며 결혼 생활이 비참하다고 말하는 러스는 한때 주체적이며 똑똑하고 자유로웠던 매리언이 현실을 인식하고 살림에 주저앉은 이유가 자신의 가부장적인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과 죄책감을 매리언에게 돌린다. 또한 러스는 앰브로즈와의 관계가 처음 틀어진 책임까지 매리언에게 전가한다. 극도로 불안정한 아들을 모습을 보고도 그저 페리와 엮이지 않고 싶다는 바람만 떠올리는, 심지어 그와중에 프랜시스를 떠올리는 러스는 인간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그야말로 최악이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러스는 마약에 중독된 페리에게 도덕적 결함을 들이미는데, 여성 신도에게 부적절한 욕정을 품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둘 만의 시간을 만들어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치의 거리낌이 없다. 그리고 앰브로즈가 부유한 집안의 출신이라는 것에 열등감을 감추고 앰브로즈에게 없는 육체노동의 경험을 내세운다. 러스가 크로스로드 창설에 자부심을 갖고 집착했던 이유는 그동안 살면서 단 한 번도 중심에 서있어 본 적 없는 그에게 '중심'이라는 맛을 보게 했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그는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중심의 역할을 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가 크로스로드의 나바호족 청소년 봄 수련회에 집착하는 것도, 끊임없이 자신을 치켜세워주는 프랜시스에게 깊이 빠져든 것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내 매리언에게 느꼈던 감정은 대부분 열등감이었기에. 그런데 러스가 성적 욕망에 집착하게 된 것이, 어린 시절 가정 환경으로부터 세뇌되었던 성적 억압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매리언은 자기가 늘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남자에게 상처를 받을 때마다 분노가 있어야할 자리에 죄책감이 들어앉았고, 스스로를 향해 비난의 돌을 던지며 '벌을 받아도 싼' 사람이라고 낙인 찍는다. 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분노했다는 자체만으로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든 매리언. 불륜, 해고, 낙태, 매춘 등 피해자임에도 스스로를 가해자 위치에 놓았던 그녀. 그래서 결혼 후 러스에게 복종에 가까운 순종적인 아내로 살았다. 자기 안의 나쁜 것을 억압하고, 입을 계속 다물고 있음으로써 매일 계속 벌어들이고 있는 인생이라고 여기며. 스스로 진짜 매리언은, 날씬하고, 모든 걸 강렬하게 느끼고, 죄인이고, 배우라고 정의한다. 이는 언니 셜리가 되고 싶었던 매리언의 무의식, 그리고 진짜 모습이라고 믿는 환상이다. 늘 어떤 역할ㅡ순종적인 아내, 상냥한 부목사 사모, 인내심 있는 엄마ㅡ을 해내야 하는 매리언은 분노를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 놓고 있었다. 매리언이 유독 페리에게 애착을 갖는 이유는 똑똑하고 재능이 많지만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페리에게 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러스의 잠정적 외도로 인해 남편에게서 벗어나자 오히려 자신의 욕구에 충실해지며 홀가분함을 느낀다. 그 욕구가 적절한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린시절부터 지속됐던 과거의 불행에 붙잡혀 여전히 내면의 아이가 존재하는 매리언은 유일하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으며 승자의 입장에서 관계했던 브래들리에게 30년이 지나서 다시 집착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프랜시스에게 집착하는 러스의 모습과 닮아있다. 러스는 매리언이 자기 혐오에 빠져서 남만 돌보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는데, 그 말이 과연 매리언에게만 해당될까. 


이 세상 누구도 나보다 외롭지 않다. (p240)




러스는 전쟁터에서 돌아와 폭력적으로 변한 인간을 공동체에서 치유한다는 나바호족에 짜릿함을 느낀다. 이때부터 러스는 자신이 전지적인 존재, 즉 신(종교)의 이름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착한 일을 하면서 공동체 구성원에게 존경을 받으며 그들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사회 집단에서 적응이 어려웠던 러스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가능한 작은 공동체가 적합했을테고. 


매리언은 과거의 자신을 셋째 페리에게 투영하지만, 정작 매리언의 전철을 밟는 아이는 베키다. 다른 여자의 남자친구를 뺏았고, 여자 친구와 어서 헤어지라고 압박했으며 이로인해 좋아하는 남자의 앞날에 피해를 줄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에 죄의식을 느끼는 베티의 모습은 외도를 저지른 브래들리가 아닌 그의 아내를 찾아간 자신을 죄인 취급하는 매리언과 아주 흡사하다. 또한 매리언은 아들 클렘이 섀런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을 과거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남자들의 행동과 동일시 한다.  


힐데브란트의 가족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은 애정 결핍과 그릇된 애정 방식, 인정 욕구, 뒤섞인 자기 연민과 죄책감, 자아감 결핍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가치와 존재감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찾는다. 가정은 성인이 되어 자립하기 전 사회적 경험을 할 수 있는 통로다. 그런데 힐데브란트 가족, 특히 러스와 매리언은 가족 구성원 누군가에게 경험이 되어 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미성숙한 내면을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은 자식들에게 마음의 한 공간을 내어줄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휘청거리며 돌아온 아이들에게 아무도 없는 불꺼진 집은 얼마나 절망적인가.  


러스와 매리언이 겪고 있는 감정과 태도는 그들에게만 국한하지 않는다. 프랜시스도 불우한 환경에 있는 로니보다 로니에게 베푸는 자신의 모습에 더 집착한다. 좀더 실질적인 도움보다 동정심에 선행을 실천하려는 모습은 자기만족적인 형태로 재포장된 인종차별주의의 또 다른 단면이다. 태너는 로라와 여자 형제나 다름없음에도 약을 먹이고 성관계를 강요했었다. 이처럼 우리는 외적인 측면에 얼마나 현혹당하고 있는지 새삼 돌이켜 볼 일이다.








러스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게 죄책감이냐고 묻는데, 그 자체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만 자신이 매리언을 외롭게 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결혼을 두고 서로가 희생당했다고 주장하는 러스와 매리언. 이들 가족에게는 오직 자기의 아픔 뿐이다. 페리와 베키는 서로를 잘 안다고 말하지만, 실상 그들은 서로를 알고자 노력한 적이 없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짐작으로 재단할 뿐이다. 베키는 페리에게 동생이니까 더 잘 알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 전에 '네가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알아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가족을 알아가는 것은 가치의 문제가 아니다.   


베키가 클렘에게 보낸 편지를 읽다보면 결국 '성공'이라는 것 역시 제 나름대로 다를 것이고, 이 성공의 성취 또한 저마다 제 각각일터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에 대한 결과가 어떻든 격려하고 위무할 뿐이다. 가족이란 서로의 관심사를 함께 공유하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관계다.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성공'이라는 것 역시 제 나름대로 다를 것이고, 이 성공의 성취 또한 저마다 제 각각일터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에 대한 결과가 어떻든 격려하고 위무할 뿐이다. 가족이란 서로의 관심사를 함께 공유하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관계다.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 출판사 지원도서,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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