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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67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평점 :
카소봉이라는 남자는 왜 이틀 동안 국립 공예원의 박물관 전시실에 숨어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이틀 전 목요일, 벨보가 카소봉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은 현재 파리 국립 공예원 박물관에 있으며 성전 기사단에게 쫓기고 있다고 말하면서 밀라노에 있는 자기의 아파트로 가 컴퓨터에 입력해 둔 걸 읽어 보라고 부탁한다. 그가 파일의 암호를 말하려는 순간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총성이 울리고 이어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벨보의 아파트로 달려가 그가 인쇄해 놓은 파일을 읽은 후, 벨보의 컴퓨터 암호를 풀고 저장해 놓은 파일까지 읽은 카소봉은 기절초풍할 내용에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를 가늠하지 못한다. 박물관에서 나온 카소봉은 이제 벨보의 아파트에서 읽고 자신이 재구성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카소봉은 벨보와 함께 가라몬드 출판사에서 마주한 퇴역 군인 아르덴티 대령은 책으로 출판해 달라면서 성전 기사에 관한 원고를 내놓는다. 그리고 그는 성전 기사단이 프랑스 왕에게 순순히 체포될 당시 그들에게는 무시무시하고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성전 기사단,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대령이 가리킨 곳은 프로뱅이었다. 그리고 용기병 에두아르 앵골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의 서재에서 발견한 <1894년 프로뱅>이라는 메모를 보여주면서 성전 기사단의 은거지와 성배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튿날, 출판사를 찾아왔던 대령이 살해되었다. 그런데 아르덴티 대령이 전선에 목이 졸려 죽어있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은 있으나, 몇 시간 동안 방치된 사이 시신이 사라졌다. 프런트 직원이 전날 밤 10시를 전후해서 대령이 두 남자와 함께 호텔방으로 들어간 것을 목격했지만 나간 것을 본 사람은 없다. 사건 현장을 목격한 노인은 술에 취한 상태였고, 대령의 방에 머문 시간은 1분여에 불과하다. 직원의 말에 따르면 노인이 술에 취해 헛것을 본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진술한다. 그렇다면 정말 침대 위에 시체가 있었던 것일까?
벨보는 경찰을 통해 아르덴티 대령의 본명은 아르코베지 대위이고 나치 친위대에 부역한 혐의가 있으며 프랑스에서는 사기 혐의로 기소되자 국외로 도망쳤다는 사실, 그리고 파소티라는 가명도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름이 무엇이 되었건 그는 나흘 전에 밀라노에 왔으며 죽기 전 사흘 간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경찰은 벨보에게 아르덴티는 처음부터 출판 의사는 없었으며 단지 라코스키를 협박할 꼬투리였다고 말하면서 자작극을 벌여 도망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 경찰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출판 서문을 써주기로 했다는 라코스키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사건이 있은 후 카소봉은 박사 논문을 마치고 연인을 따라서 리우의 대학교 강사 제안을 받아들여 떠난다. 성전 기사단은 잊자는 다짐과 함께.
열다섯 살의 나이차가 나지만 카소봉과 벨보는 한 인물처럼 느껴진다. 대학시절 마르크스주의에 빠졌지만 이상과는 다른 동료들의 현실적인 모습과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이념에 회의를 느껴 브라질로 떠난 젊은 카소봉, 어린 나이에 극복대신 회피를 선택해 좌절감을 안은 채 살고 있는 중년의 벨보와 맞닿아 있다. 두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성전 기사단'이라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 관련되고, 의도치 않게 점점 더 끌려들어가게 된다. 사건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베다 즉 우주와 자아, 초자연적 신화와 종교까지 광범위하게 촘촘히 엮여 있다. 이제 돌아온 카소봉, 다시 시작될 성전 기사단의 이야기.

